[스포츠로 사유하기] 한국 선수들은 동성애자가 없나요? (17호)

2013년 5월 8일culturalaction

한국 선수들은 동성애자가 없나요?

정재영 (체육문화위원회 활동가)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와 <Happy Ending>의 미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예술인이라는 것? 아마도 서양의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빨리 둘의 공통점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동성애자’라는 것. 조디 포스터는 올해 1월에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나는 이미 1000년 전에 커밍아웃을 했다”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고 미카는 그보다 앞선 2012년 여름 “당신이 나에게 게이냐고 물으신다면, 네 맞습니다”라며 역시 동성애자임을 선언한 바 있다.
 
 사실 서양의 문화예술계에서 공식적인 커밍아웃은 그렇게 생소한 일만은 아니다. 엘튼 존, 데이빗 보위 등 음악계는 물론이거니와 <반지의 제왕>의 이안 맥켈런,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재커리 퀸토 등 영화계까지 커밍아웃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보다 영역을 넓혀 패션계, 문학계까지 고려한다면 서양에서 동성애란 그다지 신기하고 유별난 일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커밍아웃이 90년대 이후 들어서 활발해지긴 했지만, 소크라테스의 후손이기 때문일까. 서양은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보다 개방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일이 최근 스포츠계에도 벌어지고 있다. 보스턴 셀틱스와 워싱턴 위저즈를 거쳐 현재 자유계약선수로 등록되어 있는 미국프로농구(NBA)의 ‘제이슨 콜린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4월 29일 미국의 한 스포츠 전문지를 통해 자신이 ‘나는 흑인이자 게이’라고 밝히며 미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스포츠의 영역에서 커밍아웃은 복싱선수 올란도 크루즈, 전 미식축구 선수 웨이드 데이비스 등의 경우가 있었지만 미국 4대 스포츠에서 현역 선수가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 2007년, 전 NBA 선수 존 아메치가 커밍아웃을 한 것도 이미 그가 은퇴를 한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먼저 미국의 반응은 어떨까. 동성애 담론이 익숙한 미국에서는 제이슨 콜린스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콜린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제이슨의 발표는 스포츠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이라며 콜린스의 커밍아웃에 의미를 부여했다. NBA 동료 선수인 코비 브라이언트와 스티브 내쉬도 “그가 자랑스럽다”며 지지했고, 나아가 NBA선수협회와 데이비드 스턴 NBA총재, 콜린스의 스폰서인 나이키 역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콜린스 본인도 “사회의 분노와 비난 등을 굉장히 걱정했는데 매우 많은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물론 콜린스가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는 것만은 아니다. 아직까지 청교도의 영향이 강한 미국은 성경을 토대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ESPN 해설가 크리스 브로사드의 언급을 들 수 있다. 그는 “동성애를 공개한다는 것은 신과 예수에 대한 공개적인 반란”이라며 콜린스의 커밍아웃을 비판했으며, 이후 “전 세계 기독교인들로부터 지지가 쏟아지고 있다”며 자신의 발언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또한 골프 선수 버바 왓슨은 브로사드를 지지하며 “브로사드의 신념을 존중하고 성경을 믿는다”고 밝혔다. 이와는 다르게 종교적 문제로 접근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미식축구계는 아직 공개된 게이 선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하인즈 워드의 말은 커밍아웃이 지니고 있는 불편함이 여전히 사회 내에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콜린스의 커밍아웃 사건에서 유추할 수 있는 점은, 비록 청교도의 색깔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동성애와 관련한 담론이 사회적으로 오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는 남성들의 문화로 여겨지는 스포츠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를 한국 스포츠계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만약 국내 스포츠 리그에서 활약하는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나는 동성애자입니다” 혹은 “나는 양성애자입니다”라고 고백한다면?
 확언하자면 한국의 스포츠계는 커밍아웃을 한 선수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가 개인의 존중이나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이 빈약한데다(차별금지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지금을 보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남성주의 문화가 팽배한 지금의 스포츠문화는 아직까지 동성애를 인정하기에는 요원한 의식의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잠재적인 제이슨 콜린스는 분명 있다. 체육을 전공한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는 동성애와 관련해 고민하는 운동선수들이 실제로 존재했다. 결국 그들 고민의 결과는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바로 스포츠계가 지닌 동성애에 대한 ‘금기’ 탓이었고 그로 인한 자기 검열의 작동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는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주장일 뿐, 이를 뒷받침해줄 선수들의 동성애에 대한 실태 및 인식조사도 전무한 상황이다.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것은 문화의 차이가 작용하는 점도 분명 있겠지만, 문제는 결국 ‘나와 다른 타인을 얼마나 인정할 수 있는가’로 소급된다.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었던 가치관의 틀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도 끊임없는 고찰을 통해 인정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정당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이야기’됨으로써 접점을 찾아나갈 수 있다. 이미 영화 <앤티크>, <친구 사이>, <로드 무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등 동성애에 대한 논의가 문화예술의 영역 안에서 회자가 된 것처럼, 이제 스포츠 영역 안에서도 동성애를 숨기지 않고 이야기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번 콜린스의 경우에서 얻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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