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연의 문화읽기] 청소년 자살, 대치동 잔혹사(17호)

2013년 5월 8일culturalaction

청소년 자살, 대치동 잔혹사1)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불행한 사회지표

어린이날을 앞두고 한국방정환재단이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한 ‘2013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 비교’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초등학교 4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 71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행복지수가 72.54점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동일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OECD 소속 23개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이다. ‘교육’과 ‘생활양식’ 영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물질적 행복’과 ‘보건과 안전’ 영역도 OECD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지만, 유독 행복지수만큼은 꼴지를 기록한 것은 현재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처한 양가적, 모순적인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질적으로는 행복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불행한 청소년, 교육과 생활양식 수준이 높을수록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는 그만큼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현재 한국의 청소년들이 대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설문조사에서 초등학생 7명 중에서 1명은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대답한 점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그 충동의 비율은 더 커진다.2)초·중·고 학생 10명 중 7-8명은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가출충동을 경험했는데, 대게 부모와의 갈등의 주원인은 성적에 관한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들 10명 중 7명이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멘토가 없다고 말했고, 중학생의 72.1%, 고등학생 62.7%도 멘토나 롤 모델이 없다고 답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몇 가지 암울한 전망만을 예측할 수 있다. 첫째, 설문조사에 나온 초등학생의 자살충동률은 이른바 청소년 자살의 잠재적 위험군이 미성년자 이하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둘째, 성적에 의한 부모와의 갈등3)이 자살 충동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은 가정 내 돌봄과 학교 수업이 필수․필연적인 청소년들에게는 그 해결책에 있어 절망적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자살 충동을 제어하거나 해소해 줄 수 있는 사회적 배려와 관리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특히 청소년에게 가족 내에서의 생활 스트레스가 청소년 자살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는 것이 실제 조사를 통해서 드러났는데, 예컨대 부모의 잦은 싸움과 같은 가족 간의 불화, 공부에 대한 강요와 같은 부모의 지나친 간섭, 신체적, 정서적 발달에 큰 충격을 주는 학대와 방임이 청소년들의 일상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4)이 세 가지 요인은 청소년 자살의 발생원리, 미래예측, 해결방안 모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청소년 자살의 상황들이 매우 구조적인 어려움에 직면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 청소년 자살을 줄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데다, 청소년 자살률은 갈수록 증가할 가능성이 높고, 그들을 정신적으로 상담할 멘토도 부족하다는 점은 청소년 자살의 원인 제거와 결과 대처에 모두 문제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
통계로 나오는 청소년들의 자살요인들은 일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통계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인 이면과 맥락에 대한 심층 분석은 청소년 자살의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한국에서 청소년 자살은 청소년 내부와 외부의 복합적인 문제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청소년 자살의 복합적인 요인들은 아래와 같은 불행한 사회 지표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소득불균등의 심화/중산층 비중의 감소/실업률의 증가/과도한 근무시간/일자리의 양극화와 성별, 직종별 임금 격차/저임금노동/전세금 증가와 월세율 상승/수도권 인구집중/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증가/항생제 사용률 OECD국가 1위 및 자궁, 유방 절제 수술 OECD 1위/우울증세의 급속한 증가/세계 최하위의 성평등/사회정의, OECD 중 25위.5)
영화 여고괴담5 : 동반자살

대치동 잔혹사

이제 청소년 자살의 세 가지 사례를 통해서 불행한 사회지표와 어떤 연관성이 있고,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어떻게 간파해야하는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청소년들의 자살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타살이다. 10대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은 가정이건, 학교이건, 국가이건 청소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고, 아울러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으로 가기 전에 사전에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타살이란 의미는 청소년들이 자살에 이르는 데 있어 사회적 책임이 크다는 뜻이다. 청소년의 자살은 본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사실상 청소년을 벼랑으로  내몬 탓에 있다. 청소년 자살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는 지독한 입시경쟁과 그것을 부추기는 사교육시장, 소수자로서의 삶을 인정하지 않는 차별적 시선, 위계질서화 된 집단이 개인에게 가하는 정서적 폭력이 사회적 타살의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 중의 하나인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서 최근 일어난 청소년들의 잇단 자살 사태는 입시가 진학 경쟁을 위한 합리적 장치가 아니라 또래집단과 가족 구성원의 삶 자체를 황폐하게 만드는 사회적 타살을 유도하는 폭력적 장치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대치동에서 청소년들의 자살 소동은 일상적인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치동은 부모의 4명 중 1명꼴로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자동네이다. 2012년 대치동에 거주하면서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477명으로 기초 자치단체 중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치동은 최고의 서울대 진학률을 자랑하지만, 반대로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2013년 4월 1일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청소년의 투신자살, 바로 10일 뒤에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려 했던 학생, 2012년 2월에 발생한 고둥학교 1학년 학생의 투신자살 등 이른바 강남구 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발생한 청소년 자살의 원인은 모두 성적 압박감과 학원 스트레스이다. 2013년 4월 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교 3학년인 김모 학생이 집 건너편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는데, 경찰 조사 결과 김군이 자살한 이유는 학업 스트레스로 알려졌다.6)대구의 대치동으로 알려진 상류층 전문직 종사자들이 밀집해 있는 대구시 수성구에서 벌어진 청소년의 연쇄 자살의 주원인도 대학입시 준비에 따른 학업 스트레스였다.7)

제로섬 게임 비극, 청소년 자살

이른바 대치동 잔혹사는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한 가족들의 절대적 희생에서 비롯된다. 대치동의 가족 구성원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자녀를 둔 대치동 가족 중에서 원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 이곳으로 전세를 얻어 전입한 가족들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일컬어 ‘대전족'(대치동에 전세를 얻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몰려 있는 곳이지만 대치동에는 전업주부가 서초구 다음으로 많은데, 이는 어머니들의 주된 역할이 자녀들의 학업을 보조해주는 데 있음을 짐작케 한다. 자녀들의 학업, 학원, 스펙을 쌓는 모든 일들을 관리해주는 전업주부를 일컬어 ‘헬리콥터 맘’이라고 부른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가 대치동으로 주소를 옮긴 가족들은 높은 전세 값과 높은 사교육비로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2012년 7월 기준으로 대치동의 전세 값은 평당 1375만원으로 강북의 웬만한 집값보다도 높은 편이다.8)강남구의 가구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114만원으로 서울시 월평균 사교육비 56만원보다 2배에 육박한다.9)말하자면 전적으로 자녀의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를 온 가족들은 ‘하우스푸어’와 ‘에듀푸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가정이 행복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입시 전쟁터가 된 상황에서 자녀가 부모를 바라보는 관점과,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관점 사이에 큰 간극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대치동 잔혹사는 결국 청소년의 자살로 마감하지만, 행복한 미래와 불행한 현실의 목적이 모두 동일하다는 점에서 청소년 개인과 가족의 구성원이 책임져야 할 것이 아니다. 대치동 잔혹사는 행복과 불행, 원인과 결과가 동일한 제로섬 게임이고, 청소년의 자살은 제로섬 게임의 비극적인 결과이다.
1) 이 글은 『문화/과학』, 2013년 여름호에 실릴 필자의 「자살 권하는 사회: 청소년과 연예인 자살의 의미계열」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전체 원고의 내용은 5월 말에 나오는 『문화/과학』 74호를 참고하기 바란다.
2) 통계청이 밝힌 우리나라 10대 청소년의 사망원인 중 1위는 자살이다. 2011년 한 해에만 373명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는 전체 청소년 사망자의 26.5%나 되는 수치이다. 청소년 자살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 중 단연 1위이다. 이는 2002년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청소년 자살인구가 인구 10만 명당 6.0명에 해당(203명)에 해당되고, 청소년 사망원인에서 자살이 3번째 인 것과 비교하면 더 악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2년 5~6월 조사해 발표한 ‘2012 한국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보면 10대 청소년이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학업 및 진로문제가 36.7%, 가정불화가 23.7%, 학교폭력이 7.6%로 나타났다.
4) 홍영수, 『청소년의 생활 스트레스가 자살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심리사회적 자원의 보호 효과』, 한국학술정보, 2002, 41-2쪽.
5) 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0년 0.266에서 2010년 0.315로 높아졌고, 1990년대 상대적 빈곤률은 7.1%였으나, 2010년에는 12.5%로 상승했다. 2011년 OECD보고서 Society at a Glance에 따르면, 한국인은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8시간 4분이고, 이중 유급근로 시간은 5시간 48분인데 이는 OECD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많은 수치이다. 비정규직의 시간당 정액급여 평균은 정규직의 65% 수준에 그치고 남녀 간 임금 격차는 OECD국가 중 가장 크다. 공교육비에 대한 학부모 부담액은 OECD 국가 중 11년 째, 가장  높은 순으로 나타났고, 사교육비 수준 역시 1위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과 관련된 기사는 1990년대 초반 58건에서 2009년에는 1,512 건으로 30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 경제포럼(WEF)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 간 불평등 수준은 135개국 중에서 107위를 기록했다.(문화과학 편집위원회, 「통계로 본 한국사회 불행 지수」,『문화과학』69호, 2012년  봄호 참고)
6)『주간조선』2013년 4월 22일자 참고.
7) 2012년 4월부터 10월까지 대구에서 청소년들이 자살한 13건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학업스트레스와 가정불화 문제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중앙일보』2012년 10월 15일자 참고).
8)『매일경제』, 2012년 7월 30일자 참고.
9)『서울경제』, 2013년 1월 17일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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