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현수막을 거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현수막 따위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17호)

2013년 5월 8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가끔은… 우려하고 예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 결과를 예측했다는 기쁨보다 마주한 현실이 너무나 끔찍해 짜증날 때가 있습니다. 최근 동성애를 둘러 싼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박근혜정부가 불량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할 때, 치안국가의 시대가 더욱 강화되고 문화 다양성은 다시 어둠의 자식들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대놓고 동성애를 괴롭힐 줄은 몰랐습니다. 마포구에서는 동네 앞에 현수막도 마음대로 걸지 못하고, 차별금지법은 또 다시 소리소문 없이 실종되었고, 군대에서는 동성간 합의된 성관계조차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서슴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화빵>에서는 최근 동성애를 대상으로 국가기관들이 자행하고 있는 “대놓고 차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① 사회를 뒤흔드는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필요하다 / 훈창 (차별금지법제정연대)

② 군 형법, “섹스해도 괜찮다” /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③ “현수막을 거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현수막 따위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 / 오김현주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회원, 민중의집 사무국장)

“현수막을 거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현수막 따위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

오김현주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회원, 민중의집 사무국장)

<지자체-NGO ‘성소수자 광고물’ 허가 놓고 갈등>(종합)

마레연(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은 작년 12월 초 지역 주민들에게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알린다는 취지로 ‘LGBT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제작해 마포구에 게시 허가 신청을 했다.

이에 마포구는 구 ‘광고물 관리 및 심의위원회’에서 광고물의 일부 문구가 명확한 근거 없이 작성됐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해당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게재를 허가할 수 없다고 마레연 측에 통보했다.(2013년 2월 6일 연합뉴스 기사 중 일부 발췌)

작년 가을 어느 날 나는 한 광경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짧은 메모를 남겼었다.

“평범한 출근길 신호등에서 이어폰을 꽂은 한 아저씨가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쳤다. ‘다 여자들이야! 아주 여자판이구먼!’ 목소리로는 전달되지 않는 위협적인 몸짓으로 그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애초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의지 따윈 없다는 듯이 화를 쏟아내고 있었고 길을 지나던 수많은 여.성. 들은 움츠러들었다.”

누군가는 술 취한 한 아저씨의 주정쯤으로 여겼을지 모르겠으나(나는 그가 그다지 취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몹시 동요했고 하나의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상황자체와 그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현기증이 나도록 어지러웠던 기억이 난다.

남성의 동성사회성에 대해 고찰했던 이브 세즈윅은 “남성 집단에 매복해 있을지 모르는 ‘계집’에 대한 경계는 주체 위치로부터의 전락, 즉 ‘나도 언젠가 성적 객체화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의미한다. 때문에 남성 집단 사이에서는 ‘계집’에 대한 마녀사냥이 격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을 호모포비아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남성문화에 내재한 동성애에 대한 격렬한 혐오와 여성혐오는 어떤 의미에서 대상을 달리할 뿐이지 같은 맥락으로 작동하며 가부장제 사회에 살고 있는 누구도 이러한 혐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혐오의 대상이 되는 여성과 성소수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나의 존재를 세상에 자유롭게 말하고 드러낼 수 없다는 것, 존재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또한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것은 분노스럽다기 보다는 차라리 깊은 슬픔이다. 슬픔을 내면화하고 피폐해지지 않기 위한 선택은 바로 벽장밖으로 나오는 행위, 그것을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는 ‘커밍아웃’이라 부른다.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는 마포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성소수자와 성소수자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적정체성의 경계를 질문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성소수자인권단체도 이미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고, 여러 가지 활동들도 많지만 굳이 ‘마포’와 ‘주민’이라는 이름을 넣어가며 모임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적어도 비슷한 고민들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마포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우리를 ‘커밍아웃’ 하는 것이다.

한명의 인간은 아주 짧은 시간적 순간과 하나의 공간에서도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분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흔히 얘기하듯 경제적으로는 부유하고 정치적으로는 권력을 꽉 움켜진 성인의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뿐이다.(과연 이런 보편적인 존재가 있을까 의문이지만)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는 비굴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살아내고 혹은 어떤 공간에서는 자유를 경험하고 다층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성소수자로 자신을 정체화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당연한 성소수자도 먹고 마시고 놀고, 연애하고 일하고, 슈퍼를 가고, 세금을 내고, 화를 내고, 싸운다. 이 당연함을 증명하기 위해 현수막을 걸고자 했다.

여기 살고 있고, 지금 이곳을 지나고 있으며, 꽤 많은 사람들이 성소자임을 알리는 것,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투쟁이 바로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가 시작된 하나의 이유이자 현수막을 걸고자 했던 이유이다.

성소수자는 허공을 떠도는 존재들이 아니다. TV에 나온 성소수자를 보고 “난 찬성해” “난 동성애 반대야” “우와 신기하다” “으…더러워”라고 이야기를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성소수자가 내 주변에 친구로, 가족으로,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거나 인정하기 싫을 때만 가능한 발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는 내가 살고 있는 혹은 일하는 곳이 어딘지 밝히고 그 공간을 내 몸의 크기만큼만은 차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더 이상 이 공간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삭제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세금을 내고 일을 하고 먹고 자는 일상적인 존재의 주민임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떳떳하고 좋은 것도 아닌데) 그냥 (좀 조용히) 살면 되지, 왜 자꾸 현수막 같은 것을 걸려고 하냐고……

여기서부터는 ‘차별’의 매커니즘이 작동한다. 무언가를 혐오한다는 것은 재채기를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행위이다. 처음 마포구청이 마레연의 현수막을 문제 삼을 때 튀어나왔던 공무원의 발언에는 ‘혐오스럽다’라는 발언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살고 있다가 반말이라 혐오스럽다, 현수막 배경그림이 혐오스럽다, 그림 중 손가락이 혐오스럽다, 레즈비언이란 단어가 혐오스럽다…’ 혐오스럽다는 표현에는 혐오에 기반한 사회적, 정치적, 심리적 맥락이 있을 뿐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리고 어떤 존재를 혐오하는 감정을 서스럼 없이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후지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지 마포구청은 빨리 간파했다. 그래서 그들은 구청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권친화적인 곳이다. 다만 당신들의 현수막의 일부가 과장되었고 어떤 표현이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있다라고 말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현수막 게시를 거부하고 있다.

혐오를 드러내는 것에 비해 차별은 좀 더 고도화된 전략이다. 혐오는 차별의 기반이 되지만 차별이 시작되는 순간 ‘혐오’는 논리와 보편적인 사람들의 정서를 고려한다는 미명아래 가면뒤로 숨어버리고 만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한동안 마포구청이 ‘레즈비언,게이,트랜스젠더,바이섹슈얼’ 보다 ‘성소수자’라는 표현이 어떠냐고 넌지시 묻고, ‘열 명중 한명은 과장되었다’라고 하며 그 현수막은 안되겠다라고 말하고, 국가인권위에서 구청의 논리를 따라 증빙자료를 제시하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와 그것을 증명하지 않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했었다. 빵빵한 자료를 열심히 찾고 온 사회가 미덕이라 칭송하는 가치인 ‘양보’를 조금만 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것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런데 자꾸 뒷꼭지가 땡기고 질문이 생겼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우리가 왜!’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우스운 것이었다. 존재는 삭제하려는 사람에게 증명의 부담이 있는 것이지 우리는 우주로 사라졌다 다시 마포구로 뽕하고 돌아오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현수막은 아직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현수막을 거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현수막 따위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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