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 영화가 된 집시의 삶, 집시가 된 영화의 삶 ㅡ 토니 갓리프의 <라쵸 드롬> (16호)

2013년 4월 23일culturalaction

영화가 된 집시의 삶, 집시가 된 영화의 삶

ㅡ토니 갓리프의 <라쵸 드롬>

 

최혁규 / 문화연대 활동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언젠간 꼭 말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나만의 영화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겨두고 싶은 영화가 있는 반면에, 계속 이야기해서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많이 보고 같이 즐거움을 나눴으면 하는 영화가 있다. 특히 후자엔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작품들이 속하곤 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 꼭 말하고 싶었던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 싶다. 이 영화는 어쩌면 영화라는 것의 운명을 은유하고 있는 작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 이 영화는 일종의 찬가다. 음악을 통해 집시들의 관계를 되살리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라쵸 드롬>의 감독 토니 갓리프의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 <라쵸 드롬>은 모든 소리들이 애초에 음악이라는 듯이 연장질 소리, 멧돌 가는 소리, 구두 닦는 소리, 꽃 파는 아이의 목소리 등 여러 소리들을 음악으로 보여준다. 몇몇의 뮤지컬 영화가 일상의 소리을 이용해 음악을 만들어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일상의 영역에 있었던 음악으로서의 소리를 되살려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그 소생의 장소는 바로 집시들의 일상이다. “집시들이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천 년 전 북인도를 떠나 유럽과 아프리카를 떠돌아다니며, 지딴(Gitane) 찌간(Tzigane) 보헤미안(Bohemian) 집시(Gypsy)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는 짤막한 텍스트로 시작하는 영화는 음악을 따라 집시들을 쫓으며 혹은 집시들을 따라 음악을 쫓으며 그들의 인류학적 지형도를 그린다.

 

대사도 별로 없고 오로지 집시들의 연주와 노래로 진행되는 영화는 상황의 설명이나 공간의 이동에 있어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로지 이미지와 사운드에만 노출되는데, <라쵸 드롬>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집시들의 방랑에 대한 명확한 이유와 사연을 알 수 없듯이, 그들의 음악을 따라 유랑하는 영화는 구체적인 정황을 알려주지도 또한 알 수도 없다. 그저 그들의 삶과 음악을 보여줄 뿐이다. 또한 집시들은 단일한 민족으로 규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음악을 따라서 그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라쵸 드롬>은 황홀한 영화다.

  

북인도의 라자스탄에서 시작해서 이집트, 터키,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으로 향하는 영화의 여정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집시들을 보여준다. 최소한의 삶의 도구들을 갖고 떠돌며 살아가는 집시, 그들만의 부락을 꾸려 살고 있는 집시, 도시의 주변에 정착한 집시 등 그 삶의 형태는 다양하다. 비록 유랑으로 시작했으나 모든 집시들이 지금도 떠돌며 살아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녀, 어른/아이 불문하고 모두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얘기했듯 그들의 일상의 영역에서 모든 것들은 음악이 된다. 가령, 아이의 뛰어가는 발걸음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 박자에 맞춰 음악이 연주되는 장면으로 전환되거나, 리듬이 들리는 곳을 들여다 보면 그들이 박수치며 노래하고 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를 연결하는, 그리고 집시들의 끈끈한 연결고리는 바로 음악인 것이다.

 

조너선 로젠봄은 이렇게 말한다. “<라쵸 드롬>은 “집시에 의해 만들어진 집시 영화다. 이것은 국적이 없다.” 집시들은 핍박과 수난을 피해 이곳저곳을 유랑하지만, 이 여정 또한 핍박과 수난의 연속이다. 그들의 현재진행형인 숙명을 그들의 음악을 통해 집시 혈통의 감독이 카메라로 담아낸 작품이 <라쵸 드롬>이다. 또한 국적이 없는 이 영화도 그 숙명의 연장에 있다. 나아가 어쩌면 유랑하는 운명은 이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 영화는 여전히 가장 천대받는 예술로서 핍박과 수난을 겪으며 전세계 곳곳을 떠돌고 있다. 영화 제목인 ‘라쵸 드롬(Latcho Drom)’은 ‘좋은 여행이 되길(have a good journey)’이라는 뜻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가 된 집시의 삶과 집시가 된 영화의 삶의 여정이 좋은 여행이길 바란다.

* 대사도 거의 없거니와 음악으로 이루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자막 없이 봐도 무방하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전편을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BCPJZLZTBYg&playnext=1&list=PL48E11D792664C50F&feature=results_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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