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사유하기] 뜨거운 감자, 병역 혜택과 스포츠 선수 (15호)

2013년 4월 11일culturalaction

뜨거운 감자, 병역 혜택과 스포츠 선수

 

정재영 / 체육문화위원회 활동가

 2013년 4월 8일, 병무청은 스포츠 국제대회 입상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병역 혜택의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병역법 시행령 제47조의 2(예술·체육요원의 공익근무요원 추천 등)에 따르면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를 차지한 스포츠 선수는 병역특례요원이 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하게 되는데, 병무청은 이에 대해 “한 번의 입상으로 사실상 병역을 면제받는 불합리성을 제거해야 한다”며 지금까지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국위선양의 기여 실적에 따라 대회별로 평가점수를 매기고, 누적점수가 일정 기준을 넘어야 병역 혜택을 받는 체육요원으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라고 밝혔다. 물론 이는 예술인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이지만, 본 글에서는 스포츠 선수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세계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 스포츠 선수가 병역의 의무를 덜어내는 것이 정당하냐는 논란은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다. 평생을 운동에 바쳐 세계무대의 정상에 올라 국가를 드높인 선수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은 옳다고 보는 주장도 있고, 반대로 징집제가 채택되고 있는 한국에서 특정 기술을 지닌 소수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또한 스포츠 종목별로도 입상의 편차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주장도 있다. 정리하자면 전자는 주로 ‘국위선양’과 ‘국민통합’을 우선시하는 입장이며, 후자는 ‘제도의 평등한 분배’를 우선시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스포츠 선수의 병역 혜택 기준 강화에 찬성하는 입장부터 살펴보자. 실제로 한국 스포츠는 종목별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도드라진다. 국제대회에서 입상의 가능성이 있는 종목은 유도, 태권도, 레슬링, 배드민턴, 사격, 양궁, 스피드스케이팅 등 전통적으로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들이다. 그러나 육상, 테니스, 조정, 핸드볼, 농구, 사이클 등은 제반 여건상 국제대회에서 입상하기 힘든 종목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상하기 힘든 종목에 종사하는 스포츠선수들은 그렇지 않은 종목 선수들에 비해 병역 면제의 울타리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스포츠선수들끼리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2012런던올림픽 당시 축구 종목에서 한 선수가 병역 혜택을 위해 고의로 투입된 사례와, 2006년 WBC대회 4강 진출로 법 개정까지 무릅쓰며 야구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어 논란이 된 사례를 들 수 있다. 따라서 병무청의 발표대로 누적 점수제를 도입한다면 단 한 번의 세계 제패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성적을 낸 선수가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또한 국위선양의 잣대가 불공평한 지점도 있다. 스포츠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국가를 빛낸 것에 대한 보상으로 병역 혜택을 선사한다면, 다른 분야에서 국가를 빛내는 사람들은 병역 혜택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비근한 예로,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휘어잡은 싸이가 만약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면, 싸이 역시 군대에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가? 일본과 동남아지역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K-pop스타들은? 이는 국위선양에 대한 잣대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스포츠 선수의 병역 혜택 기준 강화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살펴보자. 대표적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책임지고 있는 대한체육회가 이 입장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다. 병무청의 발표 이후 대한체육회는 9일 보도자료에서 “그동안 스포츠가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국위 선양과 국민 통합에 크게 기여했다”며 “올림픽 및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상위 성적에 입상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부터 최소 10년 이상 장기적인 훈련에 전념하지만 극소수만이 입상의 영광을 차지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한 번의 입상으로 사실상 병역을 면제받는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고 했다. 또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힘든 고통을 이겨내며 국위를 선양하는 각종 순기능을 고려해 국방부와 병무청의 체육요원 편입기준 강화방안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근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깃발을 꽂은 주장이지만, 현실을 감안하면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주지하듯이 한국 스포츠는 시작부터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었다. 체육인에 대한 병역특례제도가 생긴 것도 1973년, 스포츠를 군사정권의 도구로 이용하고자했던 시절이다. 자연스럽게 개인의 삶을 향유할 권리도 박탈당해야 했던 선수들은 마치 로프 없이 암벽을 오르는 사람처럼 위태롭게 운동에만 매진해야 했으며,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만을 미덕으로 삼아야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화하지 않은 이러한 국가적 시스템 안에서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병역 혜택이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병무청은 병역 혜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누적 점수제’로 변형한다고 하지만, 군복무로 인한 선수 생활의 불안에 오랫동안 시달려온 선수들을 감안하면 자칫 일대의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다.
논란이 뜨겁다는 것은 그만큼 두 가지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립한다는 것은 두 가지 입장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병역 특혜 논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두 가지 입장 중 무엇이 옳다고 규정하기 전에, 먼저 병역 혜택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병역 혜택 논란은 역사의 흔적에서 나온 신음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남북한 대치의 긴장 상태로 인한 징병제가 일차적인 이유이며, 또한 병역 혜택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국가대표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이 이차적인 이유다.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병역 혜택 논란의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번 병역 혜택 기준에 대한 수정은 병무청의 일방통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인 스포츠 선수들과, 또 그들을 바라보는 스포츠팬들까지의 의견도 받아들여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사족
 정확히 말하면 병역특례는 비단 스포츠계에만 국한하는 건 아니다. 예술 분야 역시 해당하는 것으로서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제예술경연대회에서 2위 이상, 국내예술경연대회에서 1위로 입상한 이는 예술요원으로 편입되어 스포츠 분야와 마찬가지로 대체 복무를 하게 된다. 또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야에서 5년 이상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병무청장이 정하는 분야의 자격을 취득한 사람’ 역시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하게 된다. 특정한 기술을 갖고 있는 이가 대체 복무를 하는 ‘산업기능요원’, 석박사 등 고급과학기술인력에게 연구기회를 부여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문연구요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위에서 다루지 않은, ‘능력주의’에 의한 병역의 불균형이 옳은지에 대한 또 다른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러나 스포츠 선수들이 보다 주목 받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스포츠가 보다 일상에 가까이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어 있고 그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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