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사람이 살았던 곳, 사는 곳, 살 곳 (15호)

2013년 4월 11일culturalaction

사람이 살았던 곳, 사는 곳, 살 곳

최 윤

0.
답사 루트: 독립문역 3번 출구, 사직 터널, 행촌동, 권율장군 집터의 은행나무, 딜쿠샤,  인왕산 성곽길,  수성동 계곡,  종로구 서촌, 통인시장, 서촌 계단집
1.
성곽으로 올라가기 전 아랫동네에 ‘국제사’라는 이름의 국제 전자 크리닝 세탁이 마치 이곳의 대문처럼 버티고 서있다. 하얀 바탕에 고딕체로 파란색 글씨다. ‘세탁’은 빨간색이다. 국제,  한 나라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나라를 상호 연결하는 것. 국제라는 말이 행촌동에서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빨,파,하양의 색깔 때문인지국제라는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탁소 간판이 행촌동의 국기같다. 혹시 사람들은 행촌동의 국제라는 말을 잘못 이해해서 앞으로 동네를 국제화시키려는 건가? 이미 국제사가 그 역할 을 하고있었을텐데 말이다.
2.
언덕으로 올라가는 동네 풍경 중 주택 단지 사이사이의 틈새가 일품이다. 인왕산 밑자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동네라 집들 간에는 빛과 공기가 시원하게 통한다. 그리고 틈을 따라 저 멀리 서울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어느 주택의 벽과 이웃 주택의 벽이 만나는 공간에 문 하나를 설치해 놓은 것을 보았다.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문과 연결된 윗 쪽 벽이 없었음에도 두 집을 잇는투명 벽이 있는듯한 착각을 일어나게 했다. 문을 뒤로하고 빛이 들어오는 저 곳, 서울로 통하는 문일까? 경계가 열려있는 이런 공간은 드물고 소중하다.
3.
윗동네로 올라오면 요상한 가게가 있다. 양면을 가진 집이다. 한 면은 쌀과 과일, 식품, 잡화를 파는 옥경이 식품이고 정 반대의 등돌린 면은 편의를 파는 세븐 일레븐이다.사람이 들어가는 통로인 입구가 앞이라고 한다면 세븐일레븐이 이 가게의 앞면이라고 해야겠다. 보통 얼굴에 가면을 써야하는 경우 본인의 얼굴은 숨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가게 주인은 눈코입만 떼어 뒷통수에 붙여놓았다. 맥도날드를 제치고 세계 각국에 최다 체인점을 보유하고있는 다국적 기업과 서울 종로구 인왕산 아래 체부동의 옥경이 식품이라는 두 면을 가진 샘이다. 이 곳에서 두 면의 두께는 존재 하지 않는다.
4.
권율장군님의 은행나무를 스쳐가면 딜쿠샤, 이상향, 행복한 마음, 희망의 궁전의 구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색적인 딜쿠샤의 생김새는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최면을 걸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좀 더 딜쿠샤에 가까이 다가가면 동화같은 환상은 역사가 되고 현실이 된다. 외풍을 막기 위해 몇 겹을 덧댄 판자들, 정리되지 않은 화분들, 깨진 유리창, 화재가 난 흔적, 빗물을 위한헐거운 통로. 이런 반창고들은 이미 붉은벽돌 건물과 한 몸이 되어 뒤엉켜 있었고 그 속엔 거대한 은행나무와 함께 여러 해를 넘기며 흘러간 딜쿠샤의 긴 시간이 담겨 있었다. 딜쿠샤가 이상향이라면 문화재로서의 딜쿠샤는 없는지도 모른다. 이미 지금의 딜쿠샤가 살아있는 딜쿠샤이기 때문이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서 나아가야한다.
5.
1차 이주로 인해 사람 채취가 나지 않아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빈집들이 모여있는 동네로 들어왔다. 해가 쨍쨍한 맑은 날임에도 집들의 자물쇠는 차가웠다. 그 중 뒷뜰바위는 어느 카페의 뒷 쪽으로 난 가파른 철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있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 뒷뜰에는 버려진 생활용품들이 무성한 수풀과 나뒹굴고 있다. 누군가 개집을 지어놓은 모양이다. 주인이 떠나면 떠돌이 개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생각했을까? 스트로폼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개 집은 텅 비어있다. 사람도 떠나고 개도 떠난 이 곳에 뒷뜰바위는 비록 집들에 가려 눈에 띄지 않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정정하다. 바위를 위한 바위로 가는 계단은 아슬아슬하게 녹슬었지만, 바위에 세겨진 그 옛날 서체는 녹슬지 않는다.
6.
서울시는 훼손된 성곽 일부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조선시대의 성곽은 성의 안과 밖을 나누어 도성의 범위를 확실히 하고, 수도인 한양을 외부로 부터 보호해주며,왕이 살고있는 지역의 독자적인 권위도 높여주는 여러 역할을 수행했던 우리의 보물이다. 600여년이 흐른 지금, 이전 성곽의 기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렇다면왜 우리는무너진 성곽을 다시 쌓아야 했을까? 한 쪽이 무너져 가라앉은 성곽을 예상 모형도에 맞추어 완전한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은 무엇을 위한 일이었을까? 600년의 세월이 뚜렿한 경계선을 그리며 오래된 것과 새것이 대조된다.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닌 성벽을 바라보니 서울시는 성곽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성곽을 쌓았나보다. 태조,세조, 숙종에 이어 이들은 무엇을 방어하고 뽐내기위해 성벽을 쌓은 걸까? 어떤 이들은 매일 주차를 하면서 하루에도 여러번 성벽을 마주한다.
7.
수성동 계곡은 자연인가? 자연이던가? 자연이다. 자연이라고? 강산 좋다! 저 바위 멋들어지게 꺾이는 것 좀 봐! 이곳은 공원인가? 계곡인가? 산인가? 이제 헷갈리기 시작한다. 계곡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광장의 난간 옆으로 잉꼬 두마리를 몸에 걸고 다니는 아저씨가 동네 아이들의 경의로운 시선을 받으며 앉아 계신다. 잉꼬는 두 발톱을 아저씨 옷에 걸고 있다가 가끔 파드득 거리며 날라올랐다가 다시금 아저씨에게 찰싹 붙곤 한다. 옷에 배설물을 거리낌없이 갈기는 잉꼬들에게 아저씨는 연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라는 말만 내뱉는다. 언젠가 그들이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할 거라는 믿음이 담긴 목소리다. 조선시대 중인들이 시를 지으며 즐겼고,정선의 그림에 등장하며, 추사가 오고 갔다는 수성동 계곡에 잉꼬 두마리는 새로운 풍경이다. 그리고 이제 이 곳의 소나무는 다리가 네 개이다.
최윤 _ 도시에 살며 미술로 반응하는 최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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