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디언 소녀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름(김윤보람) (15호)

2013년 4월 11일culturalaction

인디언 소녀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름(김윤보람) 

꽃섬(문화연대 시민자치문화센터)

구름을 처음 만난 건 마을텃밭에서였다. 멜빵바지를 입고, 텃밭에 쭈그려 앉아, 모종들을 보여 예쁘다고 얘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콜트콜텍 농성장에서 목공작업을 하였고, 쌍용자동차 대한문 분향소에서 테이블을 만들거나 뜨개농성에 참여하였으며, 문화로놀이짱에서 일하고 있다. 인디언소녀처럼 자유로워보이는 구름, 그 자유로움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 그 자유로움은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꽃섬: 별명이 ‘뜬구름’인데, 왜 뜬구름인지 알고 싶어요. 
구름: 구름이란 별명은 단순하게 지었던 것 같아요. 인터넷아이디를 생각하다가, 하늘 사진을 찍는 걸 좋아했는데, 사진의 구름을 보고 구름이란 아이디를 썼어요. 처음엔 뭉게구름이었는데, 대학에서 아이디가 길다고 (‘뭉’을 생략하고) 게구름이라 불리다보니까 구름이 되었고, 구름처럼  돌아다니고 떠있는 느낌이 좋고 자유롭고 싶은 마음, 계속 떠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요. 동그라미가 모여서 구름이 되는데, 어떤 친구가 저를 보고 둥근 사람이란 표현을 해주기도 했었어요.
꽃섬: 목공, 뜨개농성 등과 같은 작업들을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구름: 만들기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유치원 시절 꿈이 만들기 선생님이었어요. 중고등학교 때 미술수업이, 따라 그리기나 그림위주로만 되어있어서 만들기를 잊고 지냈죠. 만들기를 잊고 지내다가 다시 떠올리게 된 건, 20대 초반에 축제 관련 일을 했었는데, 기획을 하면서 페이퍼를 만들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 지쳤었어요. 2년 정도 축제기획 일을 하다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어요. 축제 공연 영화제 기획들은 많은 일반대중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부담되고 즐겁지 않았어요. 내가 즐거운 걸 하고 즐거움이 소수로 연결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백수가 되면서 흘러가듯 만나게 된 친구들이 있는데요. ‘사직동 그가게(록빠)’와 에오라(EOLA)였어요. 에오라(하와이어로 ‘생명’이란 뜻임)라는 행사를 접하게 되었는데 생활하면서 놀았던 잔치, 축제형태인데 삶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일반축제는 2-3일을 폭발적으로 세팅하는 것인데, 에오라는 준비하는 사람들이 한달동안 같이 생활하고 축제에 필요한 것을 만들고, 잔치 때 워크숍을 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들고, (몽골식 게르를 만든다든가 화덕을 만드는), 함께 작업을 했어요. 에오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축제기획자/공연자/관람자 이런 구분이 무너졌어요. 이때 만들기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뜨개질을 하게 된 건, 저랑 달군, 세희킴, 셋 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페이스북에서 우리가 만든 것들을 올린 적이 있는데, 서로가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기술공유를 하고 싶어서 모였는데, 세 여자가 뜨개질을 하기 시작하니까 이것도 만들고 싶고 저것도 만들고 싶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왔는데, 그러다 실체없는 뜨개연구회가 만들어졌어요. 달군집에서 금요식당을 했었는데, 그래서 뜨개질을 금요일에 달군네집에서 하다가 임정희 선생님한테 뜨개질하러 간다고 하니까 임정희 선생님이 뜨개행동단 관련 다양한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려주셨어요. 그 이미지들을 보고 자극을 받았고, 대한문, 농성정원기획프로그램이 있어서 실행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뜨개농성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뜨개질과 콜트콜텍 목공작업 등을 친구들과 함께 했는데, 농성칠판만들기를 어디에서 할까를 고민하다가 코오롱 관련 농성을 알리는 게 절실해 보인다고 생각해서 코오롱 농성장을 갔어요. 코오롱 농성장에서 했던 농성칠판만들기 작업은 연결의 흐름이 꽉 찼었어요. 만들기를 중심으로 하고 싶은 친구들이 모였고, 달군의 그림, 목수일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콜트콜텍에서 작업하는 상덕은 딱 필요한 재료를 모아왔었어요. 그림, 목공, 뜨개질이 다 합쳐진 작업이었지요. 진주의 뜨개질, 상덕이 낸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농성일을 알려주는 날짜 넘어가는 표지판 작업도 하고, 작업은 끊임없이 연결되었어요. 5월엔 코오롱 농성이 3000일이 되는데, 열장씩 40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밤이 되었을 때 그 작업을 시작했어요. 코오롱 농성자 일배형님과 같이 저녁을 먹고, 코오롱 작업을 하면서, 코오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슬픈 감정이 들었어요. 그렇게 서로에게 연결이 되었어요. 마지막에 코오롱농성장의 이야기를 밥먹으면서 나누니까.   
꽃섬: 제가 구름님을 처음 만난 게 텃밭에서였는데, (개인적으로 멜빵바지를 입은 구름님이 텃밭에 앉아 있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구름님이 ‘텃밭’을 찾았던 이유, 혹은 작물을 돌보는 행위에 대한 구름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구름: 사직동 그가게, 멜로디잔치에서 모종을 한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았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하다 자취방에서 모종을 살려야겠다 싶어서 작물키우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스티로폼 상자에 토마토 상추 등을 심었는데, 작물을 심고, 작물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행위의 순환자체가 확 다가오면서 먹거리를 직접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되었어요. 부모님이 다른 일을 하면서, 계속 이사를 다니면서도 밭을 만들어 농사를 지으셨는데, 농사를 지어서 먹거리를 따먹을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 귀농해서 해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작물이 귀엽기도 하고, 다음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니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묻고 싶어서 두물머리에 가게 되었어요. 두물머리 흙은 강변근처라 흙의 촉감이 좋아요. 농사를 부지런히 지을 수 있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지만 누가 지으면 옆에서 도우면서 지을 수 있는 정도예요.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흙을 만지며 일을 돕는, 농사를 배우는 정도가 지금은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두머리 작목반이란 이름으로 에코토피아와 록빠작목반 친구들이 합쳐져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옛날엔 자립을 해야겠다! 자급자족해야지!라는 생각을 많이했어요, 그런데 정말 농사를 중심으로 만난 재주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자급자족이 가능해보이기도 해요. 농사, 그림, 목공, 제빵, 컴퓨터 각자 일을 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를 만들어서 각자의 재주를 공유하며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꽃섬: 요즘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집, 대한문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향소, 코오롱 농성장에서 작업을 많이 하시던데, 농성장이라는 공간을 찾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구름: 평소에 친구들과 주말에 목공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났을 때 이원재(문화연대 사무처장), 최빛나(청개구리제작소), 임철민(목수)과 나무악기워크숍에서 이야기하다가 공장앞에 천막친지 일주일도 안 되었을 때 형님들이 “구름아 이게 필요한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무악기워크숍 회의를 하다가 콜트콜텍 노동자 아저씨들 이야기를 듣고 당장 천막농성장에 필요한 목공작업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노동문제에 대해 잘은 몰라요. 그렇지만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코오롱 농성장의 일배형님이 9년째 정리해고 문제로 싸우고 있는데, 지금까지 투쟁을 하는 이유는 복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리해고 자체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데, 이것이 잘못된 제도라고 이야기했던 점이예요. 개인의 문제로만 싸우지 않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싸운다는 이야기가 많이 와 닿았어요. 저는 사회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싸우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4월 21일(토)에 콜트콜텍 농성장에서 농성칠판을 만들기로 했는데, 냉장고 만드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요. 냉장고 만드는 것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전기를 쓰지 않는 냉장고를 생각했었는데, 습한 한국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서, 식량보관하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했어요. 
 주말에 친구들이랑(달군, 세희킴 등) 만들기 활동들을 계속 하고 싶어서, 물체주머니란 그룹을 만들었어요. 물은 물건의 物, 체는 몸體인데, 우리랑 맞겠다 싶어서 지은 이름이예요.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만들기가 필요한 곳이면 농성장이든 어디든, 텃밭의 생태화장실도 만들고,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친구가 필요한 게 있으면 가구를 만들어도 좋겠고, 만들기가 필요한 곳에서 작업을 이어나갈 생각이예요. 농성장은 만들기가 필요한 곳 중 하나이고,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어서 찾게 되었어요.  
꽃섬: 의자, 테이블, 농성칠판, 해먹 등등을 만드는데, ‘만드는 것’, 제작, 공작에서 얻는 정서, 경험 등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구름: 만들기를 하게 된 건 인디언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자연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삶의 중심에 있어요. 자연에서 버려지는 것들로 만들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만들기 과정에서는 같이 만드는 것, 공동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잘 만들어진 상품이나 가구에 대한 욕심도 있지만, 장인정신을 꿈꾼다든가, 고가의 가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은 지금은 없어요.(나중에 생길지는 모르겠지만_웃음) 무언가를 만들면서 가장 큰 기쁨은 같이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집에서 수도 파이프를 스스로 고치면서, 기술을 얻었다기보다는, ‘할 수 있다’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만들어지는 결과물보다 친구들과 함께 만들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고, 집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고치게 되는 것, 이런 것들이 큰 것 같아요. 소비되고 만들어진 것을 받아보는 삶에서 벗어나서, 직접 스스로 만들면서 변화하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꽃섬: 인터뷰를 하다보니 구름님에게 친구라는 것,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해 보이는데, 구름님에게 ‘친구’와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구름: ‘사직동 그가게’나 두물머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서먹서먹한 친구들도 있지만, 두물머리는 매주 못가니까, 농사일에 빠지고 못 챙기면, 섭섭해하거나 그럴 수 있는데, 그 친구들은 못가도 미워하지 않아요. 자주 가지 못해도 반겨주고 챙겨줘요, 두물머리에는 작년부터 많이 갔는데, 두물머리가서 자다오기도 하고, 같이 만들고 줍고, 토마토를 잔뜩 얻어오기도 하고, 농사행위중심이다 보니까 생활과 연결되는 공통점이 많아요. 비슷비슷한 친구들이 모였어요. 모두가 모두에게 열려있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요. 일적인 요소들이 없다보니까 더 서로 챙기게 되고 두물머리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자연이었죠. 친근감있고 편안했어요. 사직동 그가게와 두물머리는 비슷해요. 록빠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인도 다람살라에서 난민들이 탁아소 운영을 하는데, 탁아소를 중심으로 3-4세 아이들을 무료로 봐주는 탁아소이고, 여행자들이 자원활동을 해요. 6년 전에 인도여행을 갔다가 록빠를 만났어요. 탁아소가 있고, 여성작업장이 있는데, 작은 활동들을 활발하게 하는 곳이요. 양말, 지갑, 핸드폰 고리들을 만드는데, 그것을 사직동 그가게에서 판매해요. 인도를 여행했던 친구들이 인도 다람살라에 힘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었고, 그 마음들을 모아 사직동 그가게(록빠 2호점)가 만들어졌어요. 록빠를 만나고 백수가 되었을 때 사직동 그가게에서 자원활동을 했어요. ‘사직동 그가게’에는 핸드메이드에 집착하는 친구들이 모여있어요. 주말마다 워크숍이 열렸고, 멜로디잔치를 하기도 해요. ‘사직동 그가게’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는데, 3년 전에 농사를 지어보자 해서 록빠 작목반이 만들어졌어요. 두물머리를 그때 만나게 되었죠. 록빠작목반이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지었어요. 저는 일 때문에 가지 못하다가 재작년에 자주 갔어요. 에코토피아, 두물머리에서 농사짓는 아저씨를 만났고, 사직동 그가게와 두물머리의 친구들은 그렇게 연결되었지요. 
꽃섬: 앞으로 어떤 작업, 어떤 삶, 어떤 관계, 어떤 일상을 기획하고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
구름: 저는 그냥 보면 하고싶은 게 많은 사람같아 보이는데, 무엇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어떻게 살고싶냐?가 더 중요한 사람이예요. 목수라고 말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만들기를 계속 할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편안해져요. 편안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왔던 것 같고 앞으로도 흘러갈 것 같아요. 시골에서 살고싶다고 얘긴 했는데, 정착하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아요. 도시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어디에 살든, 도시에 살지만, 시골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작업들을 하고, 작은 것들을 같이 만들고 그 기쁨을 누리면서 살고 싶어요. 정착하고 싶지 않다는 건 3년 단위로 이동하며 살고 싶다는 얘기인데요, 정착하면 욕심이 생길 것 같아서요. 그런 생각을 버리고, 여기, 저기 유목민처럼 살다보면 가난하지만 재미있고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대단하고 큰 일을 해내는 사람보다는,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여행을 할 때도 목공작업(만들기)을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손공구를 배낭에 넣고(전기가 필요한 거대한 기계보다는 손공구) 친구랑 유랑하며 작업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비빌언덕은 제가 일하는 문화로놀이짱과 문화연대의 임정희 선생님, 짝꿍 임달구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응원해주시고 조언해주시기 때문에 힘을 얻고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문화로놀이짱은 너무 많이 버려지고 대부분이 매립 소각되는 목재들을 저장할 수 있는 공공창고와 스스로가 일상의 창조자가 되는 지역의 공동작업장인 공공 공방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록빠(ROGPA)는 ‘돕는이, 친구’라는 뜻의 티벳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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