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사유하기] 문명의 전쟁터, 스포츠(29호)

2013년 11월 12일culturalaction

문명의 전쟁터, 스포츠

정재영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5년 작 <뮌헨>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의 ‘검은9월단’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시오니즘이란 명분 아래 정치와 자본의 힘으로 토착민들을 쫓아낸 이스라엘과 그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간의 비극적인 분쟁에서 파생된 이야기다. ‘검은9월단’은 핍박받는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알리려 올림픽 특수를 이용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삼고, 이는 인질 전원과 테러단 상당수가 사망하는 불행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 주모자에 대한 암살 작전을 펼치지만, 결국 ‘고향’에 대한 애착은 국가를 떠난 ‘인간의 문제’임을 깨닫는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정리하면 영화<뮌헨>은 인간의 폭력성,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허울 좋은 국가(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쯤에서 돌아봐야 할 한 가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의 테러 사건은 단 한 번의 비극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뮌헨올림픽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영화 <뮌헨>처럼 세계 곳곳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혹은 문명의 차이로 대립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스포츠를 통해 표출되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이념과 인종을 떠나 ‘화합’과 ‘평화’를 지향하는 현대 스포츠의 이상과 대립되는 지점이므로 충분히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마찬가지로 민족과 민족, 그리고 이념과 이념의 대립으로 얼룩진 스포츠 현장은 또 무엇이 있을까?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 사건 용의자
먼저 1942년 8월 9일 키예프에서 열린 ‘죽음의 경기’를 들 수 있다. 어느 TV프로그램의 잘못된 각색으로 나치 독일과 폴란드의 경기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이 ‘죽음의 경기’는 나치 독일의 Flakelf팀과 우크라이나 지역팀 FC Start가 치렀던 경기를 칭한다. 다수의 유럽이 그랬듯, 나치 독일의 폭압에 시달리고 있던 우크라이나의 FC Start는 경기에 이기지 말라는 나치 독일의 노골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행을 겪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Flakelf팀을 꺾어버린다. 물론 이후 FC Start팀 선수 전원은 게슈타포에 의해 모진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2010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발생했던, 카프카스계 청년이 쏜 총에 모스트바 축구팬이 사망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는 곧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인종차별 폭동으로 연결되었다. 이 사건은 경기장 밖에서 벌어진, 스포츠에 열광하는 팬의 문제로 볼 수 있으나 조금만 시선을 달리 보면 민족과 민족의 대결로 점철된 근대 러시아의 역사를 그대로 안고 있는 사건이다. 20세기 초, ‘러시아 혈통주의’를 주장한 스탈린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난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스탈린의 혈통주의를 그대로 이어 받은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억압도 행해졌다. 결국 2010년의 비극은 이러한 민족과 민족간의 상잔에서 나온 비극인 것이다.
죽음의 경기의 배경이 된 2차 대전 중 키예프
러시아 인종 차별 폭동
굳이 시선을 유럽으로 향하지 않아도 된다. 남북한의 사이가 지금보다도 훨씬 좋지 않았던 60~70년대 남과 북의 이념 대결로 인해 올림픽을 보이콧한 경우는 공공연한 역사적 사실이며, 최근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레머니’ 역시 한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왜 스포츠 현장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느 행사보다 대중의 관심이 크고, 그만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축제이기 때문이다. 영화 <뮌헨>에서 테러에 성공한 팔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전 세계가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궁지에 몰린 국가 내지는 개인이라면 스포츠의 현장에서 위와 같은 일을 벌일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일들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각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 현실에서 제한되겠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더불어 타 민족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지닌 세계시민적 관점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그렇게 된다면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하는(할 수 있는)  사건들을 비판할 수 있는 공동의 의식이 형성될 수 있으며, 이는 곧  ‘화합’과 ‘평화’를 위한 국제 스포츠계 활동의 지지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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