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밀양전(戰), 그리고 밀양전(傳)(29호)

2013년 11월 12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밀양 송전탑 그리고 에너지정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은 외부에서 공급된 것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외부에서 공급되는 시스템에 길들여져 살다보니, 인간은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의, 식, 주, 에너지 등등 현대인은 그 무엇하나 자기 손으로 생산하지 않고, 돈으로 소비한다. 그래서 전력소비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공급하기 위해 파괴되는 지역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쪽의 소비를 위해, 한쪽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수도권의 전력소비를 위해, 밀양 할머니들의 일상을 짓밟지 않을 수 있는, 다른 삶, 다른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번 문화빵 29호 특집에서는 밀양에 송전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국가폭력과 송전탑 공사를 막고자하는 밀양할머니들의 일상, 그리고 대안적인 에너지 정책은 무엇인지를 다루어 보았다.
① 한전 전기 안 쓰는 게 소원인 밀양 주민들_이유진(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② 밀양에서_고향, 농촌, 생태계, 인권은 도시처럼 뚝딱 짓는 것이 아니다_(진보넷 벨라)
③ 밀양전(戰), 그리고 밀양전(傳)_이안홍빈

밀양전(戰), 그리고 밀양전(傳)

이안홍빈
밀양의 이야기는 765Kv 송전탑 공사에 대한 반대 투쟁으로만 말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갈등이 어느새 8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송전탑 공사를 막는 일이 주민들의 일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상이 그들이 원하는 삶의 모습은 아닐 겁니다. 밀양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이면 주민들 개개인의 삶을 통해 밀양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밀양 주민들의 삶을 듣다보면 현재 밀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전쟁 같은 상황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지난 9월 송전탑 공사가 강행될 것이라 해서 밀양에 갔다 왔습니다. 서울에서 새벽같이 밀양으로 가 버스를 타고 동화전 마을로 들어가니 한 낮이었습니다. 부녀회장님 댁에서 대추를 다 털어 고르고 있었어요. 해가 뜨거운 가을에 초록에 쌓여 앉아 검은 대추는 버리고 아닌 것은 바구니에 담아 착착 트럭에 싣고 있자니 이 곳이 전장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북에서 온 활동가 강이동하님과 부녀회장님 댁에서 조촐하게 점심을 먹고 시내에 현수막 걸러 나설 때가 되어서야 조금은 긴장했을라나요? 사실은 현수막을 걸다가 시청 공무원과 다투는 순간에서야 ‘싸워야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수막 걸기는 또 어찌나 재미있던지요. 밀양 한전 옆에 잽싸게 차를 세워놓고 현수막을 달고 나니 꼭 한전에서 나서서 원전을 반대하는 의견을 달아놓은 모양이었습니다. 결국 시청이며 역 광장까지 밀양의 친구들에서 제작한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다 달았답니다.
몇 년 동안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를 끈질기게 막아왔습니다. 아마 한전 역사상 이토록 질기게 맞서는 국민을 보지 못했을 것이지요. 한전 입장에서는 ‘고작 송전탑’을 짓는 일에 몸부림친다고 생각할 겁니다. 바로 그 고작의 몸부림이 할머니들을 공부도 하게 하고, 국회에도 가게 하고, 기도도 하게 하고, 집회도 다니게 하며 삶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몸부림의 울림이 송전탑에서 가장 멀리 살고 있는 서울에서 메아리를 칩니다.
밀양은 중앙권력의 지배를 거부하는 가치나 대안으로 격상되는 것과 동시에 하루하루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추도 털고 감도 따고요, 점심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그러다 아저씨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니 아줌마가 얼른 다른 채널로 돌려버리는 너무나 평범하고도 소담한 우리네 일상이 있는 곳입니다. 이 싸움을 하면서 욕을 너무 많이 하게 되어 스스로 입이 더러워졌다고 자괴하고 순간순간 죽음을 떠올리더라도 할머니는 말합니다. “엄마들이 강하다고, 그런 엄마가 할매가 되었으니 더 씨다”라고 합니다. 그 눈빛을 보니 어디로 한전이 공사를 하러 오든 막아선 것은 당연하고 앞으로도 든든히 막아설 것 같습니다.
박배일 감독의 <밀양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는 밀양 할매들의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해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현장의 모습을 담아내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다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밥을 먹으며 수다 떠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 <밀양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전문가 협의체가 구성되어 활동하는 40일 동안 송전탑 공사가 일시 중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밀양 주민들이 활짝 웃으며 이겼다고 말하며 만세를 외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현재 공사가 다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언제쯤 할매들이 진정으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투쟁이 삶이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일 텝니다. 일상이 완전히 반대 성질의 사건들로만 대체된다면 파괴된 것과 다름이 없겠지요. 하지만 할머니들은 산 위 농성장에서 초를 하나 켜고 화투를 칩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탁, 탁 점수를 냅니다. 투쟁 공간을 순수한 성소가 아니라 삶터로 정치화 하고 있는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들이 밀양에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보내기에 이 싸움에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밀양의 이야기에 가만 귀를 기울여 보세요. 밀양전(傳) 들으러 밀양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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