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이의 야옹야옹]변화하는 연극, 변화하는 나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 두 번째 공연 날(28호)

2013년 10월 17일culturalaction

변화하는 연극, 변화하는 나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 두 번째 공연 날

최미경(문화연대 활동가)
10월 14일 월요일 아침 9시 10분, 혜화동으로 가는 4호선 안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 두 번째 공연 날 아침. 대학로 혜화동 1번지 소극장으로 가는 지하철 안이다. 첫 공연 날 아침만큼 긴장되진 않지만 12시간 후 난 어떤 마음으로 극장 뒤에 있을지 궁금하다. 혹시 무대에서 대사를 잊어먹어서 속상해하고 있진 않을까? 아니면 감정몰입을 잘해서 좋아하고 있을까? 설마 무대에서 넘어지진 않았겠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드는 아침, 긴장되고 설레는 시간이다.
처음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경봉아저씨로부터 연극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뜻 하겠다고 했다. 그때 만약 연극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나’란 인간이 까발려지고, 살아오면서 한 번도 밖으로 표현해보지 못한 감정을 몸짓과 말로 표출해야 하는, 특히 다른 배우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임을 알았다면, 어쩌면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감정과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는 경험은 스무 살 즈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세상에 대한 냉소가 생기고 난 후부터는 감정은 최대한 억제하려 힘써 왔었다. 그래서인지 내 감정과 신체는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처음 연습을 시작했을 때 연출팀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화를 내 본 적이 없는 사람같다’고.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안으로는 계속 화를 내고 있었지만, 밖으로 화를 내 본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화를 내지 않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고, 감정을 밖으로 표현해서 들켜봤자 직장에서는 손해를 보거나, 관계에서는 상처를 받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거의 십년쯤 된 거 같다. 물론 그러다보니 마음속에 화가 쌓여서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닌 시간과 공간에서 괜히 짜증을 내고는 스스로 민망해하곤 했다.
그런데 연극에서는 극적인 상황을 위해 최대한 감정을 끌어올리고 밖으로 표현해야 했으니, 억제해왔던 낯설은 감정들이 울컥울컥 솟아올라와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특히 상대배우의 눈을 보면 슬퍼지곤 했는데, 누군가의 눈을 이렇게 오래도록 본적은 또 언제였는지,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느끼고 그것에 반응하기 위해 계속 상대배우의 눈을 보는데, 콜트콜텍 아저씨들의 7년의 시간이 떠올라 ‘거트루드 왕비’가 아닌 ‘최미경’으로 자꾸 돌아가서 슬퍼하고 있었다. 또 억제해왔던 감정만큼이나 몸 역시 굳어 있었다. 특히 머리와 턱이 굳어있었는데,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왔던 습관 탓인지, 표정이 다양하게 나오지 않았고,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서 몸은 통으로 움직였다. 나의 내부, 몸의 흐름에 집중하기보다 자꾸 바깥상황에만_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_ 신경을 쓰고 살아와서일까? _ 이제 혜화역이다.
 
                                                                                          사진_정택용
12시간 후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혜화동 1번지 소극장 뒤 분장실.
공연이 끝났다. 아저씨들은 대사를 가끔 잊어먹었지만, 역시 무대스타일들이시라 “언능 대사를 치시오”라고 애드립을 치면서, 역시나 코믹하게 무대를 잘 만드셨다. 관객들은 신나게 웃어주었고, 우리는 커튼콜에서 수줍게 웃었다. 아저씨들과 연극연습을 하면서 일주일에 1번 이상 일상적으로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집회나 행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면과 결들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얼굴보다 등이 사람의 보이지 않는 면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듯이.
연극에서 앙상블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아저씨들과 호흡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으면서도 힘들었다. 이 과정이야말로, 나(타자)를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여서, 평소에 쓰지 않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물론 내 몸이 굳어 있어서 온몸으로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진 못하지만(아~~ 마지막 공연에서는 온몸이 움직였으면 좋겠다), 아저씨들의 표정, 숨소리, 몸짓, 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뱉어내야 했다. 온몸으로 사랑하고 울어야 했다. 지금 내가 온몸으로 나(타자)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하려고 하는 의도는 가지고 있는데, 머리로는 사랑하려고 하고 있는데, 사랑이 체화되진 않은 듯하다. 9번의 공연을 하고, 마지막 연극이 끝나는 날, 난 무대 뒤에서 어떤 마음으로 서 있을까. 사랑을 끝내고 슬퍼하고 있을까. 아니면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서 아쉬워하고 있을까. 공연이 끝난 후 술자리에서 이 멋진 연극을 연출한 진동젤리 팀이 “영화는 변하지 않지만, 연극은 변한다”고 했는데, 10일 후 내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사진_정택용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