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양털폭탄연구실 ‘뜨개 환담’을 가다(28호) by anonymous posted Oct 17, 2013

2013년 10월 17일culturalaction
양털폭탄연구실 ‘뜨개 환담’을 가다
김영민/문화연대 자원활동가
나에게 문래동은 예전부터 꼭 한 번쯤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공공예술이나 문화운동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새로운 예술 창작촌으로 떠오르는 ‘LAB39’ 등등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나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관심과 흥미는 별다른 행동이나 인연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내 안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잊은 듯 지내오다가 문화연대 자원활동을 통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일주일 전에 이 곳을 방문해서 니트짜는 기계로 현수막을 만들고 안전하게 뜨개를 할 수 있는 고정 판넬을 나무로 만들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어색하게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낸 듯 하지만 그 곳에서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람들이 좋았나보다.
일주일 만에 그 곳을 다시 찾게 됐다. 그 곳은 ‘아티스트 런 413’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4가 31-48에 위치한 이 곳에서 양털폭탄연구실이 9월 23일 부터 10월 13일까지 가동된다. 양털폭탄 연구실은 청개구리 제작소에서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제작 랩으로 뜨개를 중심으로 크래프트 액티비즘(Craft Activism)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실이다. 한 달동안 뜨개 도구 제작을 위한 워크숍과 매뉴얼 제작, 크래프트 액티비즘 사례의 수집과 출간, 그리고 ‘부드러운 제작’을 위한 환담의 형태로 여러분을 초대하며 그를 통해 뜨개 전술의 가능성과 확장을 위한 경험을 만드는 곳(청개구리 제작소 참고)이다. 문화연대를 나와서 공덕역에서 지하철을 6호선을 타고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서 문래역에서 내린다. 1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문래근린공원을 벗어나면 크고 작은 규모의 철공소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보인다. 거기서 약간 먼 듯 보이는 신안인스빌 2단지 아파트를 바라보며 골목길에 가득 울리는 기계음에 취한 듯 걸어가다 보면 이 곳을 만날 수 있다.
오늘 저녁 이 곳에서 양털폭탄연구소의 ‘뜨개 환담’이 열렸다. ‘뜨개 환담’은 12월 제주 강정에서 강정의 평화를 위한 뜨개 행동 – 얀 바밍(Yarn bombing)을 제안한 미학자 임정희 선생님의 얀 바밍과 크라프트 액티비즘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 자리에 모인 모두의 참여 동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예술 행동, 커뮤니티아트, 스트리트아트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행위들은 공동체에 대한 소통과 대화를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서양도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고 지금과는 다르게 국가중심적인 시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1963년에서 70년대 초까지 이어진 프랑스 6.8혁명은 베트남전쟁과 맞물려서 ‘반전’이라는 키워드로 처음으로 국가저항의식이 표출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인종 차별이나 식민지 정책 등 서구 열강들이 지향해온 가치들의 문제점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아프리카의 독립, 남미의 체게바라, 일본의 적군파, 중국의 문화혁명 등 전세계적으로 해방에 대한 열망과 반성에 대한 욕구에 휩싸였다. 이 후, 신사회운동ㅡ환경, 여성, 문화운동 등ㅡ이 활발해 지면서 개인성이 확대되고 길거리 연극처럼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극장을 넘어 거리로 확대되었다. 얀 바밍도 퍼포먼스(예술행위)의 하나이다. 그 시작은 1878년 미국 텍사스에서 일어났다. 남는 털실을 이용해 기둥을 싸는 행위로서 여성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얀 바밍은 사회적, 정치적 논평으로 쓰이는 분명한 사회 운동의 범주에 포함된다. 행위는 파손 된 곳을 뜨개로 감싸 주의를 요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사회적 불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사실 ‘뜨개환담’에 참여하기 전까지 왜 목공이나 바느질이 아닌 뜨개를 퍼포먼스의 매게 혹은 구심점으로 택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있었다. 그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정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걷힐 수 있었다. 뜨개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술 행위인 직물제조의 한 방식이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인 호모 에렉투스가 언어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까지는 직물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인간이 채집 생활을 시작하면서 식물의 특성에 대해서 알게 되고 단순히 먹는 행위를 넘어서 몸을 보호 하고 더 나아가 꾸미는 행위까지 발전하였다. 이러한 치장을 통해서 감성을 표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기억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뇌를 통한 자연스러운 기억 방식과 경험을 통한 기억 방식이 있다. 최초의 언어는 직물의 매듭 만드는 경험을 통한 기억 방식으로서 지금의 숫자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직물은 자연 필요 발생적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은 가장 오래되고 자연스러운 감성 표출 행위인 것이다.
    
글의 앞부분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얀 바밍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사회운동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회적 협동이나 협력을 하는데에는 특별한 대화적 기술이 필요하고 대화를 어떻게 수평적인 구조에서 가능하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점차 편리와 편의가 강조되는 사회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대화와 수평적인 관계는 시간만 오래 걸리는 비효율적인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기저야말로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크라프트즘(craft+activity)적인 요구가 자라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설명을 해주신 임정희 선생님은 “인간은 양쪽 날개가 있어야 앞으로 나아가는데 너무 한 쪽만 강조하다보니까 제대로 날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씀하신다.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한 다양한 역할이나 행위 요소의 하나로서 ‘뜨개’가 큰 보탬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 날 때, 동대문에 털실이나 사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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