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군대문화의 일상화와 군인 코스프레, 그리고 <진짜 사나이>(28호)

2013년 10월 17일culturalaction
[특집]군복을 입은 한국 사회의 자화상
현재 한국의 꼴을 거울에 비추면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일 거다. 군복은 단순히 군인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남과 북이 체제 대립적인 상황이고, 역사적으로는 전쟁을 겪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전후 세대들이 권력을 쥐고 있고, 제도적으로는 강제적인 병역제도인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에서 군대는 대단한 존재감을 가진다. 그리고 군사주의 문화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장악한다. 주변에 군대를 갔다온 남자들만이 가진 보상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특히 최근 박근혜 정부의 국군의 날 행사나 미디어에 비춰진 병영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 현상들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군사주의 문화가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게 최근의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군복을 입고 진흙탕을 뒹굴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쯤 이 떼묻은 군복을 벗어버릴 수 있을지 이번 문화빵에서는 군복을 입은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다뤄봤다.
① 군사주의의 다양한 얼굴들 / 이용석 (전쟁없는 세상)
② 군대문화의 일상화와 군인 코스프레, 그리고 <진짜 사나이> / 권경우 (문화평론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기획실장)
③ 밀리터리 덕후를 인터뷰하다(가상 인터뷰) / 최지용 (문화연대 자원활동가)

군대문화의 일상화와 군인 코스프레, 

그리고 <진짜 사나이>

 
 
 
권경우(문화평론가/nomad70@daum.net)
 
 
한국사회에서 군대 문제는 민감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재임에 틀림 없다. 지난 여름 연예병사 사건에서도 나타났듯이,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대중의 정서는 양가적이다. 연예인들이 군대를 회피할 때는 비난을 퍼붓다가 언제부터인가 군입대가 유행처럼 번지니까 현역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열렬한 환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연예인 병사’라는 독특한 제도가 갖는 한계를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음에도 가만히 있다가 이번에 사건이 발생하고 나자 집중적인 포화를 퍼부은 것이다. 결국 국방부는 연예 병사 제도를 폐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에게는 군대라는 문화 혹은 조직에 대한 공통의 정서가 존재한다. 그것은 일단 군대가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며 자신들(주로 남성)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인정 욕구와 더불어 일종의 향수와 관련된다. 즉, 남들(주로 여성이지만 미필자와 면제자 등)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우월감의 표시이자 ‘예비역’이라는 이름을 통해 총칭되는 저급한 남성문화의 산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시이다. 그런 점에서 남성들이 군대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이 경험했던 훈련의 강도와 고통, 기이한 경험 등을 온갖 상상력을 가미해 쏟아내는 것은, 타인과는 다른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싶은 심리적 기제의 발로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병역을 회피하고자 ‘노력’했던 많은 연예인들이 대중의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적어도 ‘예비역 아저씨’들의 경험과 정서를 너무나 가볍게 여겼던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경험이나 정서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고, 과거지향적 특징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멀쩡한 이들이 군복만 입으면 이상해진다는 말은 일부 예비역의 현실을 꼬집은 표현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대단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합리적이고 건강한 판단을 하는 사람도 종교 문제나 젠더 문제에 이르게 되면 이상한 논리와 억지를 부리는 것을 자주 목격하지 않는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군대 문화를 경험하고 그 정서를 내재하고 있는 이들을 자꾸만 끌어내려는 시도가 다양한 영역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MBC의 <진짜 사나이>가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 공간의 변화 역시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지난 10월 1일 치뤄진 ‘국군의 날’ 행사가 10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는 사실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더욱이 가두 행진에 ‘미스코리아’ 여성들을 동원한 것은 분명 퇴행적 모습일 뿐더러, 사정 거리 1000 km의 미사일 등 최신형 무기 공개 등은 박근혜 정부가 ‘전쟁’을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음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정권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국가와 안보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국군의 날 행사를 중요하게 조직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와 관련된 일련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최근 보도된 바에 따르면 고위공무원 200여명이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재심을 통해 면제 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고위 공무원 등 공직자의 아들 16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론 그들의 해명처럼 자녀들의 선택권을 존중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이 외국에서 태어나고 이중국적을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과연 그러한 해명이 보수정권의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당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현행법상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음에도 일부 전역군인단체는 군복을 상시 착용하고 시위나 집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예능프로그램으로서 <진짜 사나이>의 성공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처음 편성될 때만 하더라도 별다른 관심도 못 받고 오래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동시간대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방송사의 ‘효자’ 프로그램이 되었다. 초창기에는 출연진도 큰 기대를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이돌 가수와 배우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극대화할 정도로 커다란 가치를 갖게 되었다. <진짜 사나이>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먼저 ‘군대’ 소재로 시작한 케이블 방송의 <푸른거탑>은 결국 폐지되었다가, 현재 <시즌 2>로 돌아왔지만 처음 누렸던 인기는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푸른거탑>이 주로 가상의 내무반 생활을 재연함으로써 군대에 대한 향수와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진짜 사나이>는 ‘군입대’를 통한 군생활을 실제로 헤쳐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그 중 다수는 이미 병역을 마친 30, 40대들로서 군생활을 다시 반복하고 있으며, 아직 입대할 나이가 되지 않은 이들은 처음으로 군대를 경험하고 있다. 그 외에도 호주 출신의 샘 해밍턴의 경우에는 외국인이라는 것 외에도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를 통해 소위 ‘구멍 병사’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으로 한국의 군대생활에 낯설어 하고 있다. 반대로 장혁은 ‘FM 병사’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갓 입대한 박형식 이병은 아이돌 가수 출신이면서도 낯선 세계에 적응해가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류수영은 고통 속에서도 긍정의 화신으로 활약한다. <진짜 사나이>의 힘은 리얼리티의 구체성과 연속성, 그리고 다양한  캐릭터들의 적절한 조합에 있다. 그 과정에서 김수로와 손진영 등 부상병이 두 명이나 있는데도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전혀 문제를 느낄 수 없을 정도이다.또한 <진짜 사나이>의 인기는 시청률의 분석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가장 높은 시청률이 40-50대 여성들이고, 그 다음으로는 20-30대 여성이라고 한다. 군대 경험이 있는 남성들은 이미 세대를 관통하고 있다. <푸른거탑>처럼 군대 소재를 하는 프로그램은 예비역 남성들이 주 시청자일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작 <진짜 사나이>는 성별과 세대를 넘어 기존의 시청률 인식을 깨뜨리는 것이다.  여성 시청자들이 많은 것은 자식을 군대에 보냈거나 남자친구 혹은 남동생 등을 군대에 보낸 이들이, 군대를 간접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청 경험은 직접 경험 못지 않게 매우 주관적이며 감각적이다. 바로 가족의 경험이자 사랑하는 이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군대가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진짜 사나이>의 외형적 인기와는 별개로 이처럼 ‘군대’와 ‘남성’이라는 소재가 폭발적 인기를 끄는 것은 사회적 집단 무의식이 작동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이러한 부분을 생각하는 것은 사실 지난 봄과 여름에 걸친 연예병사 사건이나 해병대 캠프 참사 등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는 연예인들의 ‘리얼 가상 체험’을 다룬다. 리얼은 분명 유격 훈련이나 사격, 행군, 작전 등을 실제처럼 소화하기 때문이며, ‘가상’이라고 하는 건 내무반에서 똑같이 절대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짧은 기간에 방송 분량을 촬영하고 각자 활동하는 ‘민간인’으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완전 리얼’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군대 생활을 경험한 많은 남성들이 훈련의 강도보다도 ‘시간과 공간의 분리’에서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진짜 사나이>가 결코 ‘리얼’에 근접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사회는 군대문화의 온갖 폐해와 문제점을 경험하면서도 자신들의 경험과 기억, 향수 등의 다양한 맥락 속에서 군대문화와의 단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진짜 사나이>의 진짜 성공 요인은 바로 그런 틈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겉으로는 군대라는 공간적 배경이 마치 성공 요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군대나  병영이라는 무대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 힌트를 제목에서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사나이’라는 표현이다. ‘사나이’는 남성을 뜻하며, 여성의 연약함과 대비적으로 ‘수컷’으로서의 남성의 강함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사나이가 울긴 왜 울어’라는 일상적 표현은 그러한 것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그냥 사나이도 아니고 ‘진짜 사나이’라고 한다. 그것은 ‘가짜 사나이’와의 대비를 통해 강조된다. 사나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진짜’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외양만 사나이가 아니라 뭔가 사나이로서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성들의 지배적 공간으로서 군대를 배경으로 사나이, 즉 수컷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흐름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케이블 방송의 <절대남자>라는 프로그램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강한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꾸준한 인기를 바탕으로 벌써 ‘시즌 3’가 진행 중이다. ‘상남자’나 ‘진짜 사나이’, ‘절대남자’와 같은 표현이 일상에서 부각되는 것은 이처럼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남성 아이돌 그룹에게 ‘꽃미남’과는 다른 차원의 ‘짐승돌’이라는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남성성과 육체성을 강조온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2000년대 초반 세련된 외모를 가진 도시적 남성성의 전형으로서 ‘메트로섹슈얼’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세련된 외모만으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일상화된 경제 위기에서 생존과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세련된 남성은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외부의 다양한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강한 남성이 필요한 것이다. 
 
<진짜 사나이>의 인기는 이처럼 원시적 남성성, 육체성의 부활을 배경으로 한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혹독한 훈련을 견뎌낼 수 있는 남성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다. 이제 남성은 자신의 온 몸을 던져 돈을 벌어오고(사냥), 강도와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로부터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국가 혹은 사회는 더 이상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법과 제도 등 사회적 안전망과 공적 시스템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이처럼 상남자, 절대남자, 진짜 사나이라는 담론의 유행은 왜곡된 남성성을 잘 보여주는 표현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원시적 남성성을 강조하는 반대편에는 섹시함을 강조하는 여성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여성 아이돌 그룹의 인기 비결은 오직 ‘섹시한 이미지’를 무기로 한다. 클라라와 같은 스타의 탄생은 섹시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의 두 가지 성별의 구분을 강화하고 특정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은 분명 문화적 퇴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남성성의 부활의 또 하나의 징후는 ‘아빠’의 호명이다. MBC의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자 KBS에서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도했다가 반응이 괜찮게 나오면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이처럼 TV를 통해 다양한 남성성이 부각되는 것은 실제 현실에서 나타난 ‘남성의 종말’에 대한 역설적 현상에 불과하다. 현실 공간에서 더 이상 강한 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20대 연애 관계 등 일상에서는 여전히 남성중심적 가부장제가 권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과거처럼 지배적 지위와 권력의 행사로서 남성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현상은 가족 살해를 포함해서 다양한 애증관계에서 비롯된 강력범죄의 증가를 들 수 있다. 그러한 잔혹 범죄들은 현실 공간에서 남성들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가 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쇠락한 신체를 가진 노인들이 특수부대 군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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