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데어데블에게 있어서 본다는 것의 의미란(27호)

2013년 10월 2일culturalaction
강신유
얼마 전 배우 벤 에플렉이 차기 배트맨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은 팬들은 배트맨 역할에 그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와는 다른 의미로 이번 캐스팅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별 상관없는 이유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벤 에플렉이 과거에 이미 마블코믹스의 데어데블 역할로 영화에 출연했었기 때문이다. 잊혀진 영화 <데어데블>에 개인적으로 소소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치 꼴지 야구팀의 에이스투수가 명문구단으로 이적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팬의 마음이라고 할까. 사실 이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했을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반응도 혹평 일색이기 때문에 뭐 이런 영화에 애착을 가지고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기회를 통해 잊혀진 맹인영웅 데어데블로부터 필자가 인상을 받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변호사이자 데어데블로 변신해서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 멧 머독은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다. 하지만 그는 시력을 잃은 대신 초능력에 가까운 청각과 균형감각을 얻었다. 그 새로운 능력덕분에 그는 사실상 앞을 보지 못하는 핸디캡을 거의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린 물론 그가 장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특히 영웅의 모습을 하고 악당들과 싸우는 장면에서는 과연 그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조건이 조금이라도 장애로서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브라유점자 택을 확인하면서 옷을 고르는 장면, 지폐를 종류별로 다르게 접어서 넣는 장면이 없었다면, 평소에도 그가 단지 지팡이를 들고 맹인행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그의 캐릭터 특성을 피상적인 것으로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이 영웅의 흥미로운 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은 바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머독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연인이 이제 떠나려고 하자, 잠시 뒤면 비가 내릴 테니 가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들을 종합해서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의 머릿속에 사물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도 볼수 있다. 이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화면은 머독의 시점을, 정확히 말하면 머독의 머릿속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 장면을 통해 본다는 것의 의미가 다시 한 번 환기될 수 있었다.
흔히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의 괴로움은 사물의 위치나 거리 등을 지각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초인 데어데블에게 그것은 몸을 가누는 것에 관계된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는 사물의 위치나 정보를 아는 것과 별개로 보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과 별개로 음식의 맛을 느끼고 싶은 욕망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인지하는 것과 별개로 보고 싶은 욕망은 실존한다고 하는 것을 이 영화는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영화를 본다는 것도 그렇다. 우리는 영화의 스토리와 재미 그 이면에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보고 싶어서’ 영화를 관람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망각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매혹하는 이미지’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간절히 무엇인가 보고 싶다고 느끼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마치 머독이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을 보길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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