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깡총]파리, 벨빌 그리고 라 제너럴(27호)

2013년 10월 2일culturalaction
파리, 벨빌 그리고 라 제너럴
청개구리 제작소 (www.fabcoop.org)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인상은 독특하다. 세계적인 낭만 관광지 인상보다 우리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이민자들이 넘쳐나는 벨빌(belleville)이라는 변두리 지역이다. 파리의 북동부 지역인 이곳은 한때 높은 범죄율과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모여든 이민자들로 마치 슬럼 지역처럼 인식되던 곳이었다.(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인식은 강하게 남아있다). 몇 개의 교차로를 두고 중국, 태국, 튀니지, 유대계 이민자들이 미묘한 분할을 만들어내며 융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치 사부 코소가 <뉴욕열전>에서 거론한 ‘치마타’(1)의 현장이 이러할 것이다. 중국인과 무슬림의 무력 충돌, 지역 예술가들의 페스티벌(벨빌 축제), 성노동을 하는 이주 여성들, 다른 뿌리를 둔 이민지들이 벌이는 각자의 시장이 이 골목 저 골목을 타고 흐르며 카오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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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빌의 골목. 골목 전체가 그래피티로 꽉차 있다. 이러한 흥취를 즐기러 오는 파리 젊은이들로 골목 초입의 카페는 3중, 4중의 테이블을 놓을 정도로 성업 중이고 골목안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는 거주민들은 괴로움을 호소한다.
슬럼화가 한창 일때 이곳에 스며든 스쾃터들이 만들어낸 점거(스쾃) 공간은 이 지역에 생동성을 만들었고 그 공간들을 통해 많은 것들이 연결되고 새로운 것들이 생성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가나 작업자의 아뜰리에 역할을 하던 스쾃 공간들은 점점 주변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현재는 이민자인 중국인들이 동네의 상권을 거의 장악하며 점점 차이나타운의 외양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들 이전에 이곳에 터전을 잡은 무슬림계와의 긴장감은 여전하나 중국인들 특유의 집합적 이주의 흐름을 막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러한 다문화 변종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벨빌은 현재 파리의 하위문화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자율의 벽’이라 불리는 벽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그라피티가 더해지고 사라진다. 유명세에 비해 매우 작은 이 벽과 주변의 풍경을 보기 위해 이제 젊은 여행자들도 기웃거리며 자신의 마이너한 취향을 이 동네의 주파수에 맞춘다. 그러나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곳을 찾는 이들은 그 풍경을 배경으로 자신의 시간을 소비할 뿐 개입하거나 간섭하는 경우가 드문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디서나 가장 강력한 팬덤은 역시 문화적 취향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소위 창조계급들이다.
파리의 문화예술 실험실 라 제너럴 (La Générale)
이 벨빌이란 곳의 지역성과 함께 이번 글에서 언급하고 싶은 곳은 라 제너럴이라는 공간과 운영 멤버인 엠마누엘 페랑(Emmanuel Ferrand)이라는 인물이다. 라 제너럴은 벨빌에서 가까운 파르망티 거리에 위치한 문화공간이다. 제작공간 이라기보다는 대안문화예술공간에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라 제너럴은 기존의 산업시설로 이용되던 전력회사를 시로부터 저렴하게 임대 받아서 몇 명의 기획자와 예술가로 구성된 콜렉티브가 운영한다.
라 제너럴의 역사는 앞서 서두에서 소개한 벨빌에서 시작되었다. 벨빌에 있는 건물을 일시적으로 점거해서 (그래서 엠마뉴엘은 스스로 ‘한때’ 스쾃터였다고 얘기한다) 2년 동안 특정 형식이나 장에 갇히지 않고 운영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라 제너럴 공간과의 접점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고 그런 활동들은 문화예술계에 다앙한 파장과 영향을 주었다. 라 제너럴이 벨빌의 공간을 떠나야 했을 때, 라 제너럴의 존재감은 파리시와의 협의를 통해 지금의 공간을 소액의 임대를 통해 합법적으로 운영할 그룹으로 고려될 만큼 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는 라 제너럴 스스로가 스쾃이라는 ‘해킹’적 저항 행위 안에만 자시들을 지정시키기 보다 지역 사회에 문화예술적 행위로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들을 지속적으로 해온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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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제네럴
전력 회사였던 곳을 파리시로부터 상징적 금액만을 내고 임대해서 쓰고 있다. 벨빌에서 스쾃할 당시 썼던 공간(병원)은 이것보다 더 컸었는지 지금 공간은 너무 작다며 투덜거리는 소리에 서울이란 메갈로폴리스의 격자 속에서 부대끼는 청개구리 요원들을 울컥하게 했으니…
라 제너럴을 소개해 준 엠마누엘 페랑(라 제너럴 콜렉티브 멤버)은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수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파리6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그의 현재의 위치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의 환대는 특별했다) 그는 사운드 아트에 관심을 가지고 악기를 해킹하다 예술 공동체와 접속하게 되었고 지금의 공간을 함께 운영하기에 이른다. 시인 이상 탄생 100주년 행사를 한국과 공동 기획할 만큼 한국을 잘 아는 엠마누엘과의 만남은 유럽 탐방 전에 서울에서 우연히 이루어졌다. 합정에 위치한 대안 서점인 북소사이어티를 찾았다 마주친 그와 벨빌 지역과 스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인연으로 라 제너럴을 방문하게 되었고 짧은 시간동안 사운드 아티스트로서의 엠마누엘과 공간 라 제너럴을 만날 수 있었다. 라 제너럴의 활동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실험성 강조한다는 그는 공간 운영에 있어서 오픈소스 지식과 DIY와 테크놀로지를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테크놀로지에 큰 관심이 없다며 아쉬워 했다) 엠마뉴얼은 수학자로서 음악과 프로그래밍, 수학의 동일적 뿌리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이해는 현대의 테크놀러지와 지극히 암묵지적 지식을 가르지 않는 조합적 방식의 그의 활동, 인간 관계의 근간이 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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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제너럴 부엌에서 그는 자신이 했던 활동 방문했던 곳들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관심사가 통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화를 거는 것.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고 태도였다
운영 멤버들은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퀴어 의제에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찾은 날도 저녁에 파티가 있다며 그 파티를 준비하느라 몇몇은 분주했다. 운영 멤버들 뿐 아니라 흘러드는 다른 관계의 네트워크들이 특별한 합의 없이 만들어 가는 자율적 활동들을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그것이 라 제너럴이 위에서 기획되어 툭 떨어진 문화공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생성의 기류 – 결정적 차이점을 만들어 내는 – 로 가득차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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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구조와 사용을 보면 기존의 스쾃공간들과 구성과 비슷하다. 정리되지 않은 비질서 속에서 자율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정리와 청결함. 그리고 배를 채울 수 있는 공동의 부엌.
스쾃과 해킹
수학자이자 사운드 아티스트인 엠마뉴얼의 활동은 예술과 과학, DIY문화, 실험적 음악, 스쾃문화가 삶과 활동에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그를 보면 스쾃과 해킹이 맞닿아 있는 지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실험적 음악의 경험은 그를 해킹의 길로 이끌었을 것이고 동료들과의 공간 스쾃은 그에게 다른 삶의 가치와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점이 우리들의 마음을 끌었고 이 글에서 벨빌이나 라 제네널이라는 공간 뿐 아니라 그 공간적 기획 속에서 ‘늘 동료들에게서 배운다’라고 표현하는 엠마뉴엘을 주요하게 기록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엠마누엘 페랑은 여름이 끝날 무렵 일종의 테크 캠프 (tech camp)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거기에는 디지털 기술과 대안 미디어, 예술이 함께 한다. 공존이라는 표현도 진부할 정도로 그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캠프 장소는 도시에서 먼 외곽이다. 물과 전기 없이 자연이 주는 제약을 로테크적인 DIY와 해킹으로 다루면서 열리는 캠프는 일종의 도시를, 자연을 스쾃하고 해킹하는 것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기회가 온다면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러한 캠프는 청개구리 요원들의 오랜 로망이기도 하니.
아쉽게도 짧은 시간 동안의 대화와 파티 준비로 약간은 산만한 공간은 더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마무리 되었다. 그는 계속 한국의 막걸리를 언급하면서 ‘발효 해킹 (혹은 푸드 해킹, 바이오 해킹이라고 언급할 수도 있겠다)의 기본은 이런 막걸리 만들기에 다 있어’ 라며 그럴 듯한 기술에 갖히지 않을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엠마뉴엘, 라 제너럴이 만들어 가는 지향에는 오픈 소스 지식과 테크놀로지, 지역적 협업과 기여, 타인에 대한 존중에 대한 지시어가 보이지 않게 곧곧에 뭍어들어 있었다.
(1) 치마타
국내에도 갈무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있는 이와사부로 코소(Sabu Kohso)의 ‘뉴욕열전’에서 저자가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개념인 ‘치마타’는 일본어로 ‘길이 걸쳐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 한다. 흔히 교차로 정도의 의미로 이해되지만 사부 코소는 사람들(특히 이질적 이민자)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형성되는 공간의 결절점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즉 ‘소통과 흐름의 공간’, – 정치적 주장과 예술, 퍼포먼스, 시장이 형성되는 교차로의 의미로 치마타를 거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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