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사회 곳곳의 작은 진동에 공명하는, 진동젤리 _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 연출(27호)

2013년 10월 2일culturalaction
사회 곳곳의 작은 진동에 공명하는, 진동젤리
_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 연출
인터뷰 정리_꽃섬(문화연대 활동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 배우로 결합하면서, 「구일만 햄릿」을 연출하는 진동젤리를 만나게 되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면서, 왜 진동젤리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과 연극 「구일만 햄릿」을 준비하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구일만 햄릿」 공동연출을 맡은 매운콩과 은영 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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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 두 분(은영, 매운콩)이 삶에서 연극을 만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매운콩: 대학에서 연극영화과 연출을 전공했어요. 연극영화과를 선택한 이유는 학창시절에 왠지 방송반이 멋있어 보여서였죠. 연극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 영화를 찍다보니 연기지도도 해야 했죠. 그래서 연극도 배워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군대 갔다와서 4학년 때 어떤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분 수업을 듣다가 연극의 참맛을 알게 되었어요. 연극연습이 좋아서 그 선생님을 따라 다녔죠. 대본만 보면 대사의 속얘기를 모를 경우가 많은데, 대본을 파면 팔수록 인물의 심정이나, 대본에 숨겨져 있는 것이 많더라구요. 그런 것을 찾는 재미가 연극의 매력 중 하나예요.
은영: 저는 연극이랑 전혀 상관없이 살다가, 수유너머에 가게 되었는데요. 평소에 연극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왠지 ‘연극’이란 게 무언가 있어 보이고, 해보고 싶고, 그런 환상이 있었는데, 수유너머에 연극을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수유너머에서 연극 동아리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 동아리 이름이 “광인들”이었어요. 연극동아리 “광인들”에서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한다거나 그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매운콩을 만났어요. 제가 있는 팀은 이근삼 희곡의 ‘원고지’란 작품을 몸짓으로 바꾸어서 작업을 했고, 매운콩이 있는 팀은 희곡에 충실하게 짜서 작업을 했죠. “광인들” 활동을 하기 전에는 연극을 하기 위해서 많은 계기나 절차가 필요할거라 생각했는데, 수유너머에 있으니까, 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더라구요. 연극이란 게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 할 수 있다거나, 극단에 들어가거나, 혹은 삶에서 큰 결단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연극을 직접 하게 되었죠.
꽃섬: 집단 이름이 왜 ‘진동젤리’ 인가요?
매운콩: 앞에서 말한 “광인들”은 동아리였다면, 동아리 활동보다 좀더 강도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연극이외에 미디어 아트도 해보고 싶었구요. 진동젤리 초창기에 ‘김종우’라는, 글쓰는 형이 있었는데, 지금보다 좀더 마음과 몸을 내서 작업을 해보자고 마음을 합쳐 연극동아리 “광인들”을 해체하고 “진동젤리”를 만들었어요. 종우형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플럭서스’에 대해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요. 흐르는 물도 좋지만, 흐르는 물보다는 젤리가 되면 어떨까란 얘기를 나누고, 종우형이 팀을 제안했고, 제가 다시 진동젤리로 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플럭서스’는 유동적으로 흐르다란 뜻인데, 어떤 형태를 변화하고, 흐르면서 고정되지 않은, 일상예술을 통해서 일상을 변혁시켜가는 유동적인 삶을 살자, 이런 의미로 우리는 ‘플럭서스’를 받아들였어요. 삶이란 실체가 있고, 신체도 어느 정도 고정된 틀이 있는데, 흘러간다는 것은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았고 불가능해 보였죠. 그래서 형체가 없는 물보다는, 형체가 있는 대신에 진동을 하는 젤리가 되자, 자기를 없애면서 형체를 변화시키는 것 말고, 제자리에서 진동하면서, 진동을 통해서 옆으로 전달하는, 진동젤리가 되자, 이런 의미로 ‘진동젤리’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죠.
꽃섬: 왜 연극, 혹은 미디어아트, 예술행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가요?
매운콩: 일상예술, 삶에서 나온 예술, 삶을 변혁시키는 예술, 이런 걸 해보고 싶어했는데, 미학이라는 게 삶에서 동떨어져있고, 주입식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로 이야길 하고 싶었고, 이런 방법의 예술을 찾고 있었어요. 연극영화과 나와서 대학로나 영화판에서 활동을 해보았는데, 작품들은 상업화되어 있고, 노동강도는 심하고 예술적 성취감은 없었죠. 그 판이 싫어서 다른 걸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수유너머를 때마침 만났고, 종우형을 만나고, ‘진동젤리’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죠.
진동젤리는 연극에만 한정을 두지 않았는데, 그 전에는 주차장 변신 프로젝트도 했었어요. 주차장을 마을공연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6개월 동안 진행했었어요. 동네 주차장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활동, 예를 들어, 연극, 퍼포먼스, 밴드공연도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기획력 부족, 컨텐츠 부족으로 망했죠. G20 기간에 그래피티 작업도 하고, B급영화도 만들고 이것저것 해보았는데, 작년부터는 연극을 주되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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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 10월 7일부터 <구일만 햄릿> 공연이 시작되는데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과, <햄릿>을 공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은영: 제가 <어쩌다 마주친>이라는 밴드에 소속되어 있는데, 콜트콜텍 농성장에 공연하러 갔었어요. 콜트콜텍은 장기 사업장이여서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했었던 때였지요. 그리고 진동젤리도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하고 싶어하던 때였어요. 아저씨들과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제안을 했더니 아저씨들이 하겠다고 했어요. 4월에 하기로 했었는데, 7월까지 어떤 공연을 할까를 두고 계속 갈팡질팡 했지요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하고 싶었거든요. 기존의 희곡을 연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시하는 형식이나 다큐멘터리 형식 등 여러 가지 방식을 논의했었어요. 공연장도 새로운 장소였으면 좋겠어서 낙원상가, 문래예술공장 등을 찾았는데, 딱히 어떤 결론을 내기가 어렵더라구요. 이번 공연의 목표는 첫 번째,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확장한다. 두 번째는 아저씨들과 한편의 공연을 만든다였죠. 그런데 새로운 것, 연극의 미학 이런 논의를 하다보니 그 소통의 과정에 아저씨들은 없더라구요. 그래서 아저씨들은 연극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의 희곡과 아저씨들이 만나는 과정이 실험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에게 어떻게 신선하게 다가갈까를 생각할수록 아저씨들과는 점점 소통이 안 되는 것 같더라구요. <햄릿>은 유명하기 때문에 고르기도 했고, 비극이므로 감정이 센 부분도 있어서 아저씨들이 연극자체의 즐거움을 알아나가는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햄릿>을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이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이 없다”란 구호를 구현하고 싶었어요. 기타를 사러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기타산업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나, 기타를 상품으로 걸어놓고, 기타를 얻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다가 해고노동자들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되는 극 등 다양한 것들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 중 한 분이 월요일에 공연을 하지 않고, 혜화동 1번지에서도 동의하는 취지의 공연이므로 초청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혜화동 1번지에서 할 수 있는 희곡을 고민하다가, <햄릿>을 선택하게 되었죠.
매운콩: 그치만, <햄릿>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아저씨들과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것, 그리고 좀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대본, 극 형식 등을 아저씨들과 함께 깊이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4월에서 7월까지 다양한 것들을 논의하다가 갑자기 <햄릿>으로 훌쩍 넘어간 것 같아요.
은영: 물론 충분히 얘기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본을 여러 개 가져가서 제안하는 것보다는, 연극을 진행하면서, 의미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극은 작업하면서 변하는 것이니까요.
꽃섬: 연극 「구일만 햄릿」을 만들어가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을 얘기해 주세요.
매운콩: 가장 좋았던 점은 콜트콜텍 아저씨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저는 공연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는 게 더 편해요. 사람들을 알고 친해지는 것을 원하는데, 유연하지가 않아서 사람과 관계 맺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아요. 특히 농성장이라는 공간은 더 어려웠던 공간이여서 이중의 부담감이 있었죠. 콜트콜텍을 통해서 농성장을 처음 만났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과 사회적 의무감 같은 게 있었는데, 연극을 통해 아저씨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게 가장 좋았어요. 아저씨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고, 연극을 만들어가면서 애정, 미움 등등의 마음이 생겼죠. 아저씨들과 작업을 하려면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고, 함께 작업하는 진동젤리팀과도 부딪히기도 했던, 그런 과정은 힘들었어요. 오히려 아저씨들은 연극을 처음 접하기 때문에 연극에 대해 느끼는 게 다르니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지 않은데, 이 연극을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과는 많이 부딪혔어요. 같은 감각과 이 일의 중요성, 진행상황의 심각성을 공유해야 하는데, 다들 생각하는 면들이 달라서 그 점이 힘들었어요.
은영: 연극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면, 보통의 관계설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나게 되요. 친해지기도 하고, 오히려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기도 하는데, 연극이 끝나면 묘한 동지애가 남아요. 그것은 친한 느낌과는 다른, 어떤 마음이 남아요. 작업에서 만나면 볼꼴 못볼꼴 다 보기도 하죠. 좋으면서 나쁘기도 하고 그렇죠. 그리고 연극을 작업하는 동료들이 이 연극에 대해서 그 중요성과 심각성을 느끼는 부분은 각자의 삶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꽃섬: 연극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매운콩: 연극은 언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발화를 할 때, 자기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고 골라야 하는데 연극도 이와 비슷해요. 특히 연극은 개인의 언어라기보다는 공동체의 언어예요.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면서 언어를 생산하고 발화하는 역할이 연극이고, 이런 연극이 생성이 되려면 공동체가 기반이 되어 있어야 하죠.
은영: 제게 연극은 뭐랄까. 살아가면서 뭐라도 해야 해서 하는 어떤 것이예요. 연극은 과정이 중요하고,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재밌어서 하는 것인데, 연극만큼 같이 하는 사람들의 삶에 침투하는 놀이도 없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각자를 까발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게 연극인 것 같아요. 지쳐도 또 하고 싶고 그런 게 연극이예요. 사람들이 모여서 복작복작 하는 것도 좋구요. 저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아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하려고 하면, 돈이나 현실과 같은 억압들이 있는데, 이왕이면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서 연극이나 공연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연극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해요. 연극을 잘 이용하면, 그것이 미학적으로도 훌륭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햄릿>은 내게 수단이었고, 쓰고 싶은 사람이 잘 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꽃섬: “구일만 햄릿”이 끝난 후, 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그것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은영: 일단 조금 쉬고 싶고요. (웃음) 만약 언젠가 전문배우와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잔혹한 것을 하고 싶어요. 사라 케인이란 작가가 쓴, 「폭파(한국어 번역 제목)」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사라예보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에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장면을 보고, 이 희곡을 썼어요. 호텔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이나 내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벽 하나 차이라는 것, 폭력의 날것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어요. 우리는 진짜를 보려하지 않죠. 그리고 가짜라고 하면 그 잔인함을 즐길 수 있죠. 전문배우들과 작업을 한다면, 극단에 치닫는 것을 해보고 싶어요. 사람들은 안전하게 있고 싶어하는데, 진짜, 날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관객들이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보면 볼수록 더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연극, 감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연극, 판단 이전의 상태에서 진짜를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꽃섬: 10월 7일 「구일만 햄릿」이 시작되는데요. 연극배우(콜트콜텍 기타노동자)나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매운콩: 연극은 내가 어떤지를 되돌아보게 하고, 나를 바꿔나갈 수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아저씨들도 이 연극을 통해서 자신을 알아가고, 감정 습관, 신체 등을 돌아보고, 관계맺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연극공연은 직접 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연극의 가장 큰 당사자는 배우와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죠. 관객들은 「구일만 햄릿」을 보면서 콜트콜텍 상황을 알았으면 좋겠구요.
은영: 아저씨들한테는 무대 위에 서면 누구나 멋있으니까 자신감있게 무대에서 하고싶은 걸 다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대는 무대에 서는 사람을 멋있게 보여주는 힘이 있어요. 사회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도 무대에 서면 멋있어요. 무대가 50% 멋지게 만들어주면 그 다음은 배우가 만들어가는 것이죠. 50%는 이미 멋있으니까 나머지 50%는 자신감있게 지르면 좋겠어요. 아저씨들이 하고싶은 것을 무대에서 맘껏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대 위에서 실수가 나오면, 그 실수는 다같이 만든 것이니까 함께 넘어가야 한다는 것도 아저씨들에게 얘기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은 「구일만 햄릿」을 너그럽고 재미있게 보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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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난 처음으로 연극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진동젤리의 은영 씨와 매운콩을 만났다. 처음 연극연습을 시작했을 때, 그들은 연극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연극에서는 ‘앙상블, 호흡, 집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기 대사만 신경쓰면 전체 리듬이 깨지고, 자신의 신체를 잘 알고, 호흡하면서 표현해야 감정이나 의도가 전달되고, 상대의 대사, 배역의 상태에 집중하고 반응하며, 에너지를 주고받아야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은 삶과 비슷하다. 이 모든 것을 연극을 만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준 진동젤리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 꼭 연극 <구일만 햄릿>을 보러 오시라. 2000일이 넘게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기타노동자들이 딱 9일만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는 멋진 장면을 볼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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