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를 이해하기 위하여]헉ㅎ.. 헉..(26호)

2013년 9월 17일culturalaction
헉ㅎ.. 헉.. 
임효진
 
 들리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숨소리뿐, 무릎관절이 불붙은 것처럼 홧홧하다. 가파른 돌계단은 끝이 없고 고개를 치켜 올리면 나와는 무관한 아름다움이 둥둥 떠다닌다.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사방은 높아진 고도를 꽁꽁 숨긴다. 쫓기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다. 뒤가 까마득한 걸 확인해야지만 걸음이 떨어질 것 같다. 대부분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데 가끔 정말 엉뚱한 것들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거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생각을 비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야.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이는 경지에 대해 설명하려다가 포기하셨던 교양 교수님이 떠올랐다. 더 이상은 못 걷겠다 싶어서 잠깐 돌덩이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면 1분도 안가서 다시 걷고 싶어지니 그건 또 이상한 심보여. 배낭에 들은 음식들을 전부 계곡에 던져버리고 싶다가도 대피소에서의 만찬이 현재 유일하게 확신 가능한 행복이라는 생각에 어깨끈을 고쳐 멨다. 
 
 “화엄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성인 남자 기준으로 3시간 정도가 걸려, 우리도 서둘러야 해지기 전에 도착하겠다.” 등산경험이 많은 일행 한 분이 우리 초보자들을 아무리 다독여줘도 이 오르막에도 끝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지울 수가 없다. 왜냐면 그 3시간은 애저녁에 지나버렸단 말이야. 13년도 2분기 졸업생의 곤조가 있지 나는 힘든 티는 내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지리산의 한자 뜻이 다녀간 사람은 그 지혜가 달라진다는 뜻이라기에. 열심히 오르고 열심히 내려서 나도 내 지혜가 달라졌으면 했다. (그리고 실제로 등산보다는 졸업식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다.) 함께 산에 오르는 친구의 어깨에는 필름카메라가 들려있다. 무겁겠다는 생각도 들고 나도 카메라 하나 챙겨올걸 싶은 아쉬움도 들었다. 저녁 만찬과 함께 정상에서 찍는 근사한 사진 한 장 역시 등반의 묘미 중 하나니까. 여차하면 페이스북에 사진이랑 같이 있어 보이는 말도 덧붙여야지. 나 지리산이야. 나 지혜의 총량이 달라진 기분이야. 이렇게…….자랑….해야지……..헉헉.. 저만치 앞서가던 오빠가 뭐라고 외치신다. 다 왔나봐, 목에서 쇳소리가 났지만 전에 없던 기운이 솟는다. 대피소는 아니었지만 평지가 나왔고 처음으로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 눈앞에 이제껏 지나온 자리들이 촤르륵 펼쳐졌다. 위로는 한층  가까워진 꼭짓점들이 나를 반긴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까 힘듦이 가심은 물론이거니와 도시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에 눈알이 시렸다. 엄마에게 셀카를 수차례 전송한 뒤 뿌듯함을 느끼며 마지막 고지를 향해 가벼이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에서 외출 시 매번 타는 버스가 있는데 기사님 자리 바로 뒤에 TV가 달려있다. 나는 그 TV에서 짜집기해 틀어주는 최신 프로들로 요즘 케이블의 동향 및 유행을 파악한다. 경기도권역에서 서울 중심부를 이어주는 버스들에 장착된 그 TV는 많은 이들의 출근길 지루함을 달래줌과 동시에 도시에서 유연하게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최신의 정보들을 제공한다. 그 프로 봤냐고 누가 물어보면 대충 안다는 뉘앙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버스에서 틀어주던 2~3분정도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밖에만 나오면 항상 배가고픈 나는 프로그램 중에 식신로드를 가장 넋 놓고 보는데 언제나 식신로드 다음에는 마운틴TV의 명산시리즈가 나온다. 몰입은 짜증으로 돌변하고 동시에 내가 버스 안이라는 사실이 새삼 낯설어 지면서 창밖의 풍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도시에서도 산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드는 구나, 나 어디로 가고 있었더라. 되짚지 않으면 영원히 내리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피어날 때쯤 다시 TV로 눈을 돌리면 명산시리즈는 어느새 끝나고 정적 속에서 코미디빅리그가 흘러나오고 있다. 
 
 대피소에서의 하룻밤은 생각보다 안락했다. 어디서든 눕기만 하면 10분 안에 취침이 가능한 나는 대피소 침실에서도 소등 직후 잠이 들었다. 샤워는 커녕 세수도 않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얼굴이 평소보다 멀끔해서 놀랐다. 지혜는 주시고 여드름은 거둬가소서. 세 명이서 라면을 4개나 끓여 먹고 10분 거리에 있는 노고단 정상을 향해 마지막 걸음을 옮겼다. 이 글은 기행문일까. 재미는 드럽게 없지만 그래도 일단 정상까지 허뤼업..
올라가는 길에 공원관리자 분께서 노고단은 10분에 한 번씩 경관이 바뀌니까 위에서 좀 오래 머물다 내려오는 게 좋다는 팁을 주셨다. 올라가는 동안에도 하늘이며 산이 너무 아름다워 어디다가 눈을 둬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었다. 오르는 사람들 모두가 벅찬 경관에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연은 취향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든다. 정상에 서서 그냥 구름 움직이는 것만 쳐다보았을 뿐인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옮겨가는 구름에 따라 햇빛은 다르게 비추고 그럴 적마다 모든 것이 새로와 보이는 데 여길 보통의 말들로 부르고 설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실 도시를 아주 좋아한다. 무질서하게 뻗은 스카이라인이며 쏟아지는 군중 속에 파묻히는 일이 얼마나 아늑한지 잘 알고 있다. 상점들이 앞 다퉈 노래를 틀어놓는 바람에 사색은 이어폰볼륨을 만땅으로 높여야만 가능한 그 거리들을 좋아한다. 하물며 버스에서도 지루할 틈 없이 TV를 틀어주니 나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는 더더욱 없다. 
투명한 풍경들이 비수같이 날아드는 노고단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하늘의 사진은 내려오는 길에 다시 보니 실제로 보았던 풍광에 비하면 아주 형편없었다. 그래서인지 다녀온 뒤 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사진을 보여주는 대신에 나는 달변가가 된다. 감정적으로 재구성해낸 노고단이 사진보다는 훨씬 극적이니까.
 
 다녀와서 한 1주일동안은 눈에 들어오지 않던 서울이 이제 다시 눈에 들어온다. 서울도 계절을 갈아입을 채비를 하는 중이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아르바이트 덕에 창문에 걸린 은행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도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이번주 사진은 노고단 정상에서 친구의 필름카메라로 찍었던 사진을 개재하면서 글쓴이의 얼굴을 오픈하고 여러분 이제까지 저만 즐거워서 죄송했다는 말로 영원한 인사를 할까 했지만 직장일로 바쁜 친구가 아직 필름 현상을 맡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각자 인터넷으로 노고단 사진 좀 검색해서 보세요. 내가 올라갔을 때 옆에 계셨던 사진동호회 분들이 멋진 사진 많이 찍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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