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로운 덕후의 우울]언어가 지닌 숙명적인 한계를 짊어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언어의 정원>(26호)

2013년 9월 17일culturalaction
언어가 지닌 숙명적인 한계를 짊어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언어의 정원>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십대 시절의 어느 날,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을. 육체의 성숙도와 정신의 성숙도가 균형이 맞지 않아 나는 자주 허덕이곤 했다. 또래에 비해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성숙하고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미숙한 오타쿠 소년이었던 나는 넘실거리는 자의식의 파도에 휩쓸려 다녔다. 수천 광년이나 떨어진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오는 별빛을 기다리듯이, 나는 도달할 수 없는 아주 먼 곳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중력을 잃고 부유하는 생물처럼, 종종 지구와의 거리감을 상실하곤 했다. 어두운 밤 막다른 골목길에서 길을 잃고 울던 소년은 자주 아팠다. 무엇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물론 물리적인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투정을 부려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이가 우는 것을 멈추는 것처럼, 어른이 되는 순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다.
내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접한 것은 아마 열일곱이 되던 해의 어느 날일 거다. 세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를 몰라 헤매던 나날들이었다. 그 시절 나는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고 도서관에 가서는 잡다한 책들을 뒤적이곤 했다. 그러다 책장 한구석에서 발견한 것이 <별의 목소리> 코믹스 판이었다. 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 소녀는 마치 나처럼 공중을 부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거리 감각을 잃고, 둘 사이에 놓인 엄청난 간격 속에서 서로를 그리고 있었다. 지상과 우주로 갈라진 연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영원처럼 긴 시간을 묵묵히 견디어 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강한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지금이나 그 때나 변함없이 나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이야기란 자고로 하루하루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면서도 타인과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할지를 몰라 힘들어 하던 나였기에 그 이야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은 인간이 지닌 원형적인 그리움을 관통한다.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결핍감, 즉 인간이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것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비극 속으로 발을 디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실재계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지만 상징계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기의로 만나려하지만 기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가 가진 한계를 숙명처럼 끌어안고 지난한 시간을 해쳐나가야만 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신작 <언어의 정원>은 이전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인간은 세계와 부딪히면서 변증법적으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언어의 정원>을 보면서 느낀 것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그의 영화도, 나도 예전에 비해서 성장해 있었다는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페르소나인 그들은 여전히 서로의 사이에 놓인 간극 속에서 언어가 지닌 한계에 부딪히곤 했지만, 예전에 비해 좀 더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였으며, 아픔을 견뎌내는 법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좀더 솔직하게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과 상대에게 솔직해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그것은 언어와 인간이 가진 숙명적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간극을 좁혀나가기 위해 노력할 때, 그리하여 끊임없이 실패할 때,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덤덤하게 매일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만나게 될 테니까, 만나게 될 그날을 기약하며 포기하지 말고 살자. 살아내자. 그것이 바로 우리 삶 속에서 사랑을 완성하는 길이다.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