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이의 야옹야옹]만화적 상상력의 공간, 충북괴산탑골만화방(26호)

2013년 9월 17일culturalaction
<‘문화귀촌’으로의 여정②> 
 
만화적 상상력의 공간, 충북괴산탑골만화방
시민자치문화센터 최미경
충북괴산탑골만화방에 다녀온지 10일이 지났다. 10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시간들이 까마득하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높은 빌딩과 차들 사이에서 살다보니 충북 괴산에 다녀왔던 시공간들이 꿈처럼 느껴진다. 이젠 나이가 들었는지 도시의 소음이 점점 더 시끄럽게 느껴지고 복잡한 지하철은 괜찮았던 마음도 다시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다른 삶으로의 전환을 매순간 생각하게 되는데, 이 준비 역시 만만치 않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떤 삶의 기술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 조사하고, 찾아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 준비를 위해 지난 8월 30일 충북괴산탑골만화방을 찾았다.
충북괴산탑골만화방은 작가들이 오랫동안 공사한 문화공간이다. 집을 고치고, 창고를 단장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탑골만화방을 소개하고 있는 온라인카페에서는 탑골만화방을 ‘목적없는 공간이지만 즐겁게 놀 수 있는 만화책과 오락기가 있고,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어른 장난감이 가득한 공간이 되고자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금요일 밤 늦게 도착한 탑골만화방엔 만화책이 가득했다. 아궁이방, 다락방 등 5개의 방이 있었고, 마당에는 평상이 있었으며, 생태화장실과 부엌, 만화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박 3일 동안 만화방에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이 가끔 와서 만화책을 보기도 했고, 차로 지나가던 여행객들이 만화방이 있는 걸 신기해 하며, 달리던 차를 멈추고 공간에 들어와보기도 했다.
2박 3일 동안 탑골만화방에 있으면서, 만약 어디론가 삶의 공간을 바꾼다면, 그 공간에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컷에서 다음 컷으로 넘어가기 전 빈 칸, 빈 공간, 빈 그림을 상상하는 게 만화적 상상력이라면, 다음 사건이 일어나기 전, 다음을 상상해보는 즐거움과 설렘이 존재하는 공간, 만화방, 극장, 클럽, 식당, 도서관 등 놀이터들이 연결되어 있는 어떤 공동체에 대한 상상이 가득한 공간을 만들어나간다면, 재밌지 않을까.
두 번째 날에는 괴산지역에 대해 좀더 알아보기 위해 솔뫼농장을 찾았다. 솔뫼농장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 일대에서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모임이다. 솔뫼농장엔 솔뫼어울림터, 솔멩이골 작은 도서관, 솔뫼 국선도 수련원 등 농사뿐만 아니라 함께 즐길거리들이 많아 보였다. 솔뫼농장을 안내해주신 김의열 농부님은 1994년 초기부터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농사도 짓고, 지역활동을 펼치며, 활력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솔뫼농장은 6가구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14가구 22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농약도 비료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으니, 논에 멸종했던 투구새우가 나타났다고 한다. 또 가구당 1표가 아니라 여성들도 1인 1표의 의결권을 가진 회원으로 자격을 갖는 개별 회원제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괴산지역탐방을 같이 간 지인이, 농약을 치지 않아서 환경이 좋아지니까 자연스럽게 생겨난 투구새우처럼, 어떤 활력과 문화적 에너지 역시 사람들의 관계, 환경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 같다고, 단순히 그림그리고 노래부르는 프로그램이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어, 함께 평상에서 별보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삶이 문화적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우린 바쁘게 살다가, 함께 별보는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함께 별을 보고, 만화책을 보며 킬킬거리고, 울고 웃을, 시공간을 찾기 위한 여정이 문화귀촌은 아닐까. 생존경쟁에 내몰려 자신의 내적욕망을 모르거나 억누르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목적없는 시공간에서 자신의 내적 욕망을 마주하는 삶을 찾아나가는 것, 그런데 혼자서는 자립적 삶을 꾸리기가 어렵다. 단순히 말해서, 혼자 집을 만들고, 혼자 농사짓고, 혼자 살 수는 없을 것이기에. 그리고 그 무엇보다 항상 혼자면 즐겁지 않을 것이기에. 함께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공간을 열어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과는 다른, 삶의 차원으로 넘어가기 위한 즐거운 기획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음에는 어떤 시간과 공간이 펼쳐질까?”, 다음의 만화 컷, 장면을 추리해보는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공간, 충북괴산탑골만화방에 언제 한번 방문하여, 뜨끈한 아궁이방에서 배깔고 누워 19금 만화책을 읽는 즐거움과 야한 상상을 만끽하시길.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누구를 만날까. 무엇이 나타날까. 다음 컷을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또 다른 지역탐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길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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