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금상의 다문화사회 읽기]조선족 동포, 그들은 누구인가?(26호)

2013년 9월 17일culturalaction
조선족 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권금상 / 사람숲다문화연구소 대표, 문화연대 집행위원
지난 9월 3일은 연변조선족자치주 61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현재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족 동포의 수는 대략 200만이며 50여만 명이 넘는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 많은 수의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에서의 삶을 경험하는 셈이다. 비록 이들이 공간적으로 국경을 달리하고 있지만 민족동질성, 같은 한국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동포와 달리 우리사회에서 ‘조선족’ 이라는 호칭은 사회적인 낙인집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선족의 명칭은 중국공산당이 민족정책의 일환으로 중국내 조선인을 하나의 소수민족으로 처음 승인한 1928년 7월9일 ‘중국공산당 제6차 대표대회에서의 민족문제에 대한 결의안’에서 출발한다. 중국내 조선족(고려인, 한인 등을 총칭)을 당시 8개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명시하여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각 소수민족이 법률 앞에서 평등하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후 각종 공식문서에서는 조선족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이라 표기하는데 통상적으로 조선족이란 표현이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이 호칭은 중국이라는 입장에서 규정된 명칭으로 한국인들에게는 재중동포라는 단어가 적합하며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들에게는 조선족 동포라는 용어가 더 맞을 것이다.
중국내 조선족 인구는 1922년에 51만 5,865명, 1930년 60만 7,119명, 1936년 85만 4,411명, 1944년 216만5,857명을 나타낸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 등으로 인구가 줄어 1953년에는 112만 명으로 감소하였고 그 후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1990년 192만여 명에 이르고 2000년 이후 다시 증가를 보여왔다.
중국조선족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질곡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청 말기부터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하여 벼농사를 지으며 집거촌을 형성하여 조선문화와 조선어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중국 26개 소수자치주 중에서 조선족은 1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유문화와 고유 교육과정을 갖고 있는 독특하고 역량있는 소수민족으로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많은 애국투사들이 일제의 억압에 대항하고자 북간도라 불리는 지금의 연변지역에서 애국활동을 벌였고 학교를 설립하여 애국정신과 민족정신을 수립하였다.
많은 소수민족들이 완전히 중국에 동화되는 것과 달리 조선족이 조선족으로서 정체성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집단거주를 통하여 고유문화, 언어와 문자의 보존과 전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전까지 연길시에 있는 조선족 방송국의 공식언어는 평양언어였으며 북한식의 민족교육을 받았다. 한중국교수교 이전까지 조선족들의 보편적인 정서는 북한과 맞닿았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80년대 북한의 본격적인 경제 침체시기 이전까지 조선족사회는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했다. 그래서 접경지역의 조선족들은 북한에 거주하는 친척들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아왔다고 한다. 중국조선족 동포들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시장 경제의 조류를 타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고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정체성 혼란과 문화적 충격 등 도전을 맞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중국으로의 기업진출은 같은 언어를 활용해 온 중국내 조선족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고, 총체적으로 조선족들의 숙명과 같았던 가난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누구나 한번은 도전하여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중국내 조선족 사회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조선족 농민의 절반 이상이 농사를 포기하고 한국 노무출국 기회만을 바라는 현실은 전체적으로 조선족사회의 축소를 가져와 조선족자치제도의 존폐가 걸린 위협으로 부상하였다는 것이다.
올해 서울시에 거주하는 중국인 근로자는 총 15 만명으로 총 외국인수 34만명 대비 87%를 조선족 동포들이 차지한다. 과거 한국과 중국은 관계로 정치 사회적인 면에서 대척점에 있는 국가로 역사를 통해 갈등관계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세계적 질서 속에서 과거 적대국들 간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고, 한국과 중국도 관계가 달라져 중국내 조선족동포의 한국 유입이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2007년 도입된 재외동포를 위한 방문취업제에 의해 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법체류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수가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한국에 조선족 동포들이 들어온 것은 수교체결 이전인 80년대 말부터로 농촌총각장가보내기운동에 의해 들어온 조선족여성들을 선두로 한다. 90년 초까지는 동남아 여성보다는 조선족여성들과의 결혼이 성행 하였다. 인종과 민족문제에 열리지 않은 한국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조선족 여성들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조선족여성들의 위장결혼과 사기관련 사회적문제가 자주 소개되었고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 자리하게 되었는데 조선족 동포들과 관련한 흉악범죄가 사회적 충격을 던져주었다. 특히 오원춘 사건, 보이스피싱 등으로 조선족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이들 중 다수가 식당이나 노동의 현장의노동자로 일하고 있어 우리사회의 낮은 계층을 형성하고 있으나 점차 전문직종의 동포들과 유학생들이 들어와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내 조선족동포들의 한국정착은 20여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조선족에 대한 인식은 범죄집단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어 사회적 거리감이 멀고 우리사회의 경제적 일군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한 사회적 실태를 반영하는 것이 최근에 인기를 모으는 개그콘서트의 황해라는 코너일 것이다. 한동안 조선족동포들의 신종사기가 극성을 부린 사회상을 반영하지만 조선족 동포들에게는 자신들을 희화화하는 내용으로 인해 매우 불편한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은 방통심의위로부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제 29조(사회통합)는 “방송은 지역 간, 성간, 세대간, 계층 간, 인종 간, 종교간 차별과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명시에 의해 “조선족에 대한 편견·혐오감을 조장할 수 있다”며 행정지도 제재를 받은바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조선족은 누구인가 물어야 한다. 비록 중국적 배경을 하고 있지만 같은 민족이며 동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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