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의 음악 페스티벌 붐과 21세기 미국 음악 산업의 동요(26호)

2013년 9월 17일culturalaction
[특집] 2013년 음악 페스티발 결산 : 호황인가?거품인가?
[편집자주]2013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음악 페스티발의 열기로 가득찬 한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8월 한달간 대형 페스티발이 무려 5개나 열렸기 때문입니다. 수치상으로만 봐도 거의 한주에 하나의 페스티발이 열린 꼴인데, 이는 우리나라보다 음악시장의 규모를 생각해봤을 때 상당히 많은 횟수입니다. 세계적인 뮤지션인 라디오헤드, 메탈리카, 뮤즈 등의 팀들도 이제는 해외에 가지 않고서도 국내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2013년 음악 페스티발, 과연 호황일까요? 아니면 거품일까요? 이번 문화빵에서는 음악 페스티발 결산을 특집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① [좌담] 2013년 음악페스티발을 말한다 / 박선영(문화연대), 김작가(음악평론가), 권석정(10아시아 기자)
② 2013년 여름 대중음악 페스티벌 후기 /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③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 붐과 21세기 미국 음악 산업의 동요 / 차우진 (음악웹진 [weiv] 편집장/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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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6호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 붐과 
 
21세기 미국 음악 산업의 동요
차우진 (음악웹진 [weiv] 편집장/음악평론가)
2013년은 한국 음악 페스티벌의 정점이라고 해도 좋을 해다. 올해 열린, 또 예정된 대형 음악 페스티벌만 10개를 넘겼다. 내한공연도 늘었다. 제이슨 므라즈, 데미언 라이스, 미카, 시규어 로스, 크라프트베르크 등은 단독 혹은 페스티벌 참가의 형태로 한국에 왔다. 관객들은 어디를 가야할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한편에선 고가의 티켓과 프로모터들의 경쟁이 공연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 자본의 경쟁적인 개입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장르’와‘라인 업’을 무기로 앞세우고 있지만 그러다보니 나오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인 풍경도 흔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일단 궁금하다. 어째서 한국에 음악 페스티벌과 내한공연이 갑자기 늘었을까. 혹자는 공연 시장이 커져서라고 한다. 그럴 듯하다. 하지만 공연 시장이 확장된 것과 한국이 매력적인 음악 시장으로 부상한 것 사이에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혹자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비롯해 해외에서 선전한 K-POP 등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이런 해석은 다분히 자의적이며 오해의 여지도 많다. 심지어 근거도 희박하다. 그보다는 2000년 이후 해외 음악 시장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지금의 한국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 밖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전체 음악 산업에서 아시아는 어떤 위치인가. 한국 내부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는 음악과 공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21세기의 상황은 음악 시장을 음반, 음원, 공연으로 분리해서 생각하게 만드는가. 그것이 그나마 긍정적인 분화라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페스티벌의 대홍수는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요컨대 한국에 이렇게 많은 음악 페스티벌이 동시적으로 열리는 이유는 한국 음악 시장의 성장이라는 면보다는 지구적인 음악 산업의 생존본능과 연관이 크지 않을까.
일단 2008년 즈음의 미국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2008년은 아이튠즈가 기존의 산업 구조를 바꾼 해다. ‘미국의’ 음악 산업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재편되었다고 볼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한 시대의 분기점: “강남 스타일”과 유튜브” 칼럼을 참고하자). 이를 전제로, 90년대 미국의 음악 산업에서 공연이 수행하던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90년대는 CD가 지배적인 음악매체로 등장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 시대였다. 디지털 기술로 제작비는 하락했지만 판매가격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90년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중심으로 미국 문화산업의 세계 지배력이 강화되던 때였다. 블록버스터, 팝 스타,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의 용어들은 미국 내부를 벗어나 국제적인 표준어처럼 쓰였다. 미국 팝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 그러니까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른다는 것이 곧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뜻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었는데 팝 스타의 ‘월드투어’는 이런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미국의 팝 음악은 TV, 영화와 함께 ‘월드와이드’하게 퍼져나갔고, 이를 토대로 음반사는 음반을 판매하기 위한 팝 스타의 월드투어를 조직하는 구도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전후로 이런 구도는 왜곡되었다. 아이튠즈의 등장은 음반 대신 음원(기존의 싱글과 다른 점은 별도의 물리적 음반을 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의 다운로드 시장을 발명하게 도왔지만, 몇 년도 되지 않아 스포티파이가 대변하는 스트리밍 시장으로 헤게모니를 옮겼다(곧, 수익의 상당수가 급감했다). 공연과 음반 판매의 연속적인 상호 보완 구조가 어그러진 건 이 때문이다. 음악은 더 자주, 더 깊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갔지만 음악 산업을 지탱하는 수익 구조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뉴욕에서 영화 및 음악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프리랜서 홍수경 씨는 “2002년 도입된 ’360 계약(360 deal)’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메이저 음반사가 공연 및 머천다이징 수익을 관리하는 조건이 일반화되면서 밴드나 가수들은 정말 미친듯이 공연을 다닌다.”고 말한다. ‘360 계약’이란 메이저 음반사들이 아티스트들의 음반 외에 머천다이징을 포함한 부가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조건의 계약이다. 이 계약을 계기로 라이브네이션과 같은 초대형 공연 기획사가 마돈나와 제이-지 같은 거물들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이로써 음악 산업의 다른 장이 열렸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요컨대 20세기의 음악 산업이 음반 판매에 기반했다면, 21세기의 음악 산업은 머천다이징 수익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공연 시장이 지리적으로 확장되는 현상은 물리적 변화보다는 의미의 변화로 볼 필요가 있다. 메이저 음반사들은 미국과 유럽 ‘바깥’의 시장을 개척하도록 요청받는다. 이때 눈길이 머무는 곳은 아시아다.
규모만 보자면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은 중국과 인도지만, 중국은 서양 문화에 대한 개방 의지가 지극히 낮고 인도는 자국의 문화 시장이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양쪽 모두 경제 수준이 불안정하거나 너무 낮다. 일본은 산업적으로 ‘아시아’로 분류되지 않으므로, 대안으로 여겨지는 건 한국이다. 한국은 스마트폰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지역이자, 음악 시장의 규모도 세계 10~15위 정도를 차지하는 ‘선진국’이다. 특히 패션이나 문화상품에 있어서 유행에 민감한 지역인데, 그럼에도 ‘아직’ 저작물의 불법 복제가 시장을 위협하고, 머천다이징 수요는 검증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음악에 있어서 팝은 ‘가요’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매출을 기록한다(90년대 말부터 한국의 팝 음반 매출은 가요 매출에 역전당했다). 직배사의 입장에서는 선뜻 진입하기 어렵고, 실제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개런티가 거의 전부인 곳이다. 이 맥락에서 2002년 전후로 한국의 내한공연이 늘어난 것과 그때마다 개런티 얘기가 불거진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2년은 ’360 계약’이 보편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시기고, 그래서 내한 공연의 개런티는 주변 국가들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2007년 전후로 국내 페스티벌이 늘어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만 하다(2007년은 라이브네이션 엔터테인먼트가 마돈나와 ’360 계약’을 체결한 상징적인 해이기도 하다). 내한공연은 늘지만 개런티는 높아지고 기획사나 제작사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대형 페스티벌은 단독 공연의 개런티 부담을 줄이며 머천다이징 수요를 실험할 수 있는 장이 된다. 동시에 공연의 투자자를 분산시켜 실패의 여지를 줄이는 판을 만들 수도 있으며 지속적인 개최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물론 에이전시로부터 아티스트의 패키지 섭외까지 고려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주최사는 CJ E&M,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의 스폰서는 롯데카드,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의 주최사는 KBS미디어와 지산리조트, [슈퍼소닉]은 PMC네트웍스와 태원엔터테인먼트, 기업은행, 하나투어가 공동 주최한다는 점을 참고하자. 음악 페스티벌은 일종의 대안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셈이다. 이 중에는 단기적인 수익을 바라는 곳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잠재적인 시장을 키우고 활성화시키겠다는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한국 음악 페스티벌의 붐에 대한 관점은 좀 더 입체적일 필요가 있다. 최근의 음악 페스티벌 붐은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변화된 미국 음악 산업의 동요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21세기 이후 꾸준하게 진행된 음악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와 그에 맞춰 유기적으로 적응하고 진화하는 미국 음악 산업의 여파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쨌든 몸으로 부딪치며 대형 공연의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그렇다면 대기업의 개입이 전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빈번한 내한공연이 무조건 반가운 것만도 아닐 것이다. 페스티벌 주최자의 운영 미숙이나 관객들의 성숙도, 팝 스타들의 내한공연에 몰리는 사람들에 비해 실제 음원이나 음반 판매가 저조한 모순 등은 일종의 과도기적 상황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매력적인 시장이 아닐 수도 있다. 저들의 입장에서 한국이 검증되지 않은 시장일 뿐이라면, 중국과 인도의 대안보다는 더 규모가 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에 운용해보는 태스크포스(Task Force)의 의미라는 생각도 든다. 미국 음악산업의 관점에서 한국이 ‘정상적인’ 팝 컬쳐 시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이 상황은 또 급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의 혼란기일까, 아니면 한 때의 추억으로 남을 흐릿한 황금기일까. 몇 년 후에 우리는 이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될까? 그에 대한 답을 찾기에 앞서, 지금 음악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구조의 큰 변화와 함께, 아시아에서 한국의 지위가 관점에 따라(미국이나 태국을 그 ‘주체’로 삼아보자) 어떻게 바뀌는지, 수동적인 입장과 능동적인 입장이 어떻게 교차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컨대 지금 한국의 페스티벌 붐은 음악 산업에 대한 질문들을 재구성하게 만든다. 나는 바로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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