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깡총] 프린세신 가르텐 (베를린) -겹겹이 쌓아진 파이맛의 텃밭 (25호)

2013년 8월 29일culturalaction
프린세신 가르텐 (베를린) 
 
-겹겹이 쌓아진 파이맛의 텃밭 
청개구리 제작소 (www.fabcoop.org)
‘청개구리 깡총’에서는 유럽 탐방 두 번째 후기로 prinzessinnengarten (프린세신 가르텐 Princess garden 이하 프린세스 가든) 이라는 베를린의 ‘움직이는 정원’을 소개합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도시 농업에 대한 관심과 행정적 지원이 많아지면서 도시 텃밭이 지역 곳곳에서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생태 문화적 공간, 삶의 공간으로서 도시텃밭을 본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활동과 상상이 가능할까요? 베를린에서 마주친 도시 정원 프린세스 가든은 밀페유 파이처럼 겹겹이 쌓인 삶 자체가 가진 통합성을 도시 텃밭이라는 장소에서 일구어 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린세스 가든은 생성 배경이나 일어나고 있는 활동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주목해서 본다면 획일화된 도시텃밭을 만들어 가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어떤 것들이 가능할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린세스 가든의 입구에서
소비적 흥청거림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운 이곳이지만 흥미롭게도 어디에 가든 크레인 타워가 보인다. 우리의 기준에서는 한없이 낮은 밀도에 사색을 부추기는 녹색의 향연이 천지이건만, 도처의 크레인 타워는 이곳도 역시 어쩔 수 없이 개발이란 밥을 계속 먹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도시임을 환기시킨다.  또 다른 제작 공간 Betahaus를 찾아 가는 길에 들른 이 프린세스 가든은 요 몇 년 서울에도 불어 닥친 도시 농업의 호들갑에 식상해 있던 우리로서는 큰 기대보다는 가벼운 산책 삼아 들른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우리는 자율적인 공간들이 늘 공통적으로 뿜어내는 카오스적 활기와 생생함, 그리고 몇 겹으로 중첩된 향들을 바로 감지할 수 있었고 그 기운들은 우리를 바로 탐색자로 만들었다. 뜯어보고 씹어 보듯 그 공간을 더듬었던 시간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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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컨테이너들 안을 들여다보니 농기구와 여러 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아마도 개인적 물품들을 보관하는 듯 이름표가 달린 플라스틱 박스가 단순하면서도 흥미롭게 고안된  바퀴 달린 서랍장에 층층이 쌓여있다.
프린세스 가든을 들어서면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작물을 키우는 방식이다. 땅에 심은 작물들이 없다. 모든 작물들은 땅에 직접 경작하는 방법이 아닌 상자와 베드(적당한 흙과 영양분이 든 자루)에 심겨있다. 문래동 옥상 텃밭 등 많은 도심 안의 텃밭들도 땅이 여의치 않으면 이러한 방법을 쓰고 있지만 엄연히 흙을 딛고 있는 곳에 이러한 경작 방식을, 그것도 대규모로 해 놓은 것에 흥미부터 인다. 흙의 오염의 문제로 이러한 방법을 썼을까? (이후 확인해 본 바로는 이들은 공간의 오염 문제 뿐 아니라 이 공간을 계속 쓰지 못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이러한 움직이는 정원을 고안한 것이었다.) 그러한 상자 텃밭이라고 하지만 인공적인 느낌은커녕 어디 숲에라도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자연의 연기성을 잊어버리는 짓이라고 이러한 상자와 베드 생육을 기꺼워하지 않던 우리 눈에도 이들이 만들어 놓은 이 ‘자연스러운’ 조화가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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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플라스틱 상자와 베드, 그리고 그 생육 시스템을 받쳐줄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안되어 설치된 물통들과 호스의 연결이 그것 자체로 하나의 조형적 생태계이다.
2009년 젊은 영화 제작자인 로버트 쇼(Robert Shaw)와 사진작가인 마르코 클라우센(Marco Clausen)이 시작한 도시 정원 프로젝트는 현재 비영리단체 Nomadisch Grun (Nomadic Green 녹색유목)에서 운영한다. 로버트 쇼는 쿠바 여행에서 본 도시 농업 –  식량을 직접 기르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것- 에 영감을 받아 모바일 가든을 시작하게 되었다. 쿠바처럼 상자재배 방식에 모바일 이라는 의미(정원 주변에 이동이 가능한 설계)를 더하며 프린세스 가든은 도시의 다른 장소성과 차이를 형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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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물들이 박스와 베드에서 크고 있지만 다양한 생태 환경의 조성이 만들어 내는 긴밀함은 어디에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도가 있다.
가든에서의 다종의 채소와 과일 재배는 지역주민과 자원봉사자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로컬 생산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정원은 교육의 장이다. 재배기술뿐만 아니라 종다양성 문제, 경작 과정을 알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프린세스 가든에는 500가지의 식물들이 성장하고 있다. 이곳은 지역의 학교와 연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고 하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정원의 레스토랑은 이용자가 많아 탐방 당시 자리 잡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정원 곳곳에는 숨어 있는 휴식이 가능한 놀이터, 작은 도시관, 씨앗가게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공간이 함께 있다. 또한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워크숍과 문화행사가 열린다. 계절요리, 자연퇴비, 화덕 만들기, 도시 꿀벌에 대한 워크숍부터 예술가들의 작업과 연계한 전시, 도시 정원과 농업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상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활동 또한 이 장에서 일어난다. 많은 활동 중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DIY가 가능한 몇 개의 공방들이었다. 컨테이너나 폐자재를 재활용한 공간에서는 자전거 수리에서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하는 다양한 제작워크숍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우리의 도시텃밭이 아직 개인 분양 정도에서 시작하고 있다면, 이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프린세스 가든은 도시적 삶의 통합성을 실험한다. 거기에 제작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의 발견도 새롭다. 그것은 카테고리화 되지 않을 새로운 제작 공간(maker space) 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찬 메타포이기도 했다.
고백을 하자면 청개구리 제작소의 탄생에는 청개구리 요원들의 농사 경험이 있었다. 오리보트라는 이름으로 친구들과 농사를 지으면서 몸을 쓰는 즐거움/괴로움을 알게 되고, 필요한 공간과 가능한 만들다 보니 제작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가능성과 잠재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와 연결된 ‘비인간’과 ‘사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체험이 청개구리 제작소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프린세스 가든의 여러 활동을 보면서 다시 농사와 제작을 그리고 그것으로 파생되는 여러 가지 활동과 에너지가 가져올 도시적 삶의 통합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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