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1895년 ,타임머신과 시네마토그라프(25호)

2013년 8월 29일culturalaction
1895년 ,타임머신과 시네마토그라프
강신유
타임머신과 시간여행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다. 설정이 조금씩 다른 수많은 시간여행이야기를 흔하게 볼 수 있고 또 새롭게 상상할 수 있다. 심지어 먼 미래에는 시간여행이 기술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지금은 이토록 널리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시간여행 개념이 사람들에게 소개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1895년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이 출간되기 전까지 시간여행은 사람의 인식 경계의 밖에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경계밖에 있던 것이 불현듯 등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이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이 그것을 실현시켰다. 하지만 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인간의 상징계로 넘어오기위해서 그 전에 사람들의 의식차원에서 일종의 준비단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설이지만 이 무렵에 시간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하게 된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필자의 생각에 이것은 초기사진부터 시네마토그라프에 이르는 ‘활동사진기의 발전’과 매우 연관이 깊다. <타임머신>의 출간과 최초의 영화 상영이 같은 해에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어쩌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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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성에 관한 논의를 풀어가는 열쇠는 활동사진기적 발전과정상 사진에 뒤이어 등장한 새로운 기술적 발견들 속에 있다. 그 기술적 발견들이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주프락시스코프 ‘Zoopraxiskop’와 쥘마레의 동시촬영기‘chronophotographie’에서 뤼미에르형제의 씨네마토그라프 ‘Cinematographe’까지 ‘활동사진’을 만들어내는 이 일련의 움직들을 말한다. 이 일련의 시도들은 모두 순간의 사진들을 연결해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멈춰있는 사진들을 빠르게 차례대로 볼 때 그것이 끊기지 않는 하나의 움직임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지각작용방식에서 발생하는 잔상효과 때문이다. 이 잔상효과 덕분에 마치 점을 계속 찍어서 선이 되듯 정지된 프레임들을 모아서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아무리 많은 점을 잇는다 하여도 그건 점의 합일 뿐 진짜 선이 될 수는 없다. 선과 점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멈춰진 순간’과 ‘시간성을 가진 운동’도 서로 다른 차원의 것이다. 아무리 많은 순간들이 모인다고 하여도 결코 운동에 다다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영화의 개념하에서는 순간의 복재인 프레임들 사이에 잔상효과가 그 간극들을 메워줌으로써 프레임의 합이 운동이 되는 도약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 ‘도약’이 의미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 제논의 역설을 떠올려보면 더욱 명확히 그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날라가는 화살은 한 순간에 분명 어떤 지점에 정지해 있다. 따라서 제논의 말에 따르자면 매 순간에 정지해있는 화살은 결코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 이 생각에는 정지된 순간의 합은 결코 연결된 운동이 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전제된다. 하지만 활동사진기적 발전과 영화라는 기술은 순간의 합이 운동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이 된다는 인식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다. 이제 사람들은 실제 세상과 이 시간조차도 무수히 많은 프레임의 합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로서 뉴미디어의 등장이 초래한 이 변화가 너무나 조용히 인간의 삶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그 변화자체는 인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는 시간은 하나의 연속되는 운동 혹은 흐름의 변화 자체로 인식됐었기 때문에 그 안에 특정한 지점 좌표를 설정한다거나 거슬러 오른다고 하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순간이라고 하는 프레임들로 만들어진 한편의 영화라고 한다면, 영사기를 되감듯 시간을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며 지나간 과거의 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패러다임을 형성했다. 오늘날에는 식상하기까지 한 시간여행이라는 아이디어를 가능했던 것은 19세기 후반 이 시기에 새로운 인식의 토대가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임을 느낄 수 있다. 혹시나 만약 인류가 미래에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것에 성공하게 된다면, 그때의 사람들은 우리 눈의 잔상효과와 사진 그리고 영화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예의상 최초로 시간을 여행하는 그 목적지를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그랑카페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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