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연의 문화읽기] 뮤지컬 <레미제라블>, 민중과 혁명 서사의 상품화인가? (25호)

2013년 8월 29일culturalaction
뮤지컬 <레미제라블>, 
민중과 혁명 서사의 상품화인가?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주말에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왔다. 평소에 뮤지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내년에 무대에 올릴 한국적 음악극 <장옥정>의 대본 작업에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가족과 함께 한남동에 있는 삼성 블루스퀘어 극장으로 갔다. 내년에 내가 준비하고 있는 <장옥정>이란 음악극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는 이 극의 역사적 배경으로 새로 부상하는 조선의 중상주의자와 전통적인 사대부주의 사이의 갈등을 설정하고 대본을 준비 중이다. 역관의 후손으로 태어난 장옥정이 상업으로 나라를 일으키려는 남인파의 등에 업고 숙종의 후궁이 되는 과정과 나라를 천한 장사꾼들에게 맡길 수 없다며 성리학에 기반 하여 유교이데올로기의 강화를 주장하는 서인 사이의 정치적 갈등은 아마도 근대 자본주의의 발흥의 여파로 조선과 같은 주변부 국가에서 야기될 수 있음직한 구도가 아닐까? 비록 시기는 100년 정도 이후의 이야기이지만,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기 시작하는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중반의 이야기를 다룬 <레미제라블>도 근대자본주의 국가 통치를 유지하려는 자베르와 같은 경찰 관료와 그에게 쫓김을 당하는 민중의 친구 장발장, 정부군에 맞서는 학생과 민초들 사이의 극적 갈등의 구도는 내가 참고할만한 레퍼런스가 아닐까 싶었다.
사실 내가 또 관심 있게 눈여겨보았던 것은 영화 <레미제라블>의 국내 개봉에 600만 명이나 극장을 찾았고, 덩달아 원작인 소설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뮤지컬 <레미제라블>마저도 대박 흥행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원작의 탄탄한 작품성이  관련 영화와 뮤지컬의 대박에 가장 주원인이겠지만, 혹시 사회적 양극화와 청년실업난, 그리고 정치적 정말감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이른바 <레미제라블> 콘텐츠는 힐링의 서사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진단을 해본다. 실제로 국내에서 <레미제라블> 붐이 MB 정부 시절 암울했던 상황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 기사들이 있기도 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민중계급들은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얻기에 충분하다. 가난한 가족에게 빵을 구해주려다 감옥에 갇힌 채 19년을 살아야했던 장발장,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거리의 여인으로 나 앉은 판핀, 그리고 그의 딸 코제트, 마리우스를 대신해 정부군의 총에 맞아 죽는 에포닌, 저자거리의 고통 받은 서민들, 그리고 민중의 해방을 위해 거리에 나온 학생들은 작품의 제목처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당대 존재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상징적인 존재들이기에 감동적인 노래로 전환된 이들의 이야기들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작품 후반으로 지나면서 착취와 억압에 맞서 대항하는 1832년 파리 바리바리케이트의 재현과 저항군의 장중한 코러스 장면들은 마리우스, 코제트, 에포닌과의 사랑의 삼각관계와 맞물리면서 극적 감동을 더해준다. 무대의 배경이 되는 1832년 파리 바리케이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물러난 왕정이 1815년에 루이 18세에 의해 복고된 후 계속되는 철권통치에 대한 민중의 실제적, 상징적 저항의 장소이다. 1830년 루이 필립이 집권해 프랑스를 입헌군주제로 내세웠지만, 민중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전국에 콜레라마저 창궐해 최악의 시절을 맞이했다. 평소 공화주의를 신봉했던 라마르크 장군의 죽음 이후 학생들이 주도해서 벌인 파리바리케이트는 단 2일 만에 진압되고 만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1790년대 후반과 1832년 파리바리케이트 사이에 놓인 프랑스 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특히 극의 후반에 갈수록 민중계급들의 저항과 죽음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극 후반부로 혁명의 서사들이 점점 고조되는 장면으로 갈수록 내가 있는 자리가 조금씩 불편해 지기 시작한 것은 공연을 보고 있는 이 극장의 이름이 삼성전자홀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알다시피 블루스퀘어는 국내 최대 공연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가 극장사업을 확장하면서 2009년에 지은 전문 공연장이다. 블루스쿼어는 1700석 규모의 전문 뮤지컬 극장과 1400석 규모의 전문 콘서트홀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공연장의 이름은 하나는 삼성전자 홀이고 다른 하나는 삼성카드 홀이다. 삼성그룹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블루스퀘어 공연장의 브랜드 이름을 따낸 것이다.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계열회사인 인터파크 그룹이 조성하고, 글로벌 독점기업 삼성의 주요 계열사의 이름을 돈을 주고 산 이 극장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본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극중에서 재현된 1832년 파리 바리케이트는 단지 레미제라블의 시대적 배경일 뿐이라고 말하기에는 이 작품에 투사된 의미가 작지 않다. 더욱이 2시간 40분간 계속된 공연 내내 장발장을 포함해 많은 등장인물들은 당대를 살았던 비천한 민중들로 그려진다. 무대에서 휘날리는 붉은 색 깃발과 정부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혁명군들의 비장한 투쟁은 한국의 상황으로 치자면 광주민중항쟁을 연상케 한다. 일베충들의 혀가 놀려진다면,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정부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소년 가브로쉬의 시신을 마리우스가 안은 장면은 어린 홍어택배 배달 정도로 비하될 것이다. 진보에 대한 혐오가 대중적인 문화담론의 장으로 진입한 지금, 보수적인 정권이 두 번째 연속집권에 성공한 지금,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시청광장에서 유연한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지금, 관객들은 19세기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비참한 민중들의 이야기, <레미제라블>을 삼성전자홀에서 편하게 관람하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로비에는 파리바리케이트의 시위 장면을 그린 사진 앞에서 관객들이 붉은 색 깃발을 흔드는 장면을 연출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관객들은 붉은 깃발을 흔들며 같이 온 친구, 애인, 가족이 사진을 찍을 때 환하게 웃는다. 혁명이 상품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알다시피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8-10만원 안팎의 평균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려니 3층 뒤 좌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지불한 돈은 5만원이나 되었다.
혁명의 서사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게 어디 <레미제라블>뿐일까? 1960년대 히피문화의 상징적인 인물 중의 하나였던 제니스 조플린은 1972년 그녀의 마지막  앨범 “펄(Pearl)에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노래를 실었는데, 이 곡은 당시 최고의 자동차 재벌기업 벤츠사를 풍자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곡은 1980년대 벤츠사가 자사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들었던 젊은 세대를 위한 신차 광고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삼성전자 홀에서 고가의 티켓 값을 지불하고 민중의 이야기를 세련된 무대장치와 화려한 연기자의 노래로 즐겁게 감상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상해를 가면 중국 문혁시기의 다양한 혁명적 포스터들을 단돈 5천원에 구입할 수 있다. 지금은 그다지 많이 발견되지는 않지만 남미 혁명남아의 상징적 아이콘인 체게바라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는 동대문 의류 가게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과거 혁명의 순간들은 지금 상품의 순간으로 대체되고 있다. 혁명의 역사를 소비하는 대중들은 혁명의 서사를 소비되는 콘텐츠 안에서 인지한다. 혁명의 지속가능함과 영구성을 믿는 이들에게 1832년의 파리 바리케이트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혁명의 억압된 것의 회귀일까? 아니면 혁명의 회귀된 것의 억압일까? 공연이 끝나고 로비에서 붉은색 깃발을 흔드는 딸아이를 위해 사진을 찍어주는 어느 주부의 환한 미소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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