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를 이해하기 위하여]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24호)

2013년 8월 16일culturalaction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임효진
얼마 전 친척 결혼식엘 갔다가 처음 뵙는 분과 뜨거운 포옹을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그 아주머니는 나의 부모님이 결혼을 하고 최초로 서울에 집을 얻었을 적 주인 아주머니셨다.
그 단칸방에서 내가 태어났다. 어머니가 반색을 하며 나를 인사 시키는 걸로 보아 그 분은 시골에서 갓 상경한 젊은 부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 인가보다.
그 갓난이가 이리 컸어, 라며 연신 내손을 쓰다듬는 아주머니가 나도 괜스레 친근했다. 순간 어머니는 30년 전, 갓 결혼한 새댁으로 돌아갔고 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앨범사진으로 짐작하건데 나는 그 집에서 돌이 되기 전에 나왔다. 내 돌 사진은 우리가 이모네 집 2층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 찍혔다. 그 순간이 기억난다기보다는 사진 속 방 풍경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재구성한 집안 풍경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르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 만난 아주머니네 셋방은 반지하였다는데 내 돌사진에은 창문이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어릴 때 기억의 대부분엔 모두 그 창문이 등장한다. 신림동 언덕 끝, 관악산줄기 바로 밑에 자리했던 그 이층집은 한여름에도 시원했다. 절기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온도와 공기, 갖가지 계절별 꽃나무 냄새가 유난히 크던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이모는 1층 마당에서 개들을 여럿 키웠다. 나는 그 중 한 녀석에게 장난을 걸다 발목을 물린 이후로 개들과 친해질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좋아는 하지만 곁에 갈 수 없는 그 슬픈 관계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졌다. 온종일 모기장 앞에 서서 그 애들을 구경하는 게 어린 나의 하루 일과 대부분을 차지했다. 창문으로 동네 아이들 소리를 듣고 놀이터로 달려 나갔고 가을밤이면 마을 어른들이 집 앞 공터에 모여 낙엽을 태우는 냄새와 두런두런한 말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어린 키에 안방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이라곤 1년 365일 앞집 지붕께와 산 언저리를 뒤엎은 아카시아나무들 뿐이었다. 창틀에 정수리가 겨우 닿을 쯤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아직도 내가 20여 년 전의 그 집 구조를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는 건 창문과 창문 그리고 또 창문으로 이어지는 집의 둘레와 그 주변 경관 덕분이다. 그 집을 떠날 때 나는 8살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사색’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집안을 느리게 지나치는 하루해를 쫓아다니며 창밖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후에 이사를 간 아파트는 T자형 복도식 아파트였다. 하늘 위에서 본다면 흡사 거대한 방파제처럼 보일 그 아파트는 지금에서는 특이할 게 전혀 없는 건축물이지만, 부모님이 이사 갈 집에 처음 데려간 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한 층에만 열다섯 가구가 살았고 1층 입구에는 철제 우편함이 세대수만큼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거기다 타본 횟수가 손에 꼽히는 엘리베이터를 매일 매일 타게 생겼으니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지하철을 타면 신림동에서 40여분 거리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나는 우리가 아주 먼 도시로 이사를 왔다고만 생각했다. 내 방 창문은 이웃들이 지나가는 복도로 나 있어서 여름에도 꼭 커튼을 쳐야 했다. 거실 샷시를 통해서 보이는 풍경은 높게 들어선 축대와 좁은 간격으로 붙어있는 또 다른 아파트가 전부였다.
르코르뷔지에 『작은집』을 읽다보면 ‘담장’의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보이는 담장은 북쪽과 동쪽을 향한다. 전망을 차단하고 남쪽과 서쪽으로는 전망을 부분적으로 가리는 역할을 한다. 긴 안목으로 보면, 어느 방향에서나 보이는 압도적인 풍경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중략)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철저한 해결책을 통해 풍경을 한정짓고 크기를 결정해야 한다. 전략적 지점에 뚫린 개구부를 통해서만 방해받지 않는 조망을 가능케 하고 나머지 전망은 담장들로 가리는 것이다.”
‘작은집’에서 ‘담장’의 기능이 나는 사진을 찍을 적의 원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또 맘에 드는 창가에 앉으면 오래도록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이유 역시. 오래오래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을 빼앗기고 나서부터는 새로운 취미를 찾아야 했다. 지나친 비약일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그 종착지는 사진이다.
안전하다는 느낌, 사진을 찍을 때 종종 그런 기분이 든다.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건 싫은 것을 버리는 일이다. 네모의 창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잡아맬 수 있는 창을 소유하고 그것을 마음대로 프레이밍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보호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맘에 드는 장면을 담게 되면 신림동 2층집 창문이 생각난다. 나를 번쩍 들어 올려 밖을 보여주던 부모님의 팔의 감촉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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