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에바로드>, 의미없음의 미학(24호)

2013년 8월 16일culturalaction
<에바로드>, 의미없음의 미학
박선영/문화연대
2012년 6월 22일, 에반게리온 공식홈페이지에 이벤트 공지가 하나 올라온다. 일본, 프랑스, 미국, 중국 4개국에 흩어져 있는 각 캐릭터(신지, 레이, 아스카, 마리)의 스탬프를 한정된 기간 안에 모아오라는 미션이었다. 이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를 왔다갔다 해야하기 때문에 이동해야 하는 거리도 어마어마하지만, 지역 마다 특정 행사기간 동안에만 스탬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이 황당한 이벤트는 (오타쿠와 상대적 의미로서의) 일반인들에게는 농담으로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에 에바(에반게리온의 줄임말)팬들에게는 도발이자, 자신의 덕심(오타쿠들의 팬심)을 시험해볼 기회였다.
<에바로드>는 한국의 평범한(?) 두 오덕(오타쿠)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담은 로드다큐멘터리이다. 물론 이런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오타쿠들이 평범할 수 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다큐의 주인공들인 종호 씨와 현복 씨는 평소에는 직장을 다니고 겉모습은 일반인들과 구분하기 어려운 평범한 외모를 하고 있다. 단지 남들보다 더(조금은 과하게) 에바에 대한 사랑이 클 뿐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큐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여정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공지가 나온 지 2주 뒤에 바로 프랑스에서 스탬프 행사에 참여해야 했고, 중국에서의 행사는 중국와 일본 간의 영토분쟁으로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프랑스에 처음 가 본다는 종호 씨는 오로지 스탬프를 받기 위해 프랑스에 가서 다음날 출근을 위해서 스탬프만 찍고 돌아오는 스케줄을 소화해 내기도 했다. 결국 이 스탬프렐리를 완주한 사람은 전 세계에서 종호 씨와 현복 씨 단 두 명이었다.  그리고 이 미션을 성공한 이들에게 상품으로 돌아온 것은 일본행 왕복비행기표와 <에반게리온Q>의 시사회 초대권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에반게리온Q>를 한국과 일본에서 이미 7번이나 본 후였다. 회사 측은 원화가의 오리지널 원화를 보내주기로 약속을 했지만 아직까지 받지는 못했다고 하면서 다큐멘터리는 끝난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큐멘터리가 끝나는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품보다 스탬프랠리 자체가 그들에게는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이들은 왜 이런 고생을 스스로 자처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각박한 현실에서 삶의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뭔가 큰일을 이뤄냈을 때의 성취감을 얻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혹은 오타쿠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들은 스탬프랠리에 참가했던 이들이 인터뷰를 통해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었지만, 그런 이유를 위해서 이런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인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 그들을 움직인 실질적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내 생각은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그냥 하고 싶기 때문에 움직인 것이고, 그 이외의 이유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의 여정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가며 확대해석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뭔가 특별한 이유가 없이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행동들 하나하나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행동들에 대해서 비난하고 자책하게 만든다. 이미 우리사회는 개인의 행동들에 대해 너무도 많은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고, 거기에 얽매이게 만든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대학에서 가서는 취직을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고, 취직을 하면 결혼을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하듯이 말이다.
오타쿠라는 말도 어떤 한 분야에 마니아 이상으로 심취한 사람들을 비꼬는 차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뚜렷한 목적없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이들보다 더 열심히 파고드는 이들에 대한 시선은 뿔테안경에 주근깨가 난 뚱뚱한 사회부적응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실제 오타쿠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쿠는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조롱의 대상이고 계도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이런 오타쿠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우리들을 의미와 목적이라는 쳇바퀴 속의 다람쥐처럼 가둬놓는다.
종호 씨와 현복 씨는 이번 일에 대해서 후회가 들 때도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런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에반게리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가 답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 말을 들으며 끊임없이 의심한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그런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 험난한 여정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의심하지 말자. 오히려 의미가 과잉화된 사회 속에서 사는 의미없음의 즐거움을 의심하는 이들은 진정한 즐거움을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대사로 이글을 마무리 한다.
“세상에는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즐거움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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