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로운 덕후의 우울]만화애니메이션 축제, 지역사회의 공간으로 가다 – 제 1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24호)

2013년 8월 16일culturalaction
만화애니메이션 축제, 지역사회의 공간으로 가다
 
– 제 1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최지용
지난 7월 23일부터 28일 까지 서울 남산과 명동 일대에서 제 1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이 열렸다. 매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던 것이 올해부터 명동과 남산 일대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를 중심으로 서울예대 동랑예술센터, 문학의 집 등지에서 전시가 열렸고, CGV명동역과 서울 애니시네마에서는 영화제가 진행되었다.
남산 일대로 장소를 옮긴 것은 서울시 중장기 사업 중 하나인 ‘만화의 거리’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장소에서 모든 전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명동 여기저기에 있는 전시관들을 돌아다니면서 스탬프를 찍도록 하였는데,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느껴지게 하는 기획은 참신하고 재미있었다. 단순히 축제를 관람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명동의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을 도시 속 숨겨진 공간들을 살펴보게 해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손기환 집행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지역주민도 참여하면서 환경도 활용하는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과 같은 행사로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시를 재조명하고 그 공간 속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면 하나의 멋진 축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처음 시작하는 시도인 만큼 아직 미비한 부분이 많고 보완해나가야 할 부분들이 많겠지만 참신한 기획과 홍보가 뒷받침 된다면 전망은 밝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쉬운 점은 전시 자체의 기획력에 있다. 도시 공간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전체 전시를 아우르는 콘셉트는 잘 보이질 않았다. 여러 가지의 전시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따로 분리되어있는 인상이었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꽤나 오래된 페스티벌임에도 불구하고 콘셉트나 정체성 같은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훌륭한 콘텐츠이다.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시 기획의 문제이다. 전시를 설계하기 전에 전체를 아우르는 슬로건을 먼저 정해놓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관객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나는 지금 이야기한 전시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제이다. 영화제에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좋은 영화들에 상영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이번 SICAF 영화제는 꽤나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개막작인 페르난도 코르티조 감독의 <사도>를 필두로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아니메의 스승>, 리처드 윌리엄스가 30년 가까이 몸 바쳐 만들었지만 그의 손에 의해서 완성되지 못한 애니메이션 “도둑과 구두수선공”의 숨겨진 이야기를 전하는 <잔상-미완의 걸작> 등 괜찮은 영화들이 눈에 뜨인다. 하지만 관객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좋은 영화들이 스크린에 걸려도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면 조금 슬플 것이다. 홍보가 미비한 것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능숙하지 못한 GV 진행도 눈에 띄었다. 개막작인 <사도>의 GV에 참여했었는데, 마이크 상태가 제대로 점검되지 않았던 점, 준비된 질문이 다소 부적절한 것, 통역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 등이 아쉬움을 남게 했다. 물론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실수들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고 어느 정도는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17회를 맞이하는 오래된 영화제라는 점에서 보면 조금 아마추어 같은 부분들이 아니었나 싶다. 경험이 부족한 것이 아닌 만큼 신경을 조금 더 썼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만화, 애니메이션 시장이 ‘산업’이라고 불릴만한 규모를 가지지 못한 나라에서, 만화애니메이션 축제가 17년 동안이나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이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꽤나 중요한 축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만화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축제가 그저 그런 축제가 된다면 만화애니메이션 팬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행사장소를 남산과 명동 일대로 옮긴 만큼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생각된다. 미비한 점들은 보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참신한 기획을 보여준다면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특색 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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