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이의 야옹야옹]어느 일요일 오후 홍대 놀이터의 풍경(24호)

2013년 8월 16일culturalaction
어느 일요일 오후 홍대 놀이터의 풍경
시민자치문화센터 활동가 최미경
일요일 오후 홍대에 놀러갔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고 마네킹과 같은 얼굴과 몸을 가진 모델들이 있었고, 그 앞에서는 바비큐를 굽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단법인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가 주최하고 한돈자조금, 한국관광공사, 농림축산식품부가 공동 후원하는 축제(Barbecue Fam Outdoor Forestival)를 홍보하는 행사였다. 행사의 취지는 한돈의 우수성을 알리고 새로운 아웃도어 바비큐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홍대의 고깃집이 많은 거리에서 바비큐를 굽는 장면을 보니 7월 4일에 발표된 ‘서비스 산업’ 대책이 생각났다.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내놓은 대책 (‘서비스산업 정책 추진방향 및 1단계 대책’)인데 그 내용 중 하나가 “도시공원 바비큐장 확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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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맥락에서 바비큐시설을 확대하는지가 궁금해서 7월 4일에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찾아 보았더니 아래 내용이 있었다.
 도시공원내 바비큐시설 확대
□ (현황) 바비큐 시설을 갖춘 공원은 부족한 실정이며, 공원조성계획에 바비큐 시설을 포함하기에 부담
□ (개선) 공원시설에 바비큐 시설 설치근거(국토부 시행규칙)를 마련하고, 도시공원에 바비큐 시설 확대
 ㅇ 다만, 공원 내 음주금지 근거 마련(조례), 전담인력 배치 등 보완장치 강구
위의 내용으로는 바비큐시설이 부족하다고만 되어 있지, 바비큐시설이 부족한 게 왜 문제인지는 드러나 있지 않다. 문체부와 미래부의 ‘콘텐츠산업 진흥 계획’을 보아도 바비큐시설과 문화콘텐츠와의 연관성을 설명한 부분은 찾지 못했다.
 나의 일상에 빗대어 이 정책을 보기 위해, 바비큐시설이 한강 둔치에 설치되면 무엇이 달라질까를 생각해 보았다. 일단 처음 드는 생각은 ‘바비큐를 구워 먹을 수 있겠지’였다. 그런데 ‘바비큐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생각하니, 나의 일상에서 그런 시간을 내는 건 쉽지 않다. 단순하게 말해서, 바쁘기 때문에, 혹은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 취임사 중 이런 문장이 있다.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입니다. 사회 곳곳에 문화의 가치가 스며들게 하여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난 상상력과 문화의 가치가 ‘바비큐 시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왜 우리의 삶이 문화적이지 않은가? 그 이유를 찾는 것이다. 경쟁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 이외에도 바쁜 와중에 낸 시간 안에서도 우리는 외부에서 공급된 상품을 소비하고 있다. 외부에서 공급되는 프로그램과 상품을 소비하는 삶의 구조는 자기 삶을 문화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상품화된 서비스를 계속 소비하게 만들고, 다시 임금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삶의 구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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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모두가 문화가 있는 삶’을 누리려면, 생존경쟁 때문에 지쳐버린, 그 지쳐버린 마음을 쉬는 공간에서조차도 공급된 상품을 소비해야 하는 일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안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 자립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차원에서 문화정책을 구성해야 한다. 개별주체가 생존하기 위해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가? 그 일상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공급하고 소비하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우린 다른 삶을 상상해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요리, 의식주, 관계맺음(결혼할 상대도 돈을 주고 소개받는 것) 등, 언젠가부터 이런 일상조차도 상품으로 공급되어, 현대인은 스스로 사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마치 설국열차 안에서 양갱을 공급받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공포에 휩싸여, 서로를 물어뜯는 생존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처럼. 생존경쟁을 이기고 첫 번째 칸에 도착한 사람에게 스테이크를 공급하는 게 문화가 아니라 설국열차 바깥을 상상하는 것, 그리고 공급하고 소비하는 삶의 방식 바깥으로 나갔을 때 자립할 수 있는 삶의 기술과 방식을 준비하는 것, ‘공급과 소비’가 아닌 ‘생존과 자립’에서 문화정책의 고민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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