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주변부 끝에서의 연대. 양철모(24호)

2013년 8월 16일culturalaction
주변부 끝에서의 연대. 양철모
1. ‘양철모’하면 사진가, 기획자, 믹스라이스, 마석동네페스티벌, 탑골만화방, 공공미술삼거리 등 다양한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철모씨의 작업과정과 경험들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1-1. ‘사진’을 찍게 된 계기와 ‘기획’을 함께 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 주세요. 
공업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매우 지루했죠. 그래서 사진반에 들어갔어요. 들어간 이유를 생각해 보면, 가끔 사진찍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사진반에는 과학실험실 같은 분위기도 있었고 학생들에게 압수당한 야한 비디오도 많았죠. 그래서 교과목이었던 기계에 관한 공부를 뒤로 하고 이미지를 생산하는 사진기계에만 열중하게 되었죠. 그런데 기획은 우연적이고 필연적으로 하게 됐어요. 사진을 가르치면서 아이들과 더 즐겁게 전시를 하고 싶었던 게 계기가 됐죠. 성미산초등학교 아이들하고는 마을잔치 때 사진관을 차렸어요.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촬영해 줬지요. 초등학교 아이들의 어설픈 호객행위와 사진가 모습은 매우 우스꽝스러웠어요. 대부분 찍으러 온 사람들이 사진가를 달래며 사진을 촬영했죠. 찍은 사진은요? 시트콤 같은 사진들이 찍혔답니다. 이런 작은 계기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뭐 처음부터 기획자가 되려고 한 건 아니였고, 주도적인 성격에 제가 일을 하나씩 맡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처음으로 했던 공적인 기획은 2004년에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농성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농성을 그만두는 시점에 저에게 전시를 의뢰해 왔어요. 그때 전시 제목이 <20kg의 여행>이었어요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의 개인 앨범과 짐이 가득한 가방을 전시했는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건을 빌리느라 진땀을 뺏죠. 마로니에 공원 야외에서 전시를 하려고 했는데, 허가가 나지 않아 아르코미술관을 찾아갔어요. 건물 밖에 있었던 컨테이너박스 두 개를 빌릴 수 있었어요. 결국 컨테이너 박스에 짐짝 같은 여행가방이 가득한 전시가 이루어졌죠. 이 때 이주에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던 믹스라이스를 만나게 됐고, 이 후 여러 가지 것들을 함께 모색할 수 있었어요. 이런 모색이 기획들과 자주 연결됐죠.
1-2. ‘마석’이라는 공간에서, ‘마석동네페스티벌’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명동성당 농성장에 있던 친구들이 흩어지고 나서 ‘마석가구단지’란 곳을 가게 되었어요. 활동과 한명과 늦은 밤 시간에 공장을 돌아다니는데, 참 충격적이었죠. 두렵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하고…뭐랄까? 골목의 어둠을 뚫고 헤매다가 작은 불 빛 아래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는 전구색 피부의 이주노동자를 만났다고나 할까요?. 여하튼 그는 밝게 웃고 있었어요. 이후 마석가구단지를 자주 가게 됐는데, 마석가구단지는 이주노동자 운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걸 알았죠. 그것을 리서치 하기 위해 다니다 보니 이주노동자 친구들도 한 명씩 만나게 된 거죠. 본격적으로 마석가구단지에서 기획을 하게 된 것은 (2006년 아트엔시티) 『소외지역 환경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을 통해서였죠. 이 사업을 시작으로 마석가구단지가 과거에서 현재까지, 고립된 지역에 사회적 타자라 불리우던 사람들이 숨죽여 살았던 곳임을 알게 됐죠. 저희는 <마석이야기>라는 사업명을 통해 이주노동자, 지역주민, 학교, 고용주, 가구판매 사장님들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약간 불편하지만 어색하게 만나는 어떤 장들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지역에서 마무리해야 될 것들을 사업에서 남겨뒀어요. 주민들이 그 남겨둔 것을 채우면서 <마석이야기>는 끝났죠. 그런데 이 사업을 계기로 마석가구단지에 살고 있는 네팔, 방글라데시, 필리핀 친구들과 매우 가까워 졌어요. 그 중 방글라데시 알럼이라는 친구를 알게 됐는데, 마석가구단지에서 일을 하면서 지역문화기획을 하고 있었어요. 마을 축제를 한다든가, 연극을 연출하기도 하고, 심지어 패션쇼? 까지 알럼이 기획하고 있었죠. 알럼이 어느 날 믹스라이스에게 연극의 배우로 참여해달라고 했고, 저희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응했죠. 저는…이주노동자에게 막말하고 괴롭히는 사람에서 개과천선한 선한 사람으로 출연했어요. 무대에서 욕으로 시작해서 울부짖으며 끝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고, 저희 첫 연극무대 데뷔작이죠.
알럼은 종종 어눌한 말투로 나의 소원은 마석가구단지에서 락페스티벌을 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듣기만 하다가 흘렸는데, 알럼의 소원이 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한 공고문을 만나게 됐죠. 경기문화재단에서 문화바우처 사업의 카테고리 중 활생문화공명이라는 사업이 있었는데, 이 기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문화예술이 복지의 이름으로 자꾸 쓰여서 짜증이 좀 나고 있었는데, 복지기금으로 신나게 노는 장을 만들게 된 거죠. 결국 저희는 마석가구단지 옥상에서 마석동네페스티벌을 치르기 위해 미친 듯이 움직여 성대하게 잘 끝내게 됐죠.
1-3. 현재 충청북도 괴산에 ‘탑골만화방’도 운영하시는데, ‘괴산’에 ‘만화방’을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무를 심고 싶었어요. 호두나무를 심어 그 열매를 사람들과 나눠 먹고 싶었죠. 그리고 먼 훗날 그 열매를 사람들이 나눠먹은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죠. 나무를 심기 위해 땅이 필요했어요. 괴산에 지인이 살고 있는데, 자주 가게 되면서 괴산을 알게 됐죠. 그러면서 괴산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괴산은 흙살림과 한살림이 있고 지역 공동체가 살아있는 혹은 살아나려고 노력하는 곳이에요. 사람들이 모여 지역언론 느티나무통신을 협동조합으로 만들기도 한 곳이죠. 이런 환경에서 문화적인 움직임을 같이 하고 싶었어요. 그 움직임을 좀 명랑하게 하고 싶었죠. 그래서 마을에 쾌락적인 공간을 만들기로 했고 그러다 만화책을 좋아하고 만화책이 많은 이유로 만화방을 만들게 된 거죠. 사실 만화방은 소규모 자립자족 공동체를 실험적으로 만드는 첫 움직임이에요. 마을에 술집도 있을 수 있고, 클럽도 있을 수 있어요. 상상해 보세요. 마을버스를 타고 마을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서 클럽에서 춤을 추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긴 줄을…이 때가 되면 클럽용 번쩍이는 지팡이도 필요할 것 같아요.
이런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작가들과 함께 공간을 만들게 된 거죠. 공간을 수리하는 과정은 놀이의 과정이었어요. 일이나 공사가 아닌 즐거운 놀이터였죠. 미술작가들과 함께 이런 일을 모색하기 위해 <삼거리>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삼거리는 미술프로젝트들이 단발적이고 지속하기 어려워진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함께 일을 모색하고 성과를 축척해 공유하는 모임이에요.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작가들의 삶을 스스로 개선해보려는 움직임이기도 하구요. 특이한 건 일을 하면 공동의 적립금을 만들어요. 이 적립금은 마을에 공간을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작가들의 생계를 위한 긴급자금으로 사용되기도 해요. 적립금은 현재 두 명의 작가에게 대출이 된 상태입니다. 이글을 보면 좀 상환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삼거리 멤버들이 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규모있는 기획 회사에 고용되어 ‘을’이 되는 서러움에서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여하튼 우리는 도망갈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 도망갈 공간에 만화책이 가득하지요. 사고를 쳐서 숨어야 될 상황이 생기면 탑골만화방에 오세요. 환영할게요.
2. 철모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새로운 삶, 대안적 삶을 모색하다 보니 작업과 삶의 분리가 심각해요.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나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주변 환경이 삶이자 곧 작업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는 좌충우돌이지요. 그래서 삶의 키워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러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가진 건 몸뚱이,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건 몸뚱이가 가진 기억뿐이죠. 구체적인 기억을 가진 몸뚱이로 진화를 멈추지 않기 위해, 오늘도 실수 내일도 실수 하지만, 명랑함으로 미래를!
3. 행복한 순간과 슬픈 순간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잘 사는 게 곧 저의 행복이자 모두의 행복이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착각하며 살아야 명랑하게 살 수 있거든요. 아 경험적으로 이야기 해달라고 했죠. 생명이 생명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참 감동적이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요. 너무나 끔찍한 상황이 일상이 되고 있는 삶에서 행복은 그 감동적인 상황에 내가 서있는 거라 할 수 있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서있는 거요. 슬픈 순간은 함께 서있는 걸 무참히 제지당할 때에요. 음…또 하나는 탑골만화방에 생태뒷간이 있어요. 응가를 할 때는 행복한데, 응가를 처리해야 될 때 슬퍼요. 또 그 응가로 식물을 잘 키우고 열매를 맺어 먹으면 행복한데, 음식물 쓰레기가 나와서 슬퍼요. 그러고 보니 행복과 슬픔은 이어져 있는 것 같군요. 마치 손안에 든 스마트폰처럼.
4. 요즘 하고 있는 작업과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을 얘기해 주세요. 
탑골만화방을 잘 움직이는 게 가장 즐겁고 중요한 일이에요. 마을에 공간이 던져졌으니, 책임을 져야죠. 많은 부담은 아니고 천천히 마을에 살포시 있을 겁니다. 9월 7일에는 두 번째 마석동네페스티벌이 있구요. 10월에는 전시도 있네요. 가장 하고 싶은 작업은 통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공공미술로 통일을 해볼까, 혹은 개인작업으로 통일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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