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어느 멋진 날, ‘당연한 결혼식’에 초대합니다!(24호)

2013년 8월 16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김승환(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김조광수(영화감독, 청년필름 대표) 동성커플이 공개 결혼을 선언하였습니다. 이번 결혼식의 제목은 ‘당연한 결혼식’입니다. 사랑하고, 더 많이 함께하고 싶고, 그래서 결혼하고 싶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동성의 결혼을 법제도적으로 용인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에서는 이처럼 당연한 결혼식조차 화제입니다. 더 로맨틱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문화빵>이 김승환과 김조광수의 ‘당연한 결혼식, 어느 멋진 날’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① 어느 멋진 날, ‘당연한 결혼식’에 초대합니다! / 김조광수(영화감독, 청년필름 대표)
② “I DO!”, 평등한 결혼을 꿈꾸는 김조광수의 결혼 이야기 / 규환+석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③ ‘당연한 결혼식’을 위한 간단한 안내서 / <문화빵>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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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4호
어느 멋진 날, ‘당연한 결혼식’에 초대합니다!
김조광수(영화감독, 청년필름 대표)
1970년, 초등학교 취학 전이던 내게 가장 재미있었던 놀이는 소꿉놀이였습니다. 다방구, 자치기, 술래잡기, 오징어. 놀이가 참 많았지만 내게는 소꿉놀이를 따라갈 만한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소꿉놀이는 남자 아이들보다는 여자 아이들의 놀이였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밖에서 뛰어 노는 쪽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난 소꿉놀이가 좋았습니다. 꼬마들이 어른인 척 연기를 하는 것이 좋았고 무엇보다 싸우거나 경쟁하지 않고 그냥 알콩 달콩 재미나게 살면 되는 놀이라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짝을 이뤄서 하는 놀이였는지라 난 인기가 꽤 많은 편이었습니다. 많은 남자 아이들이 밖에서 놀았기 때문에 짝을 맞추기엔 남자 아이들이 턱 없이 부족했거든요. 나를 차지하려고 여자 아이들은 경쟁을 했고 때때로 가위 바위 보를 해야만 했습니다. 난 그렇게 뽑혀서 누군가와 짝을 이뤘고 가상의 부부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결혼했어요>와 비슷한 컨셉이었군요! 하하, 내가 재밌어할 만 했어요!
다른 아이들의 소꿉놀이는 결혼 후에 벌어지는 가상 부부놀이, 밥 짓고 반찬 만들어 먹는 거였는데, 난 결혼식을 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동화를 읽은 영향 때문이었을 거예요. 짝이 정해지면 여자 아이에게 먼저 동화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개구리 왕자와 공주, 콩쥐팥쥐 등 동화 속의 공주를 하나 고르면 그에 맞게 대본을 짰고 피날레는 항상 결혼식이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동화의 결말이 그랬던 것 처럼요. 나는 언제나 가상의 성을 만들었고 짝을 이룬 여자 아이와 함께 마차를 타고 입장을 했습니다. 수많은 하객들이 모여들고 팡파르가 울리고 축포가 쏘아지는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물론 가상의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거였지만요)을 올렸습니다. 그 때 만큼은 공주가 될 수 있었던 나의 짝꿍들도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밥 짓고 상 차려서 맛있게 먹고 있던 다른 짝들도 다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보았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렇게 결혼식을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1981년 7월 29일, 세기의 결혼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황태자 찰스와 그의 연인 다이애나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성과 마차, 수많은 하객들의 축복, 바로 제가 꿈꾸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동화 속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이라니! 그날 이후 저의 꿈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들과 똑 같은 결혼식은 아니더라도 꼭 수많은 하객들의 축복을 받는 결혼을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를 겪으면서 그 꿈은 산산조각 났고 우울해졌습니다. 난 신랑이 될 수 없었습니다. 신랑이 되려면 신부가 있어야 했는데, 난 신부와 짝을 이루는 이성애자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이성애자들의 결혼을 축복했지만 나 같은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축복은 커녕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식을 꿈꿨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면서 우울한 밤을 보냈습니다. 꿈 많던 사춘기 게이 소년은 좌절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 가 학생운동을 하면서 결혼제도가 가진 문제도 알게 되었고 꼭 결혼을 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란 것도, “비혼”이라는 단어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성애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결혼이란 것에 늘 목말랐습니다. 그럴수록 냉혹한 현실에 몸서리쳐야 했습니다. 형과 여동생 둘, 친구들과 아는 이들이 결혼을 했고 난 언제나 결혼식을 축하해주는 하객으로만 있어야 했습니다.
커밍아웃을 하고 성소수자인권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세상도 바뀌었습니다. 아직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지만 동성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보장하거나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나라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을 꿈꾸다 좌절했던 소년은 이제 어느덧 중년이 되었지만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 지금도 늦지 않았어!
하지만 다시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관계가 무르익게 되면 결혼 얘기를 슬쩍 꺼내곤 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단호하게 “NO!”였습니다. 나처럼 결혼을 꿈꾸는, 아니 실제로 결혼을 하려는 게이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그렇게 꿈이 사라지는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2005년 1월, 겨울의 칼바람이 매서웠던 날, 김승환이라는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친구사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는 빛났습니다. “후광이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죠. 그때부터 가슴앓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짝사랑이 연애로 버전 업을 하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에게 구애를 하는 동안 천국과 지옥을 수도 없이 오갔지만 행복했습니다.
2008년 1월, 그가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떠났습니다. 금방 사귀고 금방 헤어진다는, 아무하고나 만나 섹스하는 것에만 관심 있다고 이른바 “동성연애자”로 불리는 우리들에게 6개월간의 이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6개월 동안 매일 아침과 밤 화상채팅을 하는 닭살 행각을 벌였고 밸런타인데이에는 파리에서, 학기를 마친 여름엔 뉴욕에서 만나 사랑을 불태웠습니다. 그렇게 서로 더 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욕심이 생겼습니다. “아,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하고 싶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결혼을 하려고 하느냐고. 사랑하니까요. 더 필요한 게 있나요? 저희도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우리의 결혼을 도와주지 않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기까지, 그리고 결혼 후에 우리들 앞에 많은 난관이 있을 거란 걸 너무나 잘 알지만 2005년부터 지금까지 쌓아 왔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 어떤 커플보다 행복할 것입니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면서 걱정도 많고 생각도 많아집니다. 솔직히 많이 떨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걱정 보다는 기대를 갖고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을 하려니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많은 분들이 내 일처럼 도와주고 있어서 힘들 때보다는 행복할 때가 더 많습니다.
며칠 전에 거리에서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소녀를 만났습니다. 그 소녀는 대뜸 내게 다가와서 “감독님 덕분에 나도 결혼이란 걸 꿈꾸게 됐으니 내가 결혼을 할 때쯤엔 우리나라도 동성결혼이 합법화 될 수 있도록 책임지라”고 했습니다. 하하, 귀여운 소녀의 당돌한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행복한 나의 결혼이 누군가에게 꿈을 준다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까!
2013년 9월 7일 저는 결혼을 합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사랑하니까 하는 당연한 결혼이니까요. 제가 내민 손, 덥석 잡아 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결혼식에서 뵙겠습니다.
참, 예쁘게 입고 오세요. 대한민국이 로맨틱해지는 날이니까요.
김조광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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