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연의 문화읽기] 케이 리그 서울 더비 매치를 꿈꾸며 (23호)

2013년 7월 29일culturalaction
케이 리그 서울 더비 매치를 꿈꾸며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전 세계 축구팬들이 열광하는 더비 매치 중에서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매치는 긴장감과 자존심에 있어 더욱 흥미를 끈다. 이탈리아 밀라노를 연고로 하는 AC 밀란과 인터밀란, 영국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 스코트랜드 글래스고우를 연고로 하는 FC 셀틱과 글래스고우 레인저스, 스페인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레알 마드리드와 AT 마드리드,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를 연고로 하는 플라맹고와 플루미넨세, 그리고 제이 리그 오사카를 연고로 하는 세레소 오사카와 감마 오사카 더비가 그 예들이다. 물론 각국의 프로리그의 역사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 예컨대 레알 마드리드 대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FC 리버플, 갈라타라사이 대 페네르바체의 더비 매치 역시 유서 깊은 피치 위의 대결의 역사가 있지만, 아무래도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양 팀들 간의 경기는 언제나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시민들 간의 자존심 대결이 치열하다는 점에서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 특히 산시로라는 같은 경기장을 사용하는 AC 밀란과 인터밀란 간의 더비 매치는 양쪽 서포터즈들의 화려한 응원 퍼포먼스로 경기 그 이상의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나는 FC 서울의 서포터즈로서 서울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더비 매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FC 서울의 대표적인 라이벌 팀은 수원 삼성이다. 이 두 팀은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과 LG라는 두 전자 회사가 지원하고 있는데다, FC서울의 본래 연고지인 안양이 수원과 같은 경기 지역이라 양 팀의 경기는 케이 리그에서 가장 치열한 서포터즈 대결이 벌어진다. 내가 만난 수원의 한 서포터즈는 연고지를 옮긴 FC서울을 경멸하기 때문에 자기 딸아이에게 절대로 빨간 옷을 입히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다. 두 팀 간의 경기가 벌어지면 서울이던, 수원이던 항상 최다 관중을 동원한다. 이렇듯 수원 삼성과의 전통의 더비매치도 흥미롭지만, 같은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이 하다 더 생기면 더 멋진 더비 매치를 관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몇 년 전에 학교에서 문화이론 수업 시간 중 문화적 취향과 서포터즈 문화를 주제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케이 리그의 흥행을 위해 현재 서울 강북을 연고로 하는 FC 서울이 있으니 강남을 연고로 하는 팀이 하나 생기면 흥미로운 더비배치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이 있으니 서울 강남을 연고로 하는 팀이 따로 경기장을 세울 필요도 없을 것이고, 대형 종교집회나 마라톤대회 행사장으로 전락한 잠실 올림픽 경기장의 활용도를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거기에 흥행 요소를 높이기 위해 과거 자본가 계급이 지지했던 인터밀란과 노동자 계급이 지지했던 AC밀란, 그리고 구교가 지지했던 FC 셀틱과 신교가 지지했던 글래스고우 레인저스처럼 서울 더비도 못사는 강북지역을 대표하는 FC서울과 잘사는 강남 지역을 대표하는 FC잠실로 대비하면 어떨까? 더 흥미로운 더비 매치를 원한다면 여기에 강남의 대형 교회들이 구단주로 참여하는 ‘FC할렐루야’와 대표적인 불교 교단인 조계종이 구단주로 참여하는 ‘FC관세음보살’로 더비 매치의 구도를 맞추면 어떨까?
물론 이런 상상은 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한 국가의 프로축구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에 프로축구 팀이 한 팀 정도 더 생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프로야구도 서울을 연고로 하는 팀이 2팀이 되지 않나?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는 런던을 연고로 하는 팀이 첼시와 아스널을 제외하고도 플럼, 토트넘 등 매 시즌마다 4-5팀이 활약한다. 내가 재미삼아 말했던 그런 더비 매치 형성은 아니더라도, 잠실 올림픽 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프로팀이 하나 더 생기면 케이 리그 흥행에는 분명 한 몫을 할 것이다. 아시겠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 누 캄프 경기장을 홈으로 하는 FC 바르셀로나 외에 몬주익 올림픽경기장을 홈으로 하는 RCD 에스파뇰이 있다. 스페인 독재철권 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프랑코 정권 시절 시민군의 최후의 집결지였던 FC바르셀로나 누캄프의 서포터즈들을 대항하기 위해 RCD 에스파뇰을 창단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에스파뇰이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몬주익 경기장 언덕은 독재정권에 저항한 시민군들의 수천 주검이 묻혀있는 곳이다.
2013년 동아시아 컵 한국과 일본 경기가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열렸다. 숙명의 한일전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지만, 오랜만에 잠실 올림픽 경기장은 축구의 열기로 가득했다. 상암 경기장 건립 이후 축구 경기장으로 한동안 기억에서 사라진 잠실올림픽경기장이 오랜만에 A매치로 과거 영광을 재현한 것이다. 잠실올림픽 경기장의 축구장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체육관리공단에서 최근에 피치를 4계절 천연 잔디로 바꾸었고, 축구 전용경기장의 관람 효과를 높이기 위해 경기장 내 트랙에 보조석을 설치하는 것도 고려중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잠실 올림픽구장을 홈으로 하는 프로구단을 유치하길 희망한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잠실을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팀이 조만간 창단했으면 바람을 가져 본다. 나도 언제가 지하철로 잠실올림픽 경기장에 찾아가 서울 더비매치 원정응원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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