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2013년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가다 – 여전히, 추억 속에 머물고 있는 어느 것에 대하여(23호)

2013년 7월 29일culturalaction
2013년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가다
 – 여전히, 추억 속에 머물고 있는 어느 것에 대하여
김상철(노동당 서울시당)
나에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이하 영화제로 줄인다)는 크라잉 넛과 발리우드로 기억된다. 2005년 쯤 영화제의 핵심 프로그램은 여타 어떤 영화도 아니고 바로 심야에 열린 ‘씨네 락’이라는 것이었다. 영화와 락음악의 결함이라는, 게다가 홍대씬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철야 공연이라니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무대가 영화상영관이라 날뛸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영화제를 핑계로 홍대앞에서 놀고 온듯한 그 포만감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영화제는 인도영화로 이끄는 입문서였다. <발리우드>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2011년, 엄청난 비토에 시달리고도 영화제는 부천하면 인도영화를 봐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만큼 수작들을 소개했다. 낯섬과 함께 충분한 오락성이 강점인 인도영화는 그렇게 헐리우드 외의 대중영화씬을 낯설지 않게 만들었다.
사실 나에게 영화제는 <명탐정 코난> 따위 탐정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나의 저급 취향을 영화제 수준으로 높여주는 계기인 동시에, 친구들과 은어처럼 떠들던 애니메이션 정보를 가족이나 애인에게도 고급정보로 만들어주는 계기였다. 오시이 마모루라는, 안노 히데야키라는 마음 속의 히어로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해준 것도 바로 이 영화제였다. 그렇다 내게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평론가나 영화전공자나 갈 것 같은 부산국제영화제나 연인이나 2~30대 여성이나 갈 것 같은 제천국제영화제와는 다른, 그야 말로 일상의 양지가 되기 힘든 B급 취향이 10일 동안 신분상승하는 카니발 그 자체였다.
낯설어 지다
그랬던 영화제가 올 해는 무척이나 낯설다. 뭐랄까, 완전히 말랑말랑 해졌다고 할까? 17살이면 반항기에 거친 캐릭터가 분출되어야 할 것 같지만 올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도수를 낮춘 소수와 같다. 누구나 먹어도 되지만 누구도 만족시키지 어려운 그런 영화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기분은 영화제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짚어야 할 것이다. 영화제가 기본적으로 단기 인력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영화에 대한 진지함보다는 이벤트성만 가득찼다. 영화 소개를 하는 스탶의 애교는 그야말로 닭살을 넘어서서 안타까웠다. 그 자체로 이쁘고 웃음을 짓게 했지만, 그래도 17년차나 되는 영화제라면 영화에 대한 소개와 관객에 대한 말은 사무국에서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안하지만 이 영화제가 진지하지 않게 느껴진 것은 영화제 안밖에 풍선이니 팝아트를 가미한 장식 때문이다.
물론 과거 회차에서도 이와 같은 임시 스탶의 비중이 낮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이들이 영화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영화제에 대한 관심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 적이 없다. 관객들은 영화제보다 영화 때문에 간다.
이런 낯섬은 프로그램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무엇이 영화제를 부천판타스틱영화제로 만드는가. 그것은 이 영화제가 초기부터 표방했던 장르성에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장르성이 장르영화만을 주구장창 트는 것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즉, 요즘처럼 장르적 영화(좀비물, 코믹스류의 영웅물 등)가 많이 등장한 적이 있었을까. 영화제라면 그 장르를 횡적으로 구성해서 내보일 수 있었어야 했다. 즉, 올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는 결정적으로 큐레이팅이 없었다. 각 영화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엮어서 하나의 기획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간접적으로 건네는 대화가 전혀 없었다. 그냥 대형 쇼핑몰에 들어가서 물건들을 살펴보고 구매하는, 그런 쇼핑과 전혀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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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가기
과거였다면 <도서관전쟁>을 그렇게 외롭게 수많은 극영화 사이에 덩그라니 버려두지도 않았을 것이며, 특색있는 단편들을 그저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이라는 밋밋한 이름으로 1번에서 12번까지 나열해서 상영하지도 않았을 것이고(아니, 행인1, 행인2도 아니고!), 무엇보다 ‘츠카모토 신야’에게 토요일 하루를 헌정하여 특집 편성하지 않고 골고루 나눠 상영하는 만행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고작 애니메이션을 4편하면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그것도 극애니로 단 3편만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가 참여한 책코너에 선량한 기부의 마음은 느껴지었을 언정, 그래도 과거에는 장르서적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만족감은 들지 않았다. 몇 편 안되는 인도영화 중 <탙라쉬>는 그렇게 수작이 아닌데도 형편없는 상태의 필름을 틀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영화가 왜 영화제에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도 프로그램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설명은 없다. 아니, 영화에 대한 진지한 다큐멘터리에, 그것도 대낮 극장에서 시체놀이를 하며 깔깔대는 이벤트는 어떤 맥락이 있는 걸까.
미안하지만 2013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이제껏 영화제 중 단연코 최악이었다. 작년 7월 부천시민이 되면서 가장 크게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바로 부천국제영화제의 심야상영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과거 장르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제가 아니라 9월의 부산, 8월의 제천 앞에 하는 그저 그런 영화제가 되어 버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년부터 투덜댔던 말이 있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장르성 하나를 지속적으로 밀고 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미 장르적이라는 것이 보편화되었다면 여전히 빈 곳을 찾아서 이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가 아니라 장르를 둘러싼 다양한 행사들이 겹합되면서, 사실상 일년에 한번 우리나라의 추리, 애니, 호러 등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성지가 되었으면 하고 말이다.
내년에도 영화제를 갈 것이다
이렇게 애닯게 변한 영화제이지만, 나는 내년 영화제를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나에겐 <명탐정 코난>에서 크라잉 넛을 경유하여 발리우드로 이어지는 영화제에 대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영화제보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가 편하다. 여전히 나같이 애니메이션 좋아하고, SF 좋아하고, 좀비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영화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이로 치면 이제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는 내년 영화제는, 좀 더 매혹적이었으면 좋겠다. 약간은 골치아프더라도 이야기가 있는 영화제였으면 좋겠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영화제였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관객들 사이에서 ‘당신도 그 쪽이야?’하면서 은밀한 동지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운내자! 피판! 내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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