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사랑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23호)

2013년 7월 29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인권조례는 우리의 일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번 문화빵 23호 특집에서의 질문입니다. 2012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인권조례 제정을 권고한 이후 서울의 25개구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포구에서도 「인권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5일 마포구 시민사회단체들은 마포구의 일방적인 조례제정 추진과정에 유감을 표하며 「‘주민과 함께’만드는 마포구 인권조례,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국가차원의 법률이 아닌 지역의 법으로서 인권기본조례가 갖는 의미, 마포구 인권현안과 인권조례의 관계, 그리고 마포구 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과정에서 제외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번 특집에서 살펴보았습니다.
① 인권조례의 의미_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변호사)
② 마포구 인권현안 돌아보기, 그리고 인권조례(민중의집 공동대표 정경섭)
③ 사랑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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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3호
사랑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 김보라 (그림,)
어린 시절,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집에 없었다. 텅 빈 집에서 부모님의 부재를 내가 견디어 낸 방식은, 텅 빈 부모님 방에 들어가 옷장과 화장대며 방 구석구석을 뒤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방은, 부모님의 것이었으나 내가 더 잘 아는 공간이었다. 그 방에서 나를 매료했던 무수한 물건들 중 하나는 벽에 걸린 액자프레임이 된 성경구절이었다. 그 구절은 고린도전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의 장이었고, 나를 묘하게 끌었던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믿음, 소망, 사랑 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 문장은 어떤 위대한 정치선언보다 혁명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어린 내게 그 절이 모두 이해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이 문장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포구청 현수막 저지 사건의 ‘사랑 없음’ 
마포구에 사는 주민으로서, 그리고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이하 마레연)의 활동가로서 작년 말에 일어났던 마포구청의 성소수자 현수막 저지 사건은 이 사회의 사랑 없음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였다.
2012년 겨울, 마레연에서는 마포구 관내 세 곳에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현수막을 걸기로 계획했다. 그때 우리가 게시하려고 했던 현수막의 문구는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 “LGBT, 우리가 여기 살고 있다.”라는 지극히 평화적이고 당연한 문구였다. 그런데 현수막 입찰과 비용지불까지 끝냈을 무렵, 마포구청 측은 ‘LGBT라는 용어와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라는 표현이 ‘과장되고 직설적’이니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했다.

 

우리는 반년 간 투쟁했고, 마침내 인권위에서 마포구청 사태가 명백한 차별이라는 결정문을 내렸다. 그 결정문이 나오기 전까지, 마레연 회원들은 두 달 동안, 마포구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구청 안에서 ‘나는 마포구에 사는 퀴어입니다.’등의 성소수자 지지 문구를 몸에 붙이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민원도 보는 시위를 했다. 마레연은 평화적 몸짓을 통해, 성소수자들이 마포에 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긍정적으로 주시했는데, 특히 마레연의 현수막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기에 더 멋진,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를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성북구, 은평구 등의 다른 구에서 걸릴 동안, 여전히 마포구청은 현수막 게재도, 인권위 결과에 대한 어떤 응답도 하지 않고 있다.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 삶 
마포구청 현수막 저지 사태는 일견 일상의 작은 사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공공장소에서 어떤 단어(그리고 존재)가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느냐는 본질적인 물음과 연관된 사건이다. 또한, 마포구청은 현수막 불허 이유 중 하나로 청소년과 노인들에게 유해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구청이 이성애자로 편리하게 간주해버리는 ‘일반 시민’들을 위해 성소수자에게 존재를 숨기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일명 ‘마레연 현수막 사건’으로 불렸으나 사실 현수막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를 드러내지 말라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있을까.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지 10년이 되어 간다. 그 기간 동안, 많이 받은 질문은 ‘당신의 페미니즘이 무엇이냐’, 는 것이었다. 페미니즘이 어떻게 하나로 정리될 수 있겠냐만, 그럼에도 나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면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 삶’이라고 답하고 싶다. 여기에서 제외는 정치, 법, 문화, 생활환경으로부터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뿐만 아니라, 피상적으로 봤을 때 (차별의) ‘가해자’에 위치한 사람들까지도 포함된다. 사랑이라는 영역에서 제외되어 혐오와 차별을 일삼을 수 밖에 없는 바로 그런 사람들까지도.
마포구청 현수막 저지 사건을 보며, 많은 감정들을 겪어냈다. 처음에 올라온 것은 분노였다. 혐오하는 사람들을 향한 깊은 분노. 그러나 그 뒤에 찾아온 감정은 어떤 슬픔과 측은함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성소수자 혐오자들에게 ‘보수적’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그러나 사실 누군가 성소수자, 동성애를 혐오한다면, 그 이유는 그/그녀가 ‘보수적’인 것도 아니고, 그 방면에 잘 몰라서도 아니다. 그/그녀는 그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뿐이다. 사랑에는 혐오가 끼어들 수 없다. 당신이 행복할 때, 누군가를 파괴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마포구청의 소수자 혐오와 무지는 그들 자신의 몫이다. 나는 그들의 소수자 혐오가 스스로에 대한 혐오에서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제외시키면서도, 가장 제외된 자들이다.
사랑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해가 지날수록, 삶의 많은 문제들이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게 다가온다. 요즘의 내게는 무슨 일을 하려 할 때마다 위의 문장이 기준이 된다. 누구를 만날 때도, 어떤 일을 결정 할 때도 이것이 사랑인가, 하고 묻는다.
현수막 사건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은 마포구청이 인권조례를 만들려 한다. 이들과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소통이 가능할까 회의적인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그들이 조례 제정 시 이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주민들을 제외하지 않고 사랑으로 포함하고 있는 지, 실적 전시 목적이 아닌, 당신에게 소중한 누군가를 위하듯 인권조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지, 조례 제정의 과정 마다마다 이것이 사랑인가 질문할 수 있기를. 또한, 다양한 정체성의 주민들과 긴밀한 연대를 통해 이 지역의 고유한 인권 현안들을 다룰 수 있기를.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품는, 구체적 일상에 자리한 마포구 인권조례가 제정되기를, 누구도 제외되지 않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기쁨을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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