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무대연구소 일지]연극 ‘물탱크 정류장’ 갈 곳 없는 당신! 물탱크 공화국으로 오라!(22호)

2013년 7월 19일culturalaction
연극 ‘물탱크 정류장’
 
갈 곳 없는 당신! 물탱크 공화국으로 오라!
송현민(음악평론가, 이런저런무대연구소 소장)
남산예술센터·스튜디오반이 공동제작한 <물탱크 정류장>(6.26~7.14, 남산예술센터)의 설정은 좀 뻔하다. 무대의 배경은 옥탑방, 그 옆에 놓인 물탱크는 주인공 아닌 주인공처럼 놓여 있다. 주인공은 한세종. 얼핏 세종대왕이 떠오를 것 같고, 그의 부모 또한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테지만 그의 인생은 세(世)상의 끝(終: 종)에 와있는 듯 불안불안, 대책없이, 무조건 불안하다. 어떻게 보면 ‘옥탑방’은 그런 세종의 입지를 대변해주고 상징하는, 얼터에고일 것이다. 아무튼, 세종의 극 중 나이는 30대 초반, 직업은 기자이다.
세종은 <물탱크 정류장>의 주인공이지만 그의 존재에는 많은 힘이 실리지 않은 듯 했다.  대신 끌리는 인물이 등장한다. 동경대와 MIT대에서 공부한 공학박사이다. 세종과 인터뷰를, 그것도 어느 허름한 지하 바에서, 빛도 들지 않는 그곳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그 박사는 입을 열 때마다 환상과 공상, 상상이 뒤범벅된 소리만 끄집어낸다. 제 스스로 자신의 에너지를 그런 상상에만 쏟는다고 하는···.
그런 그가 상상을 투여하는 대상은 물탱크이다. 이런 대사가 나온다, 비싼 가격의 고시원보다 물탱크 속이 더 아늑하고 쾌적하더라, 사우나 같아서 들어갔다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더라, 반쯤 물을 채워 넣고 그 위에 매트를 놓고 떠있으면 기분이 좋다는 등. 자신의 연구성과라는 것이 결국 술 먹고 체험한 ‘물탱크와의 하룻밤’이다.
그런데 듣다 보면 묘한 매력이 생긴다. 그의 상상에 ‘힘 력(力)’가 붙어 ‘상상력’이 되면서, 그 ‘헛’소리들은 ‘핫’하게 다가온다. 밑줄 쫙 긋고 싶은 이야기는 대한민국에 있는 40만개의 물탱크를 1인용 주거공간으로 개조하여 물탱크 공화국을 만들자는 공학박사의 주장이었다. 그것은 죽은 공간을 회생시키는 생태학이자, 의·식·주의 하나인 삶의 터전을 향해 있는 정책이 아니던가? 부동산이 삶의 터전의 의미보다는 또 다른 자본이 되어 검은 자본을 부르는 오늘날, 그 ‘땅놀이’에 얽혀 있는 수많은 가진 자들과 정치가들의 거짓말보다 그 공상이 오히려 현실화로서 흠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탱크! 물탱크! 물탱크! ‘물탱크’라는 단어가 박사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무대 뒤, ‘DANGER’라고 적힌 노란색 물탱크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생각해보니 민생‘안정’을 외치는,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 윤리적으로 ‘안정’이 안 된 그 분들의 말씀이 더 ‘위험’할 때가 많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 공학박사의 미친 대사를 들을 때마다, 그 대사를 ‘히어링’할 때마다 그것은 내 존재의 ‘힐링’으로 이어진다. 막이 내린 후, 생각해보니 사회의 이면을 들추는 것은 거친 비판과 정의로 무장한 핏대올리기가 아니더라. 결국 웃음과 웃음으로 이어지며, 공감의 띠를 두르는 물음표와 공상과 상상이 결합된 그 무엇이더라. 간만에 실컷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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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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