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를 이해하기 위하여]준비하시고 쏘세요(22호)

2013년 7월 19일culturalaction
준비하시고 쏘세요
임효진
2년 전쯤, 소형자동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면서 아무 때나 방정맞게 플래쉬를 팡팡 터뜨리던 때가 있었다.
매일 거르지 않고 찍다보면 후에 뭔가 의미있는 게 되어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쓰던 일기만큼 성실하게 찍어댔다.
그 이상한 취미생활을 청산하게 된 계기는 카메라의 고장때문이었다.
오래된 기종이라 부품을 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남대문아저씨의 말에 나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였고 그길로 오랜 꿈이었던 DSLR을 지르러 갔다.
본디 사진을 찍는 게 취미인 사람들은 그 취미가 깊어질수록 어려운 것에 매력을 느낀다고들 하는데
천성이 게으른 나는 DSLR과 아직도 친해지지 못했다. 사이즈와 무게는 외출시 동반하기 꺼려지는 가장 큰 이유다.
왜 항상 나의 소비생활은 유행을 비껴가는지 블로그에서 새로나온 미러리스 카메라 후기들을 볼 적마다 우울해진다.
요단강을 건너버린 그 필름카메라는 부모님이 내가 태어났을 때 쯤 구입하셨던 것으로 필름을 끼우는 일 외에 다른 조작은 전혀 필요없는 자동카메라였다.
일반적으로 옛날 필름카메라의 경우 사진을 한 장 찍을 때마다 와인딩을 해줘야 하는데 얘는 필름도 자기가 알아서 감는다.
왜 어디 교외나 유원지에 가면 정자세로 입구나 현판 앞에 세워두고 아버지들이 찍어주던 사진.
내가 어릴때만 해도 집에 있는 카메라들은 대게가 그런 용도였다.
광량이 부족하다 싶으면 자동으로 플래쉬가 터져서 눈이 뻘겋게 나오고 초점이 사람이 아닌 배경에 가있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누르면 찍힌다’는 간단한 작동법에 우리집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카메라.
나는 그걸로 찍은 투박한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다. 손바닥 만한 크기라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찍고 싶은게 눈앞에 나타나면 5초안에 해치워 버릴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진 플래쉬에 평소보다 2배는 커진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 속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셔터를 누르던 때가 생생하게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난다. 책을 읽다 맘에드는 문장을 만나면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놓는 것처럼
나는 삶의 그런 순간마다 비장한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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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인터넷에서 본인이 사진 찍는 일에 중독된 이유를 밝힌 블로거의 글을 본적이 있다.
 군대에서 사격 하나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는 그는 제대 후에 사진에 취미를 붙이게 됐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총을 쏠 때와 비슷한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 글을 읽고 나니 한 쪽 눈을 지그시 감은 상태에서 숨을 참고 셔터를 누르는 일이 목표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많이 닮아있음에 무릎이 시렸다.
나 역시 촬영 직전의 숨고르기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피사체와 짧고 굵게 대치하는 그 상황을 몹시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맨 처음 사진관에 가서 증명사진을 찍었을 때가 생각났다. 어색하게 굳어버린 나에게 사진사아저씨는 “자 준비하시고 찍습니다, 하나 둘-“
셋은 외치지도 않고 셔터를 눌렀다. 꼭 셋까지 세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당한 기분이었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 사진사 아저씨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3X4사이즈의 사진은 크기와는 상관없이 몹시 부끄러워지고 만다.
또, 주말 낮에 하던 주택복권 방송도 생각났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이쁜 언니들이 비비드한 컬러의 짧은 치마를 입고 나란히 서서 손에 든 버저를 누르면 빠르게 돌아가던 과녁에 화살이 날아가 꽂혔다.
그러면 그 언니들이 과녁에 다가가 어느 숫자에 화살이 꽂혔는가를 온화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읊어줬다.
채널을 돌리다가도 그 방송이 나오면 MC의 멘트를 듣기위해 채널을 멈추곤 했다. 복권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다.
숫자가 한 자리씩 공개될 때마다 뒤에서 낮게 울리는 아버지의 탄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다만,
“준비하시고”와 “쏘세요” 사이의 긴장 속에서 당첨번호를 결정짓는 저 버저를 나도 한번만 눌러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나 두울 셋, 나도 셋을 세기 직전에 셔터를 누르는 버릇이 있다.
사진 찍는 게 즐거웠던 때의 나는 누군가를 렌즈앞에 세워놓고 나만 알아챌 수 있는 떨림으로 숫자를 세는 것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내가 숫자를 세는동안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웠다.
내가 감히 멈출 수 없는 피사체들은 그대로 두고 대신에 내가 숨을 참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빛을 영원히 가두기 위해 태어난 카메라의 태생적 숙명을 고려해 봤을 때 뷰파인더 앞에 선 사진사의 긴장은 실로 당연한 감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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