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로운 덕후의 우울] 다른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애니메이션 -지브리 레이아웃전을 다녀와서 드는 단상(22호)

2013년 7월 19일culturalaction
다른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애니메이션 
 
-지브리 레이아웃전을 다녀와서 드는 단상
최지용
“학창 시절 학교보다 영화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영화는 스승이자 교과서였다. 영화를 매개로 사물을 생각하는 습관은 소설 집필 때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가네시로 가즈키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겐 애니메이션이 그랬다. 나에게 이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형성하게 해준 팔 할은 애니메이션이었다. 내가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은 대개 힘세고 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린이들을 대변했고, 약하고 어리지만 지혜롭고 꽤가 많았으며 상상력이 풍부했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고난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해쳐나갔다. 그리고 내가 보았던 수많은 애니메이션 중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단연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다. 아름답고 따뜻한 것에 쉽게 마음을 뺏기던 미숙한 소년은 몇 번씩이나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되풀이해서 보고 또 보았다. 그래서 이번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반가웠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단지 스튜디오 지브리의 역사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나 개인의 역사를 반추해보는 것과도 같게 느껴졌으니까. 그 만화영화들을 생각할 때면 브라운관 화면을 넋 놓고 보던 그 때의 그 소년으로 되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전시회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 관객이 제법 있었고, 친구들, 연인, 중고생 등 다양한 관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의 레이아웃을 모아서 전시한 것인데, ‘레이아웃’이란 한 장의 종이에 배경과 캐릭터의 위치, 움직임의 지시, 카메라 워크의 유무와 속도, 촬영 처리 등 영화에서 표현되는 모든 것이 그려진 설계도라고 할 수가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공정은 크게 기획→각본→그림콘티→레이아웃→CG/작화/배경→촬영구성→편집→음향의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레이아웃은 그림 콘티에서 정해진 큰 구도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화면을 설계하는 작업이다. 바로 이 레이아웃은 애니메이션 영화와 일반 실사영화사이의 차이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이 가진 장점 중 하나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구도를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는 레이아웃을 통해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원근법이 적용되는 세계에서는 레이아웃이 균형이 깨진 그림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유로운 표현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상상력과 다양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엄청난 양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지나가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은 물론이고 단편 작품들의 레이아웃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가가 그림 그리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 미술가의 생각하는 방식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이 설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애니메이터의 생각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레이아웃을 짜고, 수정하는 과정 속에는 애니메이터의 부단한 고민이 녹아있다. 그리고 그 무수한 고민들은 한 가지 강력한 원칙 위에 있다. 그것은 바로 ‘관객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지브리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아첨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관객들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지브리의 화법이 가진 강점은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관객들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모두가 소외되지 않게 하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지브리의 작품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넓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비결이다.
나는 애니메이션이 지닌 가장 큰 가치가,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와 부당한 권력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배웠다. <모노노케히메>나 <이웃집 토토로> 같은 작품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그 작품들은 나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불어넣어주었고,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좋은 이야기는 분명 세상을 변화시킨다. 아니,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가 너무 과장이라고 반문한다면, 적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부에서 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도록 한다. 우리가 이 사회 구조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머리를 통해서이지만, 우리의 삶과 몸을 변화시켜 체화된 형태의 구체적인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문화를 통해서이고, 문화의 힘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나는 가끔씩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에 지칠 때면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영화들을 다시 보곤 한다. 그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내가 어린 시절에 가졌던 순수한 열망들, 좀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 고(故) 이오덕 선생님은 “동심은 어른들의 장난감이 아니고, 옛날을 회상할 때 잠기는 늙은이들의 그리움의 세계도 아니다. 그것은 삶의 터전에서 온갖 부정과 역경과 싸우면서 끝내 지켜 나가는 순수한 인간 정신이며, 끊임없이 자라나는 선의 마음바탕이며, 온 민족의 어린이와 어른의 마음바다로 확대하갈 수 있는 정심(正心)이며, 문학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지브리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작품들이 우리의 동심을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속에서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을 좋아하는 소녀에게 싱겁게 건네주고는 신이 나서 달려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희망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은 분명 가능하다. 우리들 마음과 마음속에 그 씨앗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춤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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