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화려한 작품 속 감춰진 예술인의 창작환경 “그림쟁들이들, 할 말 많다!”(22호)

2013년 7월 19일culturalaction
화려한 작품 속 감춰진 예술인의 창작환경
 
“그림쟁들이들, 할 말 많다!”
이선영(문화연대 자원활동가)
버스와 지하철 안,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챙겨보며 깨알 같은 재미를 느끼거나 게임에 온통 빠지며 이동시간의 지루함을 달랜다. 거리에 들어서면 곳곳에 디자인 된 포스터들과 광고판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컴퓨터를 켜면 화려한 그래픽 디자인의 세계가 펼쳐진다. 과거 화실의 캔버스의 도화지나 미술관의 유리액자, 만화방의 만화책 속에만 머물던 ‘그림’들은 오늘날 ‘디자인’과 ‘그래픽’ 등으로 진화하였고, 하나의 거대한 문화산업이 되어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지난주 목요일 7월 11일 저녁 7시,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만화/게임/그래픽산업에 종사하는 네 명의 ‘그림쟁이’들이 모였다. 컨셉아티스트 오예란, 만화스토리 작가 전진석, 만화가 정철, 그래픽디자이너 조아라가 그들이다. 예술인소셜유니온의 나도원 공동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대담회에선 각 그림쟁이들의 돈 떼이고 뒷통수 맞은 서글픈 사연들이 이어졌다. 네 명의 패널 모두 각자 일하고 있는 분야가 다르지만 그림으로 먹고 살 수 없는 업계의 생태계는 매우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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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림업계에서 종사하는 많은 예술인들이 작업에 든 시간과 비용, 노력에 비해 금전적으로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열정 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신인들은 더욱 착취당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있다. 이들은 이름과 얼굴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쉽지 않고, 결국 적은 수당을 감수하고 일이 들어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많은 예술인들이 계약서나 저작권법에 대한 이해 수준이 깊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 사례도 있었다. 특히 패널로 참석한 만화가 정철 씨는 만화가들에게 저작권법 등의 상담을 해오고 있는데, 이에 관련하여 예술인들이 계약서나 저작권법에 대한 공부를 하고 제대로 숙지하고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현재 대학의 관련 학과에서도 저작권법 등을 다룬 수업이 제대로 개설되어 있지 않고, 대체로 예술인들이 ‘나는 계약서나 저작권법은 잘 모르겠으니 그림만 그리겠다.’고 생각이 더 많은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작가는 작업량을 계산하지 않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였고, 작업이 지연되면서 오히려 계약금보다 더한 벌금을 물어주기도 했다. 어떤 만화가는 저작권자인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만화책이 해외에서 발간되어 팔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는 씁쓸한 사례도 있었다. 이외에도 업계에서 다양한 유형과 내용의 부당한 사례가 있었다.
이렇게 업계에 불합리한 관행과 착취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지만, 해결되기 어려운 점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예술인 본인의 소극적이고 안이한 태도이다. 참석한 네 명의 패널 모두  ‘소심하게 있지 말고, 부당한 일을 당하면 목소리를 높여라.’를 강조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저작권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를 하고, 동료 작가와 창작환경과 조건들에 대해 공유를 해야 한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예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을 적게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일한만큼 받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당사자인 한 사람에게만 문제가 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은 업계의 관행이 되어 다른 작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날 그래픽디자이너 조아라 씨는 실제로 그래픽디자인 업계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음악CD 디자인 분야의 급여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급여가 형편없는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문화ㆍ예술시장이 수요자보다 공급자가 훨씬 많은 구조와 더불어 작업자 스스로 낮은 보수를 감내하며 작업했기 때문이다. 네 명의 패널 모두 예술인들 스스로의 활동에 자부심을 갖고, 형편없는 보수와 조건의 일이 들어온다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두 번째, 사회적/법적으로 예술인의 활동이 노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1인 기업’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예술 활동은 노동이 아닌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 역시 성격이 다른 차원의 ‘노동’이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직접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감할 때까지 철야는 기본이고, 이에 따른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많은 작가들에게는 4대보험이 보장되거나 이에 상응하는 수당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예술인이 ‘1인 기업’이라고 불리지만, 이는 만화가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만화가들은 색칠 등의 업무를 보조하는 ‘어시’(어시스턴트)를 두고 있어 한 편의 만화를 그리는데 2-3명이 함께 일하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사회적/법적으로 예술 활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관련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실정이다. 현 박근혜 정부는 정부 출범 당시 ‘문화융성’을 정부의 주요 과제로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확대와 함께 관련 정책을 개정하거나 도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 창작안전망 구축할 수 있는 실질적 환경이 우선순위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림쟁이들, 할 말 많다!’라는 대담회의 이름에 걸맞게 장장 두 시간동안 네 명의 패널들은 예술계의 열악한 창작환경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였고, 이 상황 속에서 동료작가들이 생존할 수 있는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화려한 붓터치와 디자인의 생산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힘들게 작업한 예술인들이 있었다. 배고픈 예술인이 제작한 작품에서 감상자들은 만족감보다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야하고, 작품이 지속될 수 있는 창작환경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앞으로 예술인들이 밥 먹고 인간다운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예술인소셜유니온을 포함한 여러 단체와 개인들의 고민과 해결의 실천들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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