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연의 문화읽기]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크린을 독점한 영화(21호)

2013년 7월 3일culturalaction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크린을 독점한 영화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개봉 15일 만에 5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스크린 독점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개봉 이후 최단 시간 100만 명 돌파라는 언론의 발 빠른 보도마저 이 영화의 흥행가도에 일조했으니,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극장이 밀어주고, 미디어가 끌어주는 형국이다. 관객들은 극장을 가면 <은밀하게, 위대하게>밖에 볼게 없다는 말을 한다. 영화가 압도적으로 좋아서라기보다는 압도적으로 스크린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홈페이지 통계 자료에 의하면 개봉 첫 주말에 이 영화는 1,341개의 스크린 수를 확보했다. 전국 영화관에 걸린 영화 2개 중 1개 이상이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상영한 셈이다. 스크린 수 2위인 <스타트랙 다크니스>가 607개인 것을 감안하면 이 영화의 독점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만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스크린 수 독점은 영화의 제목대로 은밀하면서 위대하다. 한 영화의 과도한 스크린 독점은 대게 투자-배급의 은밀한 파워에 기인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배급한 쇼박스 미디어플랙스는 국내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투자 배급회사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관객 1000만 명을 넘길 경우 쇼박스 미디어플랙스는 40억 원을 투자해 약 110억 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 배급사가 제작투자까지 하니 해당 영화의 배급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총 제작비가 70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만일 1000만 관객이 들 경우 이 영화가 상영관에서만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대략 800억 원이 된다. 말하자면 10배 이상의 위대한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100억 이상의 위대한 제작비가 든 영화의 경우 그만큼 위대한 수익을 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위대한 스크린 수를 확보해야 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스크린 독점 현상은 단지 앞으로 닥치게 될 더 심각한 독점의 서막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7월 개봉을 기다리는 <미스터 고>는 순제작비 225억 원이 들었고, 8월에 개봉하는 <설국열차>는 430억 원이 들었다. 이 두 거대 영화를 비롯해 올해 개봉을 기다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들 영화가 거대 제작비를 뽑아내려면 최대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려는 전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자본의 논리에 의해 영화상영이 결정되고, 그런 영화상영 지배방식은 결국 영화의 종다양성을 파괴시킬 것이다.
꾸미기_스크린쿼터.jpg
한때 한국의 스크린쿼터는 영화의 종다양성을 지키는 중요한 제도였지만, 지금은 한국영화의 독점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스크린쿼터제는 자국 영화 보호라는 기능을 나름 충실하게 수행하지만, 영화의 종다양성 확보라는 목적에는 온전히 부합하지 않는다. 스크린쿼터제는 자국영화를 보호할 수는 있어도 다양한 영화를 보호할 수는 없다. 이제는 스크린쿼터제가 국적을 넘어, 자본의 독점 논리를 제어하는 이른바 ‘마이너리티쿼터제’로 전환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작 국내 영화 제작사나 배급사는 이 제도를 찬성하지는 않는다. 영화 제작 배급사들은 특정 영화의 과도한 독점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정작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박흥행을 노리는 자신들이 이 제도의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영화제작 배급사들은 이제 대박이 아닌 초대박 영화를 노리고 있다. 1000만이 아니라 2000만 관객을 노리는 것이다. 그럴 경우 영화 스크린 독점은 지금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공생할 수 있도록 과도한 스크린 수 독점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마이너리티쿼터제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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