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나는 왜 또 밀양 희망버스를 탔을까(32호)

2014년 2월 11일culturalaction
[현장스케치]32호
나는 왜 또 밀양 희망버스를 탔을까
김송희
  어릴 적에 나는 떳떳하게 살아가는 게 어려운 일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한 해 한 해 갈수록 그게 참 어려운 일이구나 싶다. 그냥 가만히 내 일상을 사는 것이 떳떳하지 않게 느껴질 때면 나는 뛰어가 촛불도 들고 행진도 하고 희망버스도 탄다. 분노와 부끄러움에 실은 조금의 의심도 섞인 마음이지만 누군가 뜨겁고 단단한 마음으로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라도 얹어 연대하고픈 것이 가장 솔직한 마음이겠다.
  밀양은 내내 농사일로 얼굴이 검게 탄 할매들이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올라 소리치고 우는 모습으로 나를 불렀다. 내가 하는 게 도움이 될까 의심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고작 그 뿐인, 그러나 나에게는 소중한 마음으로 밀양 희망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부터 우중충하던 하늘은 밀양에 도착하자 비까지 뿌렸다. 한명 한명 조류독감 예방 적외선 소독을 마치고 도착한 희망버스를 맞이한 건 길 양편으로 늘어선 형광색 경찰들과 ‘밀양바로세우기 시민운동본부’의 격한 문구가 쓰여진 현수막들. 멸균상태인 우리에게 ‘AI를 몰고오는 병균버스 물러가라’는 표현은 좀 심하지 않냐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지만 내심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밀양 시내는 오래된 건물과 가게들이 올망졸망 늘어선 가운데 큰 강이 흐르는 예쁜 도시였다. 주황색 풍선과 하얀 종이꽃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강물처럼 밀양 시내를 걷는 동안 시민들은 더러 응원도 하고 더러는 뭐하는 거냐고 묻기도 하고 더러는 눈살을 찌푸리고 더러는 길이 막히는 것에 화를 냈다.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밀양시민들은 대부분 송전탑건설을 반대하여 10년째 싸워온 할머니들을 응원할거라고, 적어도 모두 알고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경찰과 차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여진 밀양한전본부 앞에서 비를 맞으며 집회를 하고 다시 걸어서 기차역 앞으로 이동하여 문화제까지 다 마치고 나니 꽤 늦은 밤. 추위와 피로로 지쳐 돌아온 숙소에서 밀양 송전탑 대책위 이계삼 선생님이 그간 밀양 송전탑 싸움의 과정을 간략하게 들려주셨다. 2005년 한전이 <전원개발촉진법>*을 이용해 밀양에 69기의 765kV 송전탑 건설 계획을 확정했을 때에는 관과 민이 하나로 뭉쳐 한전과 싸웠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며 관이 등을 돌리더니 소위 힘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태도를 바꾸고 급기야 마을 사람들마저 갈라진 후 그간 뒤에서 젊은 사람들이 하는대로 응원했던 할매 할배들만 남아 앞으로 나와 싸우게 되었다고 한다.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건 ‘밀양바로세우기 시민운동본부’ 사람들도 전에는 함께 싸웠던 사람들이라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다음날 새벽 밀양의 차고 맑은 공기에 일찍 눈을 뜨고 송전탑이 건설되는 마을별로 나누어 건설현장으로 가보았다. 내가 간 마을은 산등성이를 따라 꼭대기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들이 길을 막아 이리저리 흩어져 길도 없는 산을 오르다보니 가파르고 미끄러워 몸이 저절로 엎드려져 말그대로 개처럼 네발로 기어올라가게 되었다. 언론의 관심이 지금보다 덜하고 용역을 고용해서 주민들을 위협하던 때에 무릎이 아픈 할매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아보려고 가파른 산을 올라가면 용역들이 그 위에서 할매들을 향해 개를 부르듯이 쯧쯧쯧~ 혀를 차기도 했다던 이계삼 선생님의 지난밤 이야기가 생각났다. 할매 할배들이 자식같고 손주같은 젊은이들에게 부딪히고 이리저리 떼밀리고 기가 막히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을까. 산꼭대기까지 어렵게 올랐지만 철조망과 경찰들의 방어로 결국 현장까지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여기 저기 흩어져서 마무리 집회를 하고 내려오는 길, 머리는 어지럽고 다리는 힘이 풀려서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힘에 부치는 일이라 할매 할배들은 여기까지는 와보지 못하고 마을 입구에서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막느라 매일 싸우고 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울산 신고리 원전에서 서울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세워지는 초고압 송전탑’. 송전탑을 땅에 묻을 수도 있고 수를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전에 한전이 공사 강행의 이유로 내세우는 전력난은, 전력 사용을 효율적으로 조절하거나 원가보다 싸게 공급되어 결국은 국민이 부담하게 되는 기업의 전기세 할인 혜택을 줄이면 해결된다. 애초에 원전만 포기하면 이 모든 싸움이 끝날 수 있다. 희망버스 마무리 기자회견 중 아들이 뇌성마비 장애인인 한 아주머니께서는 당신의 부모님이 히로시마 폭발 당시 근방에 살았고 이후 그들의 세딸들이 낳은 자녀 중 아들들이 대부분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셨다. 전세계에 충격을 주고 끝나지 않을 방사능 공포를 일상으로 가져온 후쿠시마 사고에도 아랑곳 않고 정부는 원전을 늘이겠다고 발표했다. 도대체 왜?
  지난해 5월 한국전력 변준연 부사장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원전을 수주할 때 신고리 3호기가 모델이 되었기 때문에, 신고리 3호기를 가동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되므로 밀양에 송전탑이 세워져야한다고 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은 한전이 주장하는 전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원전 상품 모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어떠한 공통된 가치도 합의된 필요성 때문도 아닌 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면 너무 식상해서 이제는 흥밋거리도 되지 않을 일일까? 하지만 이런 일들이 곳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면, 무엇보다 그것에는 우리의 일상에도 책임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 집 앞에 내 밭에 부당하고 쓸데없는 거대한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도 문제지만 돈에 눈 먼 원전 확대 문제가 그 원인이고 좀 더 근본적으로 가자면 무절제한 전기낭비가 핵심적인 문제이다. 일상에서는 의식있는 개개인들이 전기를 아끼는 것부터 시작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부조리한 구조들이 있다.
  산을 내려와 늦은 아침을 먹으며 만난 동네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나는 그저 식사 거르지 마시고 건강하셔야한다고 조그맣게 말하고는 멀찌감치 떨어져 서있다가 마을을 떠났다. 달려오긴 했지만 막상 어떤 힘이 될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이렇게 한번 왔다 가는 것이 죄송해서. 늘 드는 의심과 자괴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무기력에서 비롯한 무관심이나 냉소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구조를 세우는 것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은 의식있는 개인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다.
  밀양으로 가자.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몸이 아파 가파른 산에는 오르지 못하고 다만 조금이라도 공사를 늦추려고 매일 새벽과 점심때 마을 입구에 앉아 고작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 무기인 할매 할배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도록. 그저 와주는 것이 가장 고맙다는, 외롭고 힘든 싸움에 지친 할매 할배들의 손을 잡고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듣자.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skym-쌍용 강정 용산 밀양 그리고 그 외에 많은 곳들.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이 현재진행중인 시대에서 어떻게 하면 손잡고 함께 살 수 있을지. 또 한번 숟가락 얹는 심정으로 밀양 희망버스를 타고 다녀오는 길, ‘자신의 장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 지속성을 갖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연대라는 것을 알기에 또다시 의심과 자책이 마음을 누른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만으로도 긍지를 얻을 수 있을까? 그 숟가락의 무게만큼이라도 세상이 변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는 변화하고 있을까?
이걸로 어떤 도움이 될까 또다시 괴롭지만 의심만 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씩.
*<전원개발촉진법>
1979년, 박정희 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법으로 전원사업(발전, 송전탑 등)으로 지정되면 사업자는 19개 법률에 규정된 규제를 피할 수 있으며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다. 평생 살던 깁과 논밭, 선산마저 한전의 소유가 되어도 거부할 방법이 없다.
** 참고: 한겨레, ‘밀양 송전탑 공사, UAE 원전수출 때문? 2015년 신고리3호 미가동땐 보상금내야’, 2013년 5월 24일자
***하승우, [아나키즘], 책세상, 2008, 119쪽. “다른 사람의 손을 잡는 것은 그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서로를 보살피고 연대하는 것은 상대를 동정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보살핌이 동정으로 변할 경우 그 보살핌은 서로의 차이를 북돋우고 함께 성장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도움만 줘서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를 ‘위한다’는 건 동정이 아니라 그를 위해 자신의 장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고, 타자가 스스로 일어나 싸워 모순을 제거할 때까지 자신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내 삶을 긍정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이끌어 가며 내가 속한 공간에서 같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할 자세를 갖춘 삶, 아나키즘이 지향하는 연대는 바로 그런 것이다.”
본 내용은 밀양 송전탑 건설을 통해 본 ‘전력난의 진실’을 알리고자 <나눔문화>에서 제작해 자발적 후원을 받아 무료로 나눠주는 작은 책자를 참고했습니다. 소책자 신청 및 문의 : 나눔문화 02-734-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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