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연의 문화읽기] ‘아청법’과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 (31호)

2014년 1월 9일culturalaction
[이동연의 문화읽기]31호
‘아청법’과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난주에 오픈넷과 국회 유승희 의원실에서 공동주최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관련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했다. 토론회의 주된 취지는 현행 법률안 중에서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정의와 법률 위반의 범위, 그리고 처벌 기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청소년 성범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이 법의 취지와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토론회 내내 발제자들이 문제제기 했던 정의 상 문제점과 과도한 규제 및 처벌 규정들은 진정한 청소년보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자리였다.
아청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대한 정의이다. 현행 법률안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란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 여기서 제4호에 해당되는 것은 1) 성교 행위, 2) 구강·항문 등 신체의 일부나 도구를 이용한 유사 성교 행위, 3)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노출하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4) 자위행위이다.
일견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지만, 이 정의 조항조차도 사실, 많은 논쟁과 문제제기 끝에 개정된 것이다. 원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정의는 아동 청소년이 등장하는 것에 한정했는데, 2011년 일부 개정안에는 “아동 청소년 또는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로 개정되어, 규제의 대상을 대단히 모호하고 포괄적으로 정의했다.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란 말이 법의 정의로 사용가능한 지 의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으로 이 정의는 2012년 12월 18일에 “명백하게 인식될수 있는”으로 개정되었는데, 이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현행 법률상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정의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 가상 표현물이 재현되거나,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등장해도 청소년들로 연상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면 모두 처벌받게 되어 있다. 가령 실물이 아닌 청소년의 얼굴로 보이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도 처벌이 가능하고, 성인이 중고생 교복을 입고 성행위를 하는 장면이 나온 경우도 처벌받게 된다.
또한 아청법 17조에 따르면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거나 발견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즉시 삭제하고, 전송을 방지 또는 중단하는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 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이 처벌을 대상은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하고 대량 유통시킨 서비스 업체만이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아동 청소년 관련 음란물을 소지하거나 전송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처벌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 11조 처벌조항을 보면 “1)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2) 영리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판매·대여·배포·제공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소지·운반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3)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배포·제공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 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4)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할 것이라는 정황을 알면서 아동·청소년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제작자에게 알선한 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5)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 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처벌 수위가 대단히 과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동, 청소년을 등장시켜 노골적으로 음란물을 제작하는 업자의 경우에는 과중한 처벌을 면키 어렵겠지만, 배포, 전시만으로도 7년 이하의 징역을 받거나, 단순 소지로도 1년 이하의 징역을 받는 것은 과도한 처벌일 뿐 아니라,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 이런 과도한 법 규정이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무리한 법 적용과 강력한 처벌 조항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법이 정치와 사회의 과잉효과를 생산하는 결과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법학자는 아니지만, 법은 정치와 사회를 조절하고 객관화하려는 논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어떤 정치적 이견이 생기거나 사회적 논란이 발생할 때, 법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러한 정치적 이견과 사회적 논란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논리적으로 규제하는 어떤 기본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법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조절하는 합리적 규제의 바로미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특히 규제와 관련된 한국의 법제정의 논리는 정치적 이념과, 사회적 논란을 과잉되게 반영하려는 주관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청소년보호와 관련된 법이다. 청소년호보법, 아청법, 청소년 게임셧다운제, 게임중독법 모두 청소년과 관련된 반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 제정된 것들로, 모두 과잉된 정치적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객관성이 결여된 근거와 통계자료와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일방적인 여론몰이를 통해 다른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과도한 규제와 처벌 조항을 만든다. 예컨대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제작, 배포, 소지를 처벌하는 이유가 이 음란물을 볼 경우 청소년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단지 유발할 수 있다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성범죄자와 같은 차원에서 처벌한다는 것은 법의 과잉금지의 원칙을 벗어나 과잉적용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가정, 유추, 가능성의 이유만으로 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면, 세상에 처벌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얼마나 있을까?
바로 이러한 법 제정의 과잉된 정치 효과가 청소년 성범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국회의원, 시민단체들은 청소년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무조건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담은 법을 만들어서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을 만들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청소년보호법, 아청법이 만들어 진 1997년과 2000년 이래 청소년 관련 사회문제들은 훨씬 더 급증했다. 법이 당초 사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이 되기보다는 정치적 체스추어, 감정적 증오심의 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정의와 법 적용, 과도한 규제 논리가 등장하여 특히 문화적 표현물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정당화하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청소년 게임셧다운제, 게임중독법 발의안도 모두 이 과잉된 정치 논리에 따른 것이다.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는 청소년을 보호의 궁극의 목적보다는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정치적 논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강력하고 배타적인 권력관계를 생산한다. 이른바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에 기반 한 권력은 보수정치권력과 보수 시민단체, 보수 종교단체들의 만들어 낸 삼각동맹의 관계이다. 이들은 청소년과 관련 문제들의 진정한 대안이 청소년의 인권에 기반 한다는 관점보다는 그들을 자신들이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바라보며,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청소년보호 권력의 작용지점이 되고 이익을 위한 분파적 투쟁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최근 게임중독법의 이해관계에 관여하는 ‘한국중독정신의학회’와 보수적인 청소년보호단체,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보수 기독교계와 그들과 연계된 정치인들의 동맹은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를 하나의 권력의 장으로 간주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청소년보호법, 아청법, 게임중독법은 권력관계를 재생산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청소년 관련 사회적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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