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사유하기] 한양대 체조부 폐지 논란이 남긴 것 (31호)

2014년 1월 9일culturalaction

[스포츠로 사유하기] 31호

한양대 체조부 폐지 논란이 남긴 것
정재영
‘모든 것의 상품화’, 즉 자본주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인간, 사랑, 우정과 같은 내면적인 것에서부터 최근 회자되고 있는 공공기반시설·의료제도 등의 다중을 위한 공공재까지 자본의 포화는 전 영역에 걸쳐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희한하리만큼 여기서 제외되는 분야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남긴 위대한 유산들이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미술 작품을 천문학적 재정으로 보존하는 것에 별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고대 철학자가 조그마한 종이에 남긴 정신의 흔적을 박물관의 잘 갖춰진 환경 아래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이는 인간 자신의 역사에 대한 존경이며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역사로 따지면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는 인간이란 피조물이 생성됐던 시기부터 시작된 인간 고유의 문화다. 뛰고, 던지고, 쏘는 (생존을 위한) 격한 행위는 육상과 사격으로 변모되었으며, 사냥이라는 목적이 배재된 순수한 놀이 행위는 각양각색의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역사에 속하는 신체의 유물과도 같은 존재다. 이를 보존하고 가꾸어나가는 것은 미술과 철학, 다시 말해 그토록 존중해마지 않는 인문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이러한 스포츠의 가치는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가 지난 12월 10일 벌어진, 한양대 체조부 폐지 논란이다. 한양대학교는 1965년부터 운영하고 있던  체조부(유도, 육상 포함)의 신입생을 받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고, 이는 곧 체조부의 역사가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체조부를 포함한 스포츠인들은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 체조부를 운영하고 있는 대학이 5개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체조의 저변이 약화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경악할만한 지점은 한양대 체육위원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폐지의 이유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 말이다. “대학이 운동부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어 번복이 쉽지 않을 것”
여기서 ‘경쟁력’이란 무엇인가? 결국 ‘돈’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 앞에서 역사와 가치 따위는 휴지조각이 된다. ‘운동부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체조부가 더 이상 학교의 명예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다시 말해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재정만 축내는 골칫거리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경쟁력 앞에서 48년의 전통은 무색했다. 학생과 학부모와 코치진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일방적인 결정을 내릴 정도였다. ‘체조부를 살려주세요’라는, 어쩌면 굴종적이기까지 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스포츠는 힘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스포츠팬들의 여론과 스포츠인들의 반발 덕에 다행스럽게도 한양대 체조부 폐지는 없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체조부에 대한 전액장학금 지원이 사라진 것과, 기숙사 무료지원 중단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이는 체조와 유도, 육상과 같은 기초 종목이 앞으로 설자리를 잃어간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대학 재정을 핑계로 스포츠부를 축소한 대학이 어디 한양대뿐이겠는가? 경쟁력으로 스포츠가 판단되는 지금이 미래까지 연장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한양대 체조부 폐지 논란은 대학스포츠, 나아가 한국 스포츠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깊게 살펴볼 일이다. 한국은 언제나 구조조정 1순위로 스포츠를 꼽는다. 그것은 스포츠의 역사적 가치나 상징성을 도외시하고 자본의 논리로만 스포츠를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나 그랬듯 재정을 이유로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마치 부도 위기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처럼, 스포츠인들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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