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거꾸로 가는 독립영화 정책을 근심하다!(67호)
2015년 하반기 한국영화는 <암살>과 <베테랑>이 나란히 천만을 돌파, 상반기 외화에 밀렸던 부진한 성적을 만회하는 분위기다. 지난해보다는 하락하였지만, 7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상반기 한국영화결산발표에 의하면 한국영화는 점유율 42.5%를 보인다. 하반기 기대작들이 점유율을 더욱 높을 것을 기대하는 전망이다. 이와 같은 통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에 대한 근심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암살>과 <베테랑> 역시 스크린 독과점을 바탕에 둔 결과이며, 대기업 투자자본의 지위가 절대 우위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또 다른 이면인 독립영화의 사정은 어떠할까? 영진위가 발표한 같은 통계에 따르면, 다양성영화라는 범주 내에서 눈에 띄는 한국 독립영화는 극히 소수다. 이 중 <소셜포비아>,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은 대기업 브랜드의 배급작이라는 논쟁 가운데에 있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역시 엄밀하게 상업영화가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받았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위로공단>이 선전을 보여주고 있지만, 2015년 현재 독립영화 환경에 대한 그늘은 깊다.
2014년 최민희 의원은 한국영화의 다양성 증진과 관객 문화향유권 보장을 위해 멀티플렉스에 의무적으로 마이너쿼터를 적용하는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독립영화 마이너쿼터는 2006년 <괴물> 스크린독과점 이후 본격화되었고, 당시 한미FTA 통상압력으로 스크린쿼터(한국영화의무상영제) 축소 정책이 관철되며 정부 측이 내세운 논리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의 산업적 경쟁력이 형성되었으니, 이제 영화의 다양성을 확대하자는 것, 이것이 독립영화 배급운동과 결합하여, 환경 변화를 촉진하였다.
문화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독립영화에 대한 배려와 정책적 증진은 지금 정부에서도 논리적으로 부정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 중 하나가 지역독립영화관의 활성화였음을 기억하는가? 그러나 약속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현실엔 깃발만 휘날린다. 독립영화 지원책은 때때로 수사적으로 활용될 뿐, 실상은 독립영화에 대한 의도적인 배제, 노골적인 탄압이 횡행하고 있다. 드러내놓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 부끄러운지 이유는 엉뚱한 것을 댄다.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은 1998년 한국독립영화협회 설립 후 꾸준히 제기되었다. 2003년 참여정부의 한국영화진흥종합계획에 독립영화전용관 확보 지원이 명시되었고, 민간과 정책당국의 협력을 통해 2007년 11월 8일 마침내 국내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되었다. 전용관 설립은 전문 독립영화 배급사의 확대로 이어졌고, 감독들은 개봉이라는 경험을 통해 창작에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인디스페이스는 채 2년을 못 마치고 2009년 12월 31일 휴관하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이후 영진위)의 일방적인 사업 공모,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위탁단체 선정, 이어진 영화인들은 극장 보이콧 운동까지. 위탁 운영 1년 동안 그동안 일구었던 성과들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뜨거운 홍역을 치룬 영진위가 수습책으로 내놓은 카드는 직접 운영이었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 말기였던 터라, 망가졌던 독립영화 지원 정책을 회복해야 한다는 기운으로 말미암아, 독립영화계에 이를 일정정도 수용하면서 직영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가 2011년 개관하였다. 영진위는 인디플러스 외에도 성북문화재단의 아리랑시네센터와 한국영상자료원 등에 예산을 배분함으로써 독립영화 상영 권역을 확대하기도 하였다. 한때 영진위의 직영 사업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그러나 정부 비판적인 특정 영화들의 상영문제로 갈등은 다시금 촉발되었다.
독립영화전용관을 비롯하여 극장 상영엔 논란이 되었던 작품은 대표적으로 <잼 다큐 강정>, <다이빙벨>,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등이다. 2011년 제주 강정 해군기지 싸움을 다룬 <잼 다큐 강정>에 대해 영진위는 당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인디플러스 운영위원회와 독립영화인들이 반발하자 뒤늦게 상영을 허락하였다. 영진위는 이후 프로그래머를 계약 해지 하면서 불신을 자초했다. 2014년 개봉한 <다이빙벨>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불편해 했던 부산시와 갈등을 일으켰고, 상영원칙을 지켰던 영화제 측은 20주년을 맞는 2015년 국고 예산의 절반을 삭감 당했다. 인디플러스의 프로그램 위탁을 맡았던 인디스페이스는 <다이빙벨>의 상영을 두고 영진위와 공방을 벌였지만, 끝내 인디플러스에 상영은 허락되지 않았다. 2015년 영진위는 인디스페이스와의 프로그램 위탁을 해지하였고, 소액의 지원금도 철회하였다.
영화계의 다음 쨉은 아마도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 될 것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두 차례의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던 영화는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뒤늦게 개봉 가능한 등급을 부여받았다. 2015년 9월 10일 영화가 개봉하기 까지 무려 5년이 소요되었다. 대법원에서 제한상영가 취소 판정을 받고, 재심의 전 기획상영을 하는 과정에서 영진위는 심의면제추천 규정의 수정까지 들먹이기도 하였다. 기가 막힌 것은 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은밀하게 감추어져 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향유하고 문화 이면엔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영진위는 그동안 독립영화의 주요한 인프라였던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을 폐기하고,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으로 변경할 뜻을 밝혔다. 물론 영화계의 반발을 샀다. 년간 24편의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좌석지원금을 주겠다는 정책은 언뜻 이전 사업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에 대한 통제력을 높임으로써 특정 독립영화를 배제하겠다는 의도이다. 더불어 극장의 프로그램 자율권을 침해하겠다는 발상이다. 해당 사업은 위탁 사업자 선정이 원활치 않은 관계로 아직 시행은 되지 않고 있지만, 사업 시행 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 명약관화하다.
정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독립영화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는 동안, 독립영화계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2012년 5월 18일 강원지역에 민간의 힘으로 강릉독립예술전용관 신영 설립되었고, 2012년 5월 29일 광화문에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대대적인 캠페인을 거쳐 재개관 하였다. 2015년 2월 11일 대구에서도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이 출발했다.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철회로 한때 폐관을 결정했던 대구 동성아트홀은 지역 독지가의 후원으로 2015년 9월 4일부터 리뉴얼 오픈하였다. 거꾸로 가는 독립영화 정책 하에 더욱 빛나는 불씨들이다.
사진 출처 : 서울아트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