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사네 TV보기]TV 보기 힘들다! 왜일까?(30호)

2013년 12월 4일culturalaction
[박여사네 TV보기]30호
TV 보기 힘들다! 왜일까?
박은정
이 글 쓰기 위해서 뭐라도 봐야하는데 집중해서 본 드라마가 없다. 얼마 전 종영한 kbs <비밀>은 드라마 잘 보지 않던 동생이 하루 종일 다시보기하며 볼 정도로 재미있고, 통속적이지만 뻔하지 않는 긴장감으로 전통멜로드라마의 성과를 냈다며 10아시아 기자에게 호평 받았지만, 매 회마다 울고 지쳐있는 황정음을 보는 것은 힘들었다.
 지금 ‘나 너 좋아하니?’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인 sbs <상속자들>은 볼 수 있지 않을까했지만, 오~오~오~ love is the monent! 격정멜로음악과 함께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빠지는 이 드라마, 멜로 감성은 순간 먹먹하게 다가오지만, 명문사립귀족고등하교에서 벌어지는 잔인함은 보기 싫다. jtbc <썰전>에서 드라마 흥행 3대 작가로 김수현, 임성한, 김은숙 작가를 뽑았다. 즐겨봤던 드라마 작가 중의 하나였던 김은숙 작가가 김수현·임성한과 같은 대열에 오르면서 내가 포용할 수 있는 드라마의 영역에서 멀어지게 된 것 아닌가싶다.
 tvn <응답하라 1994>는 ‘응사앓이’라는 수식어답게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다. 90년대 주옥같은 노래가 들리고, 심은하 눈이 초록색으로 변했던 공포드라마 <M>의 난데없는 등장은 정말 반가웠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뛰어난 능력으로 학벌과 부를 겸비했고, 언제나 풍성한 하숙집 식탁과 큰 걱정거리 없는 달달한 즐거움이 깨알같이 쏟아지는 이 드라마, 솔직히 부럽고 내 일 같지 않아서 보기 힘들다. 차라리 예능프로 글을 쓰자며 mbc <무한도전>을 비롯한 요즘 인기 있는 프로들을 봤다. 하나같이 매력 있어 흥미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요거다하고 딱 하나 끄집어낼 수 없었다.
왜 tv에 집중을 못할까? 고민과 함께 마감의 압박감으로 마음 동동 굴릴 때 씨네 21 tview 최지은 기자의 칼럼과 jtbc <마녀사냥>으로 이번 글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tv 칼럼니스트 최지은 기자는 직업상 보기 싫은 드라마를 억지로 봐야 하는 고충을 토로했다. 그 중 임성한 작가의 mbc <오로라 공주>를 보는 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한다. 끝까지 보기 위해 친구들 카톡방에 실시간 중계하면서 견뎌낸 기자는 왜 <오로라 공주>가 높은 시청률로 수십 회 연장 방송하며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러한 의문은 tv 기자들의 공통된 의문이었다. 몇 몇 기자들이 나름 비평했으나 최지은 기자가 성실하게 고민하며 예리하게 잘 잡아냈다. 그것은 ‘속물성’, 일상의 속된 욕망과 뒷담화을 걸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라마에 옮겼기 때문에 <오로라공주>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맞다 임성한 작가의 인물들은, 단아한 여주인공이라 할지라도 머릿속에 이 계산 저 계산이 구체적으로 있었다. 기자는 이 해석의 실마리를 중장년층 주부 모임으로 가득 찬 관광명소의 인근 카페에서 얻었다.
 <마녀사냥>은 신동엽·하지웅·성시경·샘 해밀턴 네 명의 MC가 시청자의 연애상담을 남자들의 거친 입담으로 농도 짙게 이야기한다. 여기에 객원MC 곽정은·한혜진·홍석천 등 여성과 게이의 시선이 다각도로 더해지면서, 이들이 주고받는 sex와 연애에 대한 대화는 풍부하고 유쾌하며 훈훈하기까지 하다. 스튜디오 MC들과 길거리 시청자가 즉석에서 질문을 주고받는 이원생중계 코너에서 인상 깊은 장면 하나 소개하겠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한 남성이 질문했다. 전 여자 친구 생일이 다가오는데 선물을 집 앞에 갖다 줘도 될까요? 질문이 체 끝나기도 전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지마요! 하지마요! 스튜디오 MC들도 애틋하게 바라보며 하지말라했다. 순간 질문자는 울컥했지만 주변의 애틋한 시선과 유쾌함에 기운차렸고, MC가 지금 뭐하냐 물어보니 좀 있으면 군대 간다했다. 그러자 빨리 군대가세요! 라며 쿨하게 조언해줬다. 미련의 아쉬움을 순간 애틋·유쾌·쿨함으로 반응해주는 이 장면이 훈훈했다.
 최지은 칼럼과 <마녀사냥>이 연결되면서 요즘 내가 왜 tv 보기를 힘들어했는지 알았다. 그 이유는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다. 함께 얘기하며 공감할 사람이 없어서다. 미쳐버릴 정도로 보기 힘든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게 해준 힘은 친구들과의 카톡이었고, 드라마 인기에 대한 풀리지 않던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준 것은 카페 주부들의 수다였다. 여러 예능프로 중에서도 <마녀사냥>의 이원생중계에 맘이 간 건 여러 사람들의 공감 교류로 인한 훈훈함에 마음이 간 것이다.
‘박여사네 tv보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집 tv 앞 풍경은 한 상 거하게 차려놓은 밥상머리에서 또는 소파와 바닥에 널 부러져 여자 넷이 tv보며 수다 떠는 것이었다. 자연히 드라마 잘 보지 않던 친구는 드라마를 보고, 예능 잘 보지 않던 친구는 예능을 보게 된다. 서로가 주거니 받거니 웃고, 울고, 분노 하며 대화는 tv를 벗어나 여러 가지로 뻗어갔다. 요즘같이 이어폰 꼽고 혼자서 tv 동영상 보는 흐름에서, 거실 앞 tv의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장점을 알아가며 이 글을 시작했었다. 그러나 요 몇 달 서로가 바빠지면서 거실 앞 tv에 모이는 횟수가 절대적으로 줄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도 혼자서 tv 보면 끝까지 보는 힘이 약해지고, 생각할 여지도 많이 줄고, 즐거움도 확 줄어져버린다. 그저 리모컨 돌리며 뭐 재밌는 거 없나? 훑어보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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