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너지를 요구하는 사회/권경우(창간호)

2012년 9월 19일culturalaction

[칼럼]창간호

에너지를 요구하는 사회

 

권경우(문화평론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사회적으로 ‘에너지 음료’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사람들은 항상 지쳐 있고, 그들에게 에너지 음료는 힘과 위로를 제공한다. 한국인들에게 ‘에너지 음료’라고 하면 ‘박카스’와 ‘비타500’이 떠오를 것이다. 지친 어깨를 다독이고 힘든 노동을 견디게 하는 이미지로서 ‘박카스’와 수년 전부터 박카스와 맞서고 있는 ‘비타500’. 하지만 최근 에너지 음료는 부동의 1위 ‘박카스’의 아성을 넘어섰고, 심지어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커피판매량도 깼다고 한다.

이들 음료는 몸의 기운을 일시적으로 북돋아주는 ‘자양강장제’의 일종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에너지 음료’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팔리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강한 녀석들’이다. 2011년 8월 에너지음료 분야 세계 1위인 ‘레드불’이 수입되면서 시장규모는 불과 1년 사이에 300% 이상 성장했으며, 현재 국내 시장은 약 300억원 수준이다. 전세계 에너지음료 시장은 약 15조원 규모이며, 매년 10%대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음료의 주요소비계층은 수험생, 직장인, 운전자, 골프·헬스·등산 등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청소년 및 대학생 등 젊은층은 에너지 음료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옥과 같은 입시경쟁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에너지 음료’는 아주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대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학업과 알바, 취업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버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들에게도 끊임없이 깨어있도록 하는 ‘각성제’가 필요하다. 이들 젊은층들은 에너지 음료만으로 부족해서인지 이온 음료를 섞어서 ‘붕붕 드링크’라는 것을 제조한다. 홍대나이 태원, 강남 등 클럽 공간에서는 에너지 음료와 술을 뒤섞은 신종 폭탄주가 유행하고 있다. 갈수록 강력한 것들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토록 에너지음료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에너지 음료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같은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방식으로 직접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기계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자동차에 주유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치고 힘이 들 때 이것을 마시고 깨어나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우리가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핍이 아니라 과잉. 음식이나 의상, 자동차 등 일상을 지배하는 모든 것들이 흘러 넘친다. 대부분의 주거공간 역시 필요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과잉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과잉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즉 많은 소비를 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형국이다.

결국 그러한 과잉 상태는 ‘성과사회’라는 특징으로 드러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에서 21세기 사회를 가리켜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옮겨갔다고 본다. 성과사회는 성과주체, 즉 자기계발적 주체를 요구한다. 이 주체의 특징은 ‘과잉 긍정성’이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순간 ‘해야 한다’는 목표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생산을 해야 하는, 즉 성과를 추구해야 하는 존재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인간은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들은 실패자나 낙오자, 즉 ‘루저’가 된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자기계발’의 형식은 개인들을 ‘성과사회’에 어울리는 주체로 변화시키는 기제이다. 이들 주체는 과도한 경쟁과 과잉 생산을 위한 과잉 행동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힘과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에너지 음료는 바로 이 부분에서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무위의 즐거움을 갖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깨어있도록 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경쟁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사람들은 편안하게 잠들거나 쉬지 못한다. 정작 자신이 왜 깨어있는지조차 모르면서 말이다. 에너지 음료는 그러한 성과주체, 자기계발 주체에게는 없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 음료 판매가 급증하는 것과 마약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같은 사회적 맥락을 갖는다. 결국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 즉 약물이나 음료의 힘을 빌어 살아가고 있다. 건강한 식사와 운동, 규칙적인 생활이 자신의 삶을 지켜준다는 평범한 진리가 어느 새 우리가 찾아 되새겨야 하는 소중한 가르침이 되고 있는 사회가 되었다. 에너지 음료에 자신을 내맡기는 시대.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정말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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