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이의 야옹야옹]2013년 11월 30일, 연남동으로 이사한 문화연대 사무실에서.(30호)

2013년 12월 4일culturalaction
[미경이의 야옹야옹] 30호
2013년 11월 30일, 
연남동으로 이사한 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최미경(문화연대 활동가)
문화연대가 공덕동에서 연남동으로 이사를 했다. 공덕동이 법원과 은행들로 구성되어 있는 사무적 공간이었다면, 연남동은 작은 가게(특히 초밥집이 많다), 게스트 하우스, 맛집, 화교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다. 문화연대 사무실이 방과 옥상이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그런지 예전과는 다른 것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예를 들어, 밥을 함께 해먹고 싶다든지, 봄이 되면 옥상에서 커뮤니티 파티를 열어야지, 옥상에서 텃밭을 해볼까 등등. 공간이 일상을 바꾸는 힘이 크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있다.
연남동으로 이사한 후 사는 집과 사무실이 가까워지면서 출근 퇴근을 도보로 하고 있다. 약 30분간의 이 시간이 또 하나를 변화시켰는데,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음악을 들으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그동안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핸드폰만 쳐다보다 시간을 보냈었다. 메일을 체크하고, 미디어에 쏟아지는 정보를 보는 등, 외부의 것들을 체크하는데 시간을 보냈는데, 걸으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나보니 내면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물론 내면에 집중하다보니, 쓸데없는 질문을 하게 되는 시간이 더욱 늘었다. 난 무엇을 하고 있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등등. 약 십년 전 캐리어 하나 달랑 들고 서울에 올라왔던 불안감보다 더욱 큰 불안을 가득 안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불안해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요즘 동네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려 하고 있다. ‘연남동’이라는 공간에서 외부의 공급에만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비롯하여 연남동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야할 텐데, 연남동은 어떤 곳일까? 연남동(연희동의 남쪽)은 서대문구 연희동에 화교 학교가 있어서 주민의 5분의 1이 중국인이다. 주변에 홍대가 있고, 공항철도가 연결되어 있어 게스트하우스도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카페도 늘어나고 있다. 홍대의 상업적이고 번잡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연남동에 자리를 잡은 작은 공간들도 있고, 경의선 폐선부지와 연결되어 있어 차츰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리라 예상된다.(물론 숲길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있으니 어떻게 변화할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건물로 된 시장인 동진시장도 폐업상태에서 다양한 상상력으로 재생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때 중요한건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이 아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있고, 서로의 역량을 교류하며 협업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자신이 어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임을 확인했을 때, 자신을 존중하고 삶을 사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013년 남은 한 달은 연남동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동진시장에도 가보고, 연남동의 짜장면 없는 중국식당인 화교인이 운영하는 식당에도 가보고, 문화연대 건물 1층 그린마트 주인아줌마의 삶도 들어보고. 그러다보면 내년 계획이 매번 반복되는 짜증나는 일정으로서가 아니라 무언가 살아있는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올해 진행한 프로젝트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가 걱정이긴 하다. 왜 우리에겐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고장 난 집을 고치고, 추운 날씨에 얼어 죽어가는 식물을 돌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걸까.
여하튼 외부에서 주입하고 이식하는 것이 아닌 자생적인 문화를 위해서는 무언가를 자꾸 만드는 게 아니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요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래서인지 마포지역에 있는 가제트 공방에서 진행하고 있는 문화바텐더 프로그램도 “들어주는” 바텐더를 구성하여 진행하고 있고, 마포 민중의집 할머니 밥상에 참여한 할머니들도 “여기 오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좋다”는 얘기를 하셨다. 이제는 어떤 그럴싸한 기획과 화려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게 아니라 들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래서 나를 외부에서 주입된 평가기준으로 재단하며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 연남동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다. 다음엔 더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이야기로 당신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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