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마음]지옥에서의 봄날, 웹툰이 재현하는 청년들의 현실인식(68호)

2015년 10월 16일culturalaction
[웹툰의 마음]68호
지옥에서의 봄날, 웹툰이 재현하는 청년들의 현실인식 
박범기/문화사회연구소
헬조선의 마음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담론이라는 것은 한때의 유행이고, 유행하는 담론은 항상 과잉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과잉된 담론은 쉽게 접할 수 있다. 헬조선은 최근에 가장 과잉된 담론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지나치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감하지 않은 이상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헬조선이 단순히 한 때 유행하는 담론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헬조선은 담론인 동시에 현상인데, 무엇보다 이 말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말이다.
담론이자 현상으로서의 헬조선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면 밤을 새서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헬조선에 대해 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나는 <멀리서 보면 푸른 봄> 이라는 웹툰에 대해 말하면서, 이 웹툰이 담론이자 현상으로서의 헬조선에 대해 주는 몇 가지 시사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런저런 글을 통해 말해왔듯이, 나는 웹툰이 다른 어떤 매체보다 동시대 대중들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웹툰은 어떤 매체보다도 대중들의 반응과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웹툰에서 드러나는 정서를 통해서 오늘날의 동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담론이자 현상으로서의 헬조선은 최근의 유행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서는 이전부터 있어 왔기 때문이며, 이러한 정서는 여러 웹툰에서 이미 충분히 재현된 바 있다. 이 글에서 나는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라는 웹툰을 통해 헬조선 정서의 단면을 엿보려 한다.
계급간의 갈등, 그리고 갈등의 통합
이 웹툰은 무엇보다 인물들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 웹툰의 인물들 중 흥미로운 인물은 주인공인 남수현과 여준이다. 이 두 인물들의 차이와 그것에서 비롯하는 갈등과 갈등의 통합이 이 웹툰의 주된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웹툰을 이해하는데 있어 이 두 인물들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남수현과 여준은 자라온 배경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 인물들이다. 남수현은 “뭐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새끼” (3화) 로, 25살의 대학생이다. 남수현은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범인 검거 중에 사고사를 당해 어머니의 손에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자라왔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고,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장학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 인물이다. 남수현은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악조건들을 어떻게든 극복해 내려 애쓴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말하자면, ‘노오력’ 하는 ‘흙수저’이자, N포 세대라 호명되는 다수의 청년세대에 대한 전형적인 표상이라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여준은 전형적인 ‘금수저’이다. 여준의 아버지는 대기업 전무이다. 이 때문에 여준은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자라왔으며, 현재도 경제적으로 풍족하다. 여준은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20평짜리 고급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부족한 것 없이 생활한다. 여기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이 둘은 서로 다른 계급이다.
<시즌 1, 7화. 서로 다른 계급적 위치에서 오는 갈등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이 웹툰은 이 둘이 서로 다른 계급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극명한 대비를 자주 사용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로의 관계를 이어 나간다. 하지만 이들의 계급적 차이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자주 충돌한다. 이 웹툰은 크게 보면 시즌 1과 시즌 2로 나눌 수 있는데, 시즌 1은 남수현과 여준이 서로를 받아들여 한 집에 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가 드러나고,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들이 시즌 1의 주된 내용이다. 시즌 1의 6화의 에피소드는 이들의 갈등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수현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 가져온 유통기한이 지난 샌드위치를 먹으려 한다. 이때 여준은 샌드위치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샌드위치를 버린다. 여준은 남수현을 위해 샌드위치를 버린 것이지만, 남수현은 여준이 샌드위치를 버렸다는 것에 대해 화를 낸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이 둘의 계급적 차이에서 비롯한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시즌 1, 6화>
시즌 2는 이 둘이 같은 집에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다룬다. 서로 다른 차이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시즌 2의 주된 내용이다. 일종의 유사가족 만들기 서사인데, 이 과정을 통해 이들의 계급 차이는 불완전하게나마 통합된다. 하지만 이 통합은 일시적인 통합에 불과하다. 둘 모두 이 관계가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관계가 끝날 것을 전제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해 있는 이 둘이 불완전하게나마 통합된 모습을 보이는 점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환상에 가까운 설정이다.
이 웹툰은 프롤로그에서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보면 비극이다” 라는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각각의 개개인이 먼 거리에서 보면 부족할 것 없고, 부러워 하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고통과 저마다의 아픔을 갖고 살아간다고 웹툰은 말한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 각자의 고통이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계급을 가진 남수현과 여준은 각자의 내밀한 고통에 대해 서로의 방식으로 공감하면서 서로를 받아들인다.
이 점은 서로 다른 계급이라도 동일한 세대로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고,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서로 다른 계급이 함께하는 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웹툰에서 말하는 통합은 환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환상은 세대갈등을 부각시켜 계급갈등을 은폐하는 계기의 하나로 독해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소간에 위험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푸른 지옥의 봄날 
다시 헬조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 나는 헬이라는 명명이 단순히 지옥이라는 공간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명명을 일종의 마음 상태에 대한 명명으로 이해한다. 지옥으로서의 마음 말이다. 이곳이 정말 지옥이라면, 이곳이 지옥인 이유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통을 수동적으로 감내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고통에 의해서 개개인이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곳을 지옥이라 말할 수 있다.
<시즌 1, 38화,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하고, 매 학기 학점을 4.5를 맞는 남수현을 보면서, 전공 교수는 “괴물”이라 말한다.>
그 점에서 개개인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해나가기 어렵게 된다. 개인에게 허용되는 것은 하루하루 주어진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개인들은 괴물이 된다. 그것은 이미 강요된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괴물이 된 이들에게 왜 괴물이 되었냐고 따져 묻는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개인은 수동적으로 따라왔을 뿐인데도, 그 사람이 괴물이 된 데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로 돌아간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이 견고한 국면에서 유동하는 국면으로 바뀌었다” 면서 각각의 개인들이 ‘선택하는 자유인’ 이 되었다고 말한다. 바우만에 따르면 오늘의 시대에서 “모든 선택에 포함되어 있는 위험부담들은 개인의 이해력과 행위 능력을 넘어선 힘들로 인한 것이지만, 그 대가를 치루는 것은 개인의 몫이자 의무” (<모두스 비벤디>,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한상석 옮김, 후마니타스, 2010) 가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이 지옥이라면, 구조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돌아가며 개인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면에서,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 보여주는 진실은 간명하다. 이곳은 철저히 계급사회이며,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은 이곳에서의 고통에 철저히 수동적으로 감내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곳은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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