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소득 컨퍼런스>, 일상의 변화를 위한 실험(30호)

2013년 12월 4일culturalaction
[현장스케치]30호
<소득 컨퍼런스>, 일상의 변화를 위한 실험
백희원 /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대변인
지난 10월 6일, 스위스 기본소득 시민 발의안에 대한 주요 언론의 보도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체감 할 만큼 늘었다. SNS에서의 언급 수도 눈에 띄게 늘었고, 집회에서 ‘기본소득’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으면 먼저 다가와서 정보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 얼마 전엔 교양 있는 대중의 훌륭한 표본인 우리 아버지로부터 ‘스위스 기본소득 시민 발의안’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아주 놀랄 상황이랄 것 까진 없을 것 같다. 올 상반기에도 기본소득은 꾸준히 매체에 등장하며 차기 진보 아젠다로서의 워밍업을 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위스로부터 날아온 소식이 기본소득을 기존 논의의 장에서 한 층 넓은 ‘대중’의 장에 소개한 계기가 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자연히 높아진 관심에 부응하는 충분한 기본소득 컨텐츠와 깊이있는 논의가 존재하는지 자문해 보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 지난 11월 8, 9일 양일간 <소득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 중 9일은 기본소득에 대한 내용으로 꾸려졌다. 나는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대변인으로써, 9일 <삶과 소득의 재구성> 섹션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행사 장소인 합정동의 마리스타 교육관은 희한하게 외진 곳에 있어 마치 경기도 모 처의 연수원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언덕을 오르며 작년 3월의 <2012 기본소득 국제대회>를 되새겨 보았다. <소득 컨퍼런스>를 그 후속 행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모처럼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배석한 기본소득 논의 자리인 만큼 그 때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더 나아갔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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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시간은 완전고용에 초점을 맞춰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를 증명하는 강남훈 선생님의 발제와 그에 대한 세 명의 토론자들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기본소득이 모든 문제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그것의 거시 경제학적인 효과만 다뤄질 경우의 위험성은 기본소득 논자들 스스로에 의해 늘 지적되어온 것이다. 이 자리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문제가 지적되었다. 세 토론자들은 각각 다른 맥락에서 좀 더 현실의 삶과 다른 사회적 조건들, 지향해야 할 가치가 반영된 기본소득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과적으로는 발제문에 대한 문제제기라기보다는 각 발제자들이 기본소득과 관련해 당면한 문제들을 드러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오후 시간은 심광현 선생님의 발제 <기본소득운동의 확산과 일상생활의 변화를 위한 실험>으로 시작되었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기본소득운동을 바로 자신의 일상을 전반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운동으로 이해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시된 것은 기본소득을 받는 다는 가정 하에 스마트 폰으로 영화를 찍어보자는 기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각자가 소비적인 문화에서 벗어난 감각을 익히며 이를 통해 체득한 지식을 자본에 포섭당하지 않고 지식 협동조합을 통해 선순환 시켜야 한다는 것도 발제문의 다른 한 축이었다. 토론자들은 이 구체적인 아이디어에 동의하며 그 이전에 고려해볼 점을 각각 이야기했는데, 청년좌파 김성일 대표는 ‘기본소득’이라는 자원 재분배의 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이 갖춰야 할 윤리적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일상생활의 변화를 위한 실험”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사전파악해야 할 작금의 소비적인 삶의 양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층위의 차이에서 각 단체의 초점과 전망까지도 추측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행사가 끝나고, 마리스타 교육관으로의 언덕을 오르며 가졌던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오큐파이의 흥한 기운이 남아있었던 2012년 3월엔 연구자, 예술가, 청소년, 프레카리아트 등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기본소득과 관련된 입장을 들었었다. 서로의 공통된 필요를 확인하며 즐거웠다, 그러나 그 뒤로는 아시다시피. 그리고 올해는 ‘망함’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거의 모든 문제가 전방위적으로 소환가능하고 정답이 없는 시절을 보내고 있음을 소득 컨퍼런스에서 새삼 다시 느꼈던 것 같다. 이 내용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라면 기본소득 운동은 (상황과 별개로) 작년 3월보다도 후퇴한 것(혹은 어떤 기회들을 놓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자책하고 싶거나 우울하지는 않았다. 인이 박히도록 듣는 이야기지만 기본소득은 종합적인 문제이고, 어쩌면 수 많은 문제들을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일 것이므로. 다만 더 넓고 깊은 기본소득 ‘깔대기’를 다음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야겠다. 나의 당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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