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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6]우리가 하늘(SKY)이다, 생명평화대행진과 트랙터

2017년 11월 20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2012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대한문 투쟁,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투쟁, 용산참사 철거민과 유가족의 해결되지 않은 고통이 뭉치기로 했다. 서로 다르지만 닮은 투쟁이 모여 <생명평화대행진>을 하기로 힘을 모았다. 쌍용차는 전국의 정리해고 비정규직 투쟁을 대표했고, 강정마을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모았고, 용산참사는 자본의 이익에 쫓겨난 사람들의 고통을 전하고자 했다. 4주간의 여정 중 파견미술팀은 평택대추리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마지막 행진에 함께 하기로 했다.

10월 5일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출발한 행진단은 10월 29일 평택에서 오산, 수원, 안산, 인천을 거쳐 11월 2일 서울에 도착한다. 죽음의 걷기 행진이다. 이들이 걷는 이유는 아픔을 나누고 함께 살기 위함이다. 20여 일간의 행진에 지친 행진단의 걸음걸음에 함께하고자 파견미술팀은 행진 상징물 제작에 들어갔다. 2박 3일간의 제작과정은 행진단의 행진에 비길 수는 없겠지만 몹시도 힘들었다. 이 상징물이 행진단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우리 모두가 하늘”임을 세상 곳곳에 전달할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하늘(SKY)은 쌍용차의 S, 강정마을의 K, 용산의 Y를 모은 글자다.

대추리 마을이 새로운 이주단지로 옮기고 마을 안에는 창고 두 동이 만들어졌다. 이 중 한쪽 창고를 대추리 역사관으로 만들었다. 이 역사관에는 2005년 투쟁당시 만들었던 모판 그림과 사진가 노순택의 현장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대추리 마을 주민의 과거 사진이 이윤엽의 설치작업 위에 놓여있다.

이윤엽의 설치작업은 2005년 대추리에서 나올 때 곳곳에 설치되었던 작업의 일부를 창고에 모아두었다가 꺼낸 것이다. 대추리에서 나올 당시 기록과 기억을 위해 남겨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고 그렇게 모아둔 작업은 도두리 창고에 옮겨두었었다. 이주단지로 이전하고 자리 잡기까지 긴 시간이 흐르면서 도두리 창고에 도둑이 들기도 했었다. 그것도 3번이나. 그래서 일부 작품은 없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대추리 농협창고 문에 그렸던 이종구 작가의 그림은 남아있었다. 대추리 투쟁당시 중앙대 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작품으로 당시 대추리 마을 곳곳에 그렸던 벽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남기게 됐다. 아마도 그림이 꽤 커서 도둑이 안 가져간 모양이다. 대추리 마을에 그렸던 많은 벽화가 마을이 부서질 때 함께 부서졌다.

대추리 역사관 [달구름]은 ‘시간적으로 흘러가는 것, 아울러 반드시 다시 돌아오는 세월’이란 뜻으로 “우리의 평화는 세월이 흘러 반드시 돌아온다”는 의미로 백기완 선생님이 지어주셨다. 역사관 작업을 하던 날 이윤엽은 자기 손가락에 10센티 길이의 핀 타카를 박아 피가 철철 나면서도 고통을 숨기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옆에서 일을 돕던 필자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놀라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이윤엽은 말렸다. 그의 부인이기도 하고 파견미술작가인 이윤정이 놀랄까봐 그랬다고 한다.

내부 설치를 마무리하고 며칠 뒤부터 외벽 그림그리기 작업을 했다. 아시바를 설치했다. 마침 대추리에 농활 온 한신대 학생들의 도움으로 작업을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예전 대추리 마을에 있던 멋진 소나무와 그 소나무 위에 사는 솔부엉이를 그린다. 거대한 솔부엉이가 마을을 지켜보며 평화를 말하는 듯 보인다. 이렇게 한 달여간 만들어진 역사관 <달구름>은 개관식을 했고 마을을 떠났던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우린 이 공간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생명평화대행진 상징물 제작을 위해 고민 없이 선택한 장소도 이곳 이었다.

의미도 있고 작업을 위한 넓은 공간도 있고 작업에 필요한 재료와 공구들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번 대행진의 가장 앞줄에서 평화를 외치며 걷고 있는 문정현 신부님의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아이디어를 모은다. 강정의 평화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도, 용산참사의 고통도 모두 담아 서울까지 거리에서 함께 할 상징물이다.

처음엔 리어카에 설치물을 올려 행진용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윤엽의 눈에는 대행진의 상징물로 리어카는 작아 보였다. 평택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하며 리어카를 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뭔가 큰 대형 설치물을 구상했고 그러다 보니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이 필요했다. 신종원 대추리 이장님의 트랙터가 보인다. 이윤엽은 트랙터를 사용하자고 제안했고 이장님은 흔쾌히 내어주셨다. 트랙터에 올릴 이미지를 조형물로 만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대나무를 길게 잘라내고 누군가는 한지에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각목으로 고정대를 만든다.

평화를 상징하는 커다란 대나무 구와 거기에 평화를 상징하는 것을 붙였다. 이명박의 4대강이 한창 사람을 슬프게 할 즈음이었다. 강물에서 죽어가는 물고기들이 우리의 평화였다. 평화의 물고기를 만들고 장대에 걸어 이리저리 흔들며 장난도 쳤다. 강정 앞바다에서 사라져 가는 거대한 돌고래도 만들었다. 돌고래를 고정하던 마지막 날 새벽, 수평을 잡아 고정해야 하는 고래가 계속 기운다. 졸면서 작업하던 박상덕은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3일을 고생해서 만든 작업이 완성되고 트랙터가 움직인다.

“트랙터가 움직이면 바람개비가 돌돌 돌고 뭐가 반짝거리고 물고기가 부풀어 오르며 소란스러워진다.” 전진경은 이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연신 웃는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니 완전 피곤에 쩔어 버렸다.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손가락이 안 굽혀진다. 쉬지 않고 작업한 손가락에 미안했다.” 전진경이 한 말이다.

10월 28일 문정현 신부님과 행진단이 도착했고 다음날 바로 서울로 가는 행진 시작. 상징물이 움직인다. 사람들은 신기하게 바라본다. 뭔지 모를 거대한 평화가 함께 서울로 몰려가는 기분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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