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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5]‘함께 살자’ 소리 질러~ 쌍용차 철탑농성장 소리통

2017년 11월 13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2012년 4월 19일 대한문 앞 분향소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함께 살자’ 희망지킴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희망지킴이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22번째 죽음을 보면서 더 이상 개별 투쟁사업장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과 거리에 내몰린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며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보자는 취지의 모임이다.

문화예술인도, 노동자도, 종교인도, 정치인도, 인권활동가도, 모두가 희망지킴이가 되었다. 희망지킴이 중 의지가 있는 몇몇 사람이 기획을 한다. 필자는 의지가 강한 희망지킴이 중 한 사람이었다. 4월 20일 범국민추모대회를 시작으로 대한문 분향소는 바쁘게 돌아갔다. 집회신고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추모객을 받았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이야기로 대한문 분향소 지키기를 이어갔다. 희망 지킴이는 최초 5만원의 가입비를 받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재정은 아래 사업들을 준비하는 기금으로 쓰였다.

– 5월26일 KBS 교향악단 연주회+시 낭송회
– 6월16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한 시민 걷기대회 “함께 걷자! 함께 웃자! 함께 살자!”
– 7월14일 영화감독 11인의 만남(김선 김곡 김경형 김홍익 변영주 윤성호 이난 신동일 임찬익 민규동 봉만대 조연수 권칠인 김대승)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전원복직을 요구하는 옴니버스’
– 8월18일 <의자놀이> 북콘서트 “들국화와 함께 하는 공지영의 <의자놀이>”
– 10월17일 <의자놀이> 북콘서트 “강산에 그리고 킹스턴루디스카와 함께 하는 공지영의 <의자놀이>”
– 10월 26일 희망 ‘밥’콘서트
– 11월 9일 <의자놀이> 북콘서트 “강허달림 그리고 허클베리핀과 함께 하는 공지영의 <의자놀이>”

대한문 앞 분향소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와 공연 등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이 과정에서 공지영의 <의자놀이>책이 만들어졌다. 그동안의 힘겨움이 이 책 한권에 고스란히 담기면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문제를 사회적 관심으로 끌어낼 수 있는 큰 계기가 됐고, 또한 이 책의 인세 전부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후원했다. 투쟁이 길어질수록 재정압박이 심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길거리 투쟁으로 망가진 몸과 정신적 피폐함에 하루살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정부와 기업은 귀를 닫았고 대한문 앞 분향소는 매일 감시와 탄압으로 몸살을 앓았다.

2012년 11월 20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3명(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은 평택 공장 앞 대로변에 위치한 송전탑 위로 올라갔다. 가장 낮은 곳에서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는 몸부림이었다. 제발 우리의 소리를 들으라는 외침인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은 대한문과 평택을 오가며 문화행동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기자회견에 쓸 이미지를 만들고, 퍼포먼스 상징물을 만들고, 대한문 분향소에 놓일 그림도 그리고, 전시도 했다. 11월 찬바람에 거리는 떨어진 낙엽들로 스산했고 철탑 위 강풍은 살을 에는 추위보다 강력했다.

“소리쳐!” 문학인들은 바람으로, 영상인들은 빛으로, 미술인들은 색으로, 음악인들은 소리로, 그리고 우리 모두는 신나게 연대의 함성으로 소리쳐보자고 했다. 파견미술팀 이윤엽과 필자는 소리통을 만들기로 했다. 저 멀리 철탑 위에서 지지방문을 하러 온 사람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도구의 의미이기도 하고 작은 소리가 울림이 되어 크게 들린다는 의미의 작업이었다. 3명의 노동자가 철탑 위에 있으니 3개의 소리통을 만들기로 했다. 알루미늄판을 용접하고 그 위에 락커로 색을 입혔다. 소리통을 설치하기 위해 각목을 준비하고 뚝딱거리며 고정대를 만들어 소리통을 올렸다. 만들어 보니 소리통이면서 망원경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멀리 철탑 위 사람들이 크게 보이는 듯했고 통을 통해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잘 들린다는 철탑 위 사람들의 손짓에 기분이 들떴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도 신기한지 들여다보고 소리 내보고 하며 즐거워했다.

작업을 하다 보니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어졌고 크레파스와 분필을 챙겨 들고 바닥에 세 사람의 이름을 그림으로 그렸다. 흐릿한 이미지가 맘에 안 들었지만 문학인들의 색색현수막이 소리통 주변에 걸리면서 철탑 아래 도로변이 화려해졌다. 저 위에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오가는 차량들에게, 저 멀리 쌍용자동차 공장 안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과 함께한 예술가들은 공장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해고는 살인이다!”

사부작사부작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밤사이 내린 비에 땅이 얼어버렸고 언 땅 위로 소복이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추운 겨울이 걱정이다. 연말이 다가오는 어느 날 희망지킴이는 송년문화제를 하기로 했다. 2013년의 봄을 기약하는 자리다. 필자는 웹자보를 만들어 돌렸다. 지난 철탑 아래 그림이 흐릿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다음에 꼭 다시 그림을 그리러 와야겠다고 다짐했었던 터라 빠르게 기획하고 홍보를 시작했다. ‘그림 그리러 같이 갈래요?’ 철탑 아래 검은 아스팔트 위에 그림으로 연대하자고 제안하는 웹자보다. 서울에서 차량으로 이동하기 위해 탑승자 모집을 했다. 그동안 함께 했던 미술작가들과 붓질을 돕겠다는 시민들의 신청이 들어왔다. 희망지킴이 송년문화제 이전에 작업을 하고 철탑 위 사람들에게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철탑아래 철탑을 그려보자.

작업을 진행하기로 한 12월 28일은 무척 추웠다. 전날부터 내렸던 눈이 녹아 바닥이 축축했고 물감은 금방 얼어버렸다. 이윤엽이 전체적인 스케치를 한다. 흰색 페인트를 붓에 듬뿍 묻혀 길게 선을 긋는다. 가로세로 마구마구 긋는 선들이 모여 어느새 철탑 모양이 완성되었고 철탑 선들로 이어진 공간마다 작가들이 붓을 들고 앉는다. 각자의 그림을 각자의 도화지에 그리기 시작한다. 까만 바닥에 형형색색 고운 빛깔들이 입혀지고 흐린 날 탓에 색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하늘 위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기주는 핸드폰을 들고 아래 작업하는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그리고 머리 위 하트 손을 하며 연대한 작가들을 오히려 응원한다.

사진/당시 철탑 고공농성중인 문기주

작업이 다 된 바닥그림이 다음날 송년문화제에 오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랐으나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천막으로 가려져 버렸고 축축한 사람들의 신발바닥이 그림을 조금씩 지워버렸다. 다시 와야겠다. 다시 그림을 그리러 와야겠다. 생각하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렇게 지나버린 겨울 이후 그림을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 겨울은 추웠고 눈이 유독 많이 내린 겨울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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