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의 원리만 존재하는 사회

2015년 9월 22일culturalaction

이종임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문화연대 집행위원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경제적 인간 되기’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온전한 주체는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한 인간이며, 이것이 가능하려면 경제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패보다는 성공을 하고, 경쟁구조에서 우위에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한 자기관리는 필수조건이다. 이렇게 청년세대들은 경제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과 아르바이트 일자리뿐이다.

졸업을 연기하면서까지 취업을 준비하는 일명 ‘취준생’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취준생인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소수에게만 취업이 가능하다’는 자조적인 글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공한 멘토의 삶을 따르고, 현실의 자유와 욕망을 억누르며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달려왔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7>에서도 지원자들은 대부분 ‘무직이거나 아르바이트생’이다. 그 어떤 시즌보다 경제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인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듯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연내 도입이라는 대안을 내놓기에 이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방법이 청년실업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본질적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되면서, 청년세대는 스스로를 비하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무차별적인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노인충, 맘충, 토익충, 진지충’ 등 그 대상은 폭넓고 비난의 강도는 심하다. 청년세대에 대한 우울한 담론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잉여세대’의 등장이 이에 해당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음을 일찍 깨달은 청년들은 스스로를 ‘잉여세대’라 불렀다.

경향신문, 201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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