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으로 변질된 힙합의 저항정신

2015년 7월 28일culturalaction

이종임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문화연대 집행위원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방송계에서는 때아닌 힙합 열풍이 불고 있다. 케이블 채널에서 래퍼들을 선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는 네 번째 시즌으로 지금 방영 중이며, 여성 래퍼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언프리티랩스타>가 올 상반기에 방영됐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힙합 음악 장르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더불어 노래 속 가사가 자극적이고 노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젊은 세대가 경험하는 억압적 상황, 인간관계의 모순 등 사회비판에 적극적인 힙합 음악에 대해 젊은 세대들의 호응은 클 수밖에 없다. <쇼미더머니> 시즌4의 1차 지원자가 약 7000명에 달한다는 내용만 봐도 국내에서 힙합 음악이 얼마나 관심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음악 장르를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는 제작진의 또 다른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데, <쇼미더머니>가 시즌1부터 지원자들의 비속어나 욕설 등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꾸준히 ‘주의’를 받아왔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짧은 시간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지원자들은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므로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이 돋보여야 한다는 프로그램의 근본적 틀을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힙합 장르에서 보여주는 비판정신이 상대방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힙합이 젊은 세대의 호응과 더불어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적극적 비판, 약자와 가난에 대한 억압적 상황을 힙합에서만 가능한 ‘거친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었다.

경향신문, 20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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